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시간이 다시 만나는 저승
오늘은 한국 신화에서 등장하는 강아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왜냐하면 저의 사랑하는 강아지의 기일이 다가오고 있거든요. 보고 싶은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 언젠가 또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담아 글을 써보려 합니다.
강아지가 세상을 떠나면 강아지별에 간다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그리고 훗날 우리가 죽어 저승에 가면 강아지가 마중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지요. 저는 그 이야기를 믿고 싶었어요. 우리 강아지를 또 보고 싶으니까요. 다시 만나 쓰다듬고, 안고, 사랑한다고 백번이고 천 번이고 말해주고 싶으니까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신화에서 근거를 찾기는 어렵더군요. 신화에서 동물 자체가 잘 등장하지 않으니, 강아지가 있을 리 만무하지요. 우리나라 저승관에 근거한 건 아닌 것 같은데, 항간에 떠도는 저 이야기의 출처는 어디일까 하고 생각하다 보니 자꾸만 가자미눈으로 보게 되더라고요. 내 눈으로 확인하지 않은 걸 믿지 못하는 걸 보면 저도 어쩔 수 없는 연구자인가 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신화를 읽던 중 강아지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발견한 게 아니겠어요! 그것도 무려 저승에 사는 강아지를요. 저와 같이 훗날 강아지와의 재회를 바라는 분들에게 작은 희망을 전하고 싶어 가지고 들고 와봤어요.
전라북도에서 전하는 신화 <칠성풀이>에는 이런 장면이 있어요.
일곱 아들이 죽은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의식을 치릅니다. 그러자 저승의 시왕이 어머니인 매화부인에게 사흘의 말미를 줄 테니 자식들과 상봉하여 회포를 풀고 오라 합니다. 매화부인은 기뻐하며 이승으로 향합니다.
매화부인이 정신없이 집으로 돌아올 때에 흰 강아지 한 마리를 품에 안고, 강을 건너고 건너다 한 다리에 도착한다.
매화부인이 강아지를 내려놓자 강아지는 그 다리를 건너가는데, 매화부인은 다리를 건널 수 없어 이리저리 헤매고 있으니 한탄하고 우는 소리가 들려와 깜짝 놀라 깨니 이승이었다.
매화부인은 자식들을 만나기 위해 이승으로 향할 때 강아지와 동행합니다. 아쉽게도 신화는 이 강아지와 이승에서 어떤 인연이 있었던 것인지, 이 강아지는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승에도 강아지가 산다는 것, 품에 안을 만큼 사람과 친밀하게 지낸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지요.
저승에 강아지도 사는구나. 그렇다면 우리 강아지도 저승에 있겠구나. 저승과 이승을 오가는 길을 강아지가 앞장서는 걸 보니, 어쩌면 내가 훗날 저승에 갔을 때 그 문턱에 와줄 수도 있겠구나. 그런 작은 희망을 품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의 신화는 참 많은 것을 말해주지 않아요. 그래서 짐작하고, 그럴 것이라 믿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기뻐요. 훗날 강아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저의 기대에 작은 근거가 생겼거든요. 보고픈 마음을 잔뜩 모아두었다가 마음껏 쓰다듬을 수 있는 날이 다시 올 거라 조금 더 믿을 수 있거든요.
혹 저와 같이 강아지를 먼저 떠나보낸 분이 계시다면, 신화의 저 작은 이야기가 작은 위안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