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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그흐 Mar 12. 2024

[한국의 신화] 고전을 읽는 법

*본 글은 명대신문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무사히 개강을 맞이하셨나요? 그에 앞서 수강신청은 성공하셨나요? 이번 학기에 함께할 수업 중 어떤 수업은 기대가 될 것이고, 어떤 수업은 학점을 채우기 위해 흘려보내야 하는 시간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사정을 다 알고 있기에 저에게 학기 초는 매우 긴장되는 시간입니다. 제 수업에 들어오는 학생들을 설득해야 하거든요. 이 수업이 학생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고 얼마나 중요한지를요. 이 과정에 성공해야만 서로에게 의미 있는 한 학기를 보낼 수 있으니까요.


칼럼을 시작하면서도 이런 설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자 여러분이 신화에 대한 이 칼럼을 왜 읽어야 할까요? 흔히 고전을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고전은 왜 읽어야 하는 걸까요?


저는 고전을 설명하는 수많은 말 중 “고전은 시간의 압력을 견딘 작품이다”라는 문장을 좋아합니다. 세월이 흐르면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변화합니다. 수많은 작품이 금세 잊히지만, 변화 속에서도 가치를 잃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읽히고 회자되며 고전으로 자리 잡습니다. 세상에 진리는 없다지만 오랫동안 시간의 압력을 견뎌온 작품에는 진리에 가까운 생각들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최근 한국의 고전문학은 독자들과 적극적으로 충돌하고 있습니다. 이것에 진리가 담겨 있는 것인지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한 겁니다.

웹툰 〈바리공주〉의 예고가 올라갔을 때 독자들은 주인공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다며 분노했습니다. 강의실에서도 학생들에게 거센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고리타분한 가치관의 작품을 진리가 담긴 ‘고전’라고 볼 수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고전문학을 왜,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이쯤에서 신화 「바리공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오구대왕은 왕위를 이을 아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어렵게 얻은 첫째 아이가 딸인 겁니다. 기대를 품고 계속 아이를 낳았으나 모두 딸이었습니다. 그리고 일곱 번째 딸이 태어났을 때 오구대왕은 분노에 휩싸여 아이를 버리라 합니다. 그 아이가 바로 ‘버림받은 아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바리공주’입니다. 아이는 우연히 한 노부부에게 발견되어 무럭무럭 자랍니다. 세월이 흐르고 오구대왕은 죽을병에 걸립니다. 온갖 약을 써도 소용이 없자 점을 보았고 저승에 가서 약을 구해와야 한다는 답을 듣습니다. 여섯 명의 딸이 거절하자 오구대왕은 바리데기를 찾아 약을 구하러 저승에 다녀오라고 하고, 바리공주는 길을 떠납니다.


줄거리에 담아내지 못했지만 「바리공주」에는 가족에게 받은 상처를 토로하는 바리공주의 울음,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고 반성하는 부모의 눈물, 서로를 이해하는 모습 속 화합의 미덕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이야기는 지금도 유효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버린 부모를 위해 어떤 위험이 있을지 알 수 없는 저승으로 떠나는 바리공주의 행보는 쉬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부모가 사과했더라도 앞으로 다시는 바리공주를 상처 주지 않을지 의심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리공주」는 가족 중심의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다시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것이 바리공주가 맞을 수 있는 최선의 결말이기에, 바리공주는 부모를 위해 저승으로 떠납니다.


「바리공주」를 향한 비판은 이것을 옛것, 즉 지금은 유효하지 않은 이야기로 치부합니다. 그러나 가족에게 버림받고 다시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며 노력하는 바리공주의 모습이 과연 옛날 일일까요? 여전히 가정 곳곳에서 폭력이 벌어집니다. 사회 제도의 미비로 인해 아이가 폭력 속에서도 가정에 방치되거나, 가정으로 돌려보내지고 있습니다. 가족으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이었던 「바리공주」 속 이야기는 지금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고전을 우리의 삶과 견주어 보면 어떨까요. 지금의 가치관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과거의 것으로 치부하지 말고, 이것이 지금은 일어나지 않는 일인지 돌아보는 것입니다. 고전이 반드시 교훈을 줄 거란 기대를 잠시 내려놓고,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가늠하는 지표로 삼아 보는 겁니다. 고전이 우리의 삶에 유효한 교훈을 줄 것이라 생각하듯, 우리 사회를 비추어볼 수 있는 거울로 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와 상관없는 옛이야기가 되면 좋겠다고 바라며 우리 곁의 사람들을 살피는 것, 그것 또한 고전을 읽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원문링크: https://news.mju.ac.kr/news/articleView.html?idxno=12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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