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많은 굿을 봤습니다만, 조금 더 아는 게 많았을 때 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하는 굿이 있습니다. 바로 2015년 11월 25일 강릉에서 있었던 오구굿입니다.
오구굿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천도하는 굿입니다. 지역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조금 다른데요. 서울에서는 진오귀굿이라 하고, 전라도에서는 씻김굿이라 하지요. 강릉을 포함한 동해안 지역에서는 오구굿이라고 해요.
그때 그 오구굿을 사람들은 "이 시대 최대의 굿판"이라고 하곤 했습니다. 아무것도 몰랐던 저는 오히려 유명한 교수님들이 다 모여 계신 걸 신기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책에서만 보았던 교수님들이 그 자리에 모두 계셨으니까요.
그런데 훗날 굿을 조금 더 알고 나니, 대단한 무녀와 악사들이 함께 모여 굿을 했던 그 자리에 제가 있었다는 것이 너무 놀랍고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옛날엔 이렇게 밤새 굿판이 벌어지곤 했지만 이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피곤하니까, 세상에 재밌는 게 너무 많으니까. 그런데 그날의 오구굿은 옛날 방식 그대로 무박 2일 동안 진행되었어요. 새벽엔 몽롱한 정신에서 꾸벅꾸벅 졸며 서사무가를 듣다가 또 흥겨운 음악에 들썩이기도 했지요.
그땐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였지만 엄청난 굿이라는 건 느꼈어요. 화려하고 농밀한 음악, 무녀들의 뛰어난 춤과 노래 관중을 휘어잡는 언변. 무엇하나 아쉬운 게 없었어요. 조성진의 연주가 평소 클래식을 듣지 않는 사람에게도 감동을 주듯, 그날 굿판의 춤과 음악은 저의 마음을 뛰게 했어요. 이런 게 굿이라면 매일 보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요.
그날의 굿은 오구굿이었기에 천도하는 망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굿을 하던 무녀, 악사들의 조상들이었죠.
음악과 춤으로 신을 즐겁게 해 좋은 곳으로 가게 해달라 진심으로 빌었지요. 그러면서도 망자들에 대한 기억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날 굿을 한 악사와 무녀들이 실은 모두 친척 관계입니다. 동해안을 주름잡는 대표적인 두 가문이 정말 오랜만에 뭉쳐 함께 굿을 하는 거였어요. 집안 어르신들에 대한 추억을 나누며 흘리는 눈물이 그간의 소원했던 시간을 무너뜨리는 것만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울다가 또 흥겨운 음악을 연주하며 웃고 또 이야기하며 울고. 그 모습을 보며 저도 함께 웃고 울었어요.
그렇게 무박 2일 굿을 보곤 생각했어요. 내가 죽으면 이분들이 굿을 해주면 좋겠다 하고요.
굿판에 온 사람들은 나를 생각하며 울다가 나에 대한 서로의 감정과 기억을 주고받으며 서로 위로받겠지요. 그리고 혹여나 내게 못다 한 말이 있거나 미안한 것이 있다면 무당을 통해 전하겠지요. 그렇게 쏟아내고 부둥켜안으며 내가 떠났다는 걸 털어낼 수 있을 것만 같아요.
그러면서도 즐거울 거예요. 때로는 장구 장단에 몸을 들썩이기도 하고,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기도 할 거예요.
얼마 전 이웃집 할머니가 남편을 떠나보내셨습니다. 그런데 남편 생전에 해주지 못한 말이 너무 많다며 힘들어하시더군요. 무당에게 말한다 하여 죽은 이가 들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요. 그래도 닿을 수 있다 믿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삼켰던 말들을 쏟아내는 것만으로도 훨씬 후련할 거예요.
난 그래서 장례식 대신 오구굿을 열어, 남겨진 사람들이 슬픔을 훌훌 쏟아내고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날 떠나보내면 좋겠어요. 혹시 몰라요? 만약 망자인 내가 그 자리에 올 수 있다면 난 분명 즐거울 거예요. 난 동해안 굿의 장구 연주를 아주 좋아하니까요.
물론 난 자연사할 생각이니 이 글을 읽고 내 걱정은 마세요. 그저 내가 굿을 보며 한 생각을 나누고 싶었을 뿐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