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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벌레 잠잠이 Oct 06. 2021

나만의 월든을 꿈꾸며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을 읽고

   <월든>을 읽었을 때, 나는 다른 무엇보다 소로우가 월든 호숫가 근처 숲 속에 혼자만의 집을 지었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아아, 혼자만의 집이라니. 숲 속에 혼자 있는 동안의 외로움보다는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질 것에 대한 부러움만이 피어올랐다.


  소로우가 도끼 한 자루를 빌려 들고 월든 호숫가의 숲 속을 찾은 것이 1845년 3월 말경. 그가 홀로 작은 도끼 한 자루만을 가지고 나무를 자르고 깎고 기둥과 서까래를 다듬고 뼈대를 만들고, 완성된 집에 들어선 것이 7월 4일이었다고 하니 3개월 이상의 수고로움에 대한 생각도 잊은 채 말이다.


 소로우가 힘겹다는 생각보다는 마치 개똥지바뀌처럼 노랫소리를 흥얼거리며 집 짓는 일을 즐겼던 것처럼, 그렇게 기꺼이 어느 호숫가 숲 속의 혼자만의 집을 짓고 싶어졌다.


  나도 티티새, 붉은 풍금조의 이웃이 되어 바위종다리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이른 아침 눈을 뜨리라. 간단하고 소박한 아침 식사를 마친 뒤에는 숲 속 한 바퀴를 돌며 허클베리 열매를 따먹으며 산책을 해야지.


온종일 아무도 찾지 않는
한적한 나만의 집,
창가에 앉아 그동안 미루어두었던
<노자>나 <장자>를 읽으며
오후를 보내는 나날들.

배가 고프면 가볍게 점심을 먹고
해가 뉘엿뉘엿 해질 때까지
책상에 앉아 쓰다만 글을 끄적거릴 테지.

  가끔 고독이란 친구가 기웃거린다 해도 좋겠다. 지금은 외로움을 느끼기는커녕 늘 사람에 부대끼고 일에 부대끼고 일상의 거대한 수레바퀴에 허덕이느라 나만의 시간에 대한 갈증이 심한 터라, 소로우가 월든 호숫가의 집에서 고독을 가장 좋은 친구로 여겼을 기분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렇기에 그가 2년 간 숲 속의 혼자만의 집에서 지낼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했다던 말 “이곳에선 무척 외롭겠군요.”라는 물음에 소로우가 헛웃음을 지으며 “고독만이 친한 벗”이고 “사람들 속에서 더 외로워진다”는 깨달음도 절실하게 와닿는다.


  실은 소로우가 월든 호숫가의 숲 속에서 꿈꾸었던 것은 나처럼 혼자만의 시간, 자유만은 아니었다. 그것을 얻기 위해 토대가 되어야 하는 것들인 자급자족하는 삶이었다.


 소나 동물의 힘을 이용하지 않고 최소한의 양식을 마련하기 위해 노동을 하는 것. 적게 먹으니 많은 양의 수확물이 필요가 없고, 그러다 보니 노동에 지금의 인생을 저당 잡히지 않아도 되는 삶을 꿈꾸고, 실천에 옮긴 것이다.


 그는 “삶의 가치가 가장 떨어지는 시기에 미심쩍은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인생의 황금 시절을 돈 버는 일로 보내는 사람들”에 대한 안쓰러움을 갖고 있었다.


  “물론 오래 살아서 차비라도 벌어놓은 사람은
언젠가는 기차를 타게 되겠지만
그때는 활동력과 여행 의욕도 잃고 난 다음일 것이다.”


  라는 말도 뜨끔하게 박힌다.


 과학의 발달로 기계적인 편리함을 누리는 것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점점 더 욕구가 커지는 상태를 채우기 위해 더 종종거리고 바빠졌다. 소로우는 놀랍게도 지금으로부터 150여 년 전에 이러한 사태를 간파한 것이다. 19세기에 마치 21세기 우리의 오늘을 들여다보듯 그는 말한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만 끝없이 노력하고, 때로는 더 적은 것으로 만족하는 법을 배우지 않을 것인가?”


  이러한 예지력도 놀랍지만 그런 깨달음이 소로우의 나이가 서른도 채 안 서라는 것이다.

나 역시 점점 소박한 것, 검소한 것에 끌리고 그 담박함이 주는 은근함에 눈길이 가고 몸을 맡기고 싶어 하지만, 소로우가 월든 호숫가의 숲 속에 집을 지었던 28살 나는 뜨거운 욕망에 들떠있었다.


 내가 원하는 일 자체가 세속적인 잣대에서 보면 자유로운 것이긴 했으나 그래도 명예를 얻고 싶었고, 열망했던 그 일에 대해 인정받고 성공하고 싶었다.

 하루 10시간 가까이 회사에 상주해야 하는 일이었고 그 노동의 강도는 셌으며 토요일도 쉬지 못하던 그때. 나는 그 중노동의 고단함을 먹는 것으로 풀었다. 노동을 많이 하지 않으면 적게 먹어도 되고, 적게 먹으니 노동도 많이 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로우의 철학과는 동떨어져 있었던 셈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소로우가 산책을 하다 비를 피하기 위해 우연히 방문했던 베이커 농장의 이민자의 집에서의 대화를 곱씹게 한다.


 그 이민자는 그랬다.

자신들은 우유와 버터, 커피와 차 그리고 고기를 먹어야 하기 때문에 많은 노동을 해야 양식을 구할 수 있고 중노동을 하기에 배를 채우기 위해 많은 음식을 먹어야 하노라고.


 내가 한창 일하던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까지의 처지도 이와 다르지 않았으리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고 내가 가장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일이었으며, 그리하여 내가 선택했던 그 일은 어느새 족쇄가 되어 버린 것이다.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는 구절을 새기며 나는 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처럼 소박한 삶을 살고 계신 나의 아버지의 구부정한 어깨가 보였다.

 평생 한 길만을 뚜벅뚜벅 소처럼 걸어오신 나의 아버지.


농사꾼이던 당신의 아버지를 존경해서
교육자의 길을 걸어오면서도
정년퇴직을 한 뒤에는
농사를 짓고 살겠다던 다짐을
마침내 실천에 옮기신 분.

아버지의 고향은 여전히 서울에서 멀고,
빠른 기차는 서지도 않으며 역전에서도
또 한참 구불구불한 길을
돌아가야 하는 곳에 있다.


  평생 당신의 차를 갖지 않았던 탓에 일흔이 한참 넘은 연세에도 아버지는 투병생활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 먼 곳을 늘 기차로 오가며 작은 농사를 지으셨다. 소박한 밭을 일구고 돌보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가시는 이유는 어쩌면 그곳이 아버지의 ‘월든’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어느새부터인가 담박한 음식,
소박한 차림에 마음이 간다.
사치로운 것으로 치장을 하고
큰 것을 움켜쥐기 위해
동동거리는 사람들의 불안이 보인다.


 “우리는 사치품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수많은 원시적인 즐거움의 면에서는 가난하기 짝이 없다.”는 소로우의 지적은 오늘날에도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내가 유일하게 욕심을 냈던 서재에 대한 꿈도 지금은 접었다. 그리 넓지 않은 집에 점점 많아져 가는 책들이 나의 재산이라고 자부했던 마음도 비웠다.


 매해 책꽂이의 책들을 솎아내며 나는 그만큼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라 믿고 싶다. 때로는 ‘부려도 괜찮을 욕심인데 이마저 버려야 하나’ 하는 마음이 들 때면 나는 <월든>을 펼쳐들 것 같다. 그리고 나도 나만의 ‘월든’을 만들 날을 꿈꾼다.


  “진실로 바라건대, 당신 내부에 있는 신대륙과 신세계를 발견하는 콜럼버스가 돼라.”라는 구절이 내 안에 또 하나의 씨앗을 뿌려놓은 것이다.



책 제목: 월든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역자: 강승영

출판: 은행나무

발매: 2011.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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