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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이 Nov 22. 2022

타인의 재능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이 무슨 요일인가, 회사에서 해야 할 일은 뭐였었나 하는 생각으로 출근했던 직장인 시절이 있었다. 사회 초년생 때는 하루도 조용하게 넘어가는 날이 없어서 '오늘도 무사히~'라는 생각으로 보냈지만 후배들이 한 두 명씩 생기고는 일 잘한다는 소리가 듣고 싶어서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은행 업무의 특성상 무언가 주체적으로 일을 만들어가기보다는 정해진 일을 정해진 대로 정확하게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으므로 그 일에 재능이 있는지는 딱히 생각해본 적 없이 없었다. 후배가 있어도 그들이 성장하는 것에 기쁨을 느껴본 적 없이 그저 그들의 많은 시행착오를 함께 하면서 흘러갔을 뿐이었다.


결혼과 몇 차례 이직 후 피봇팅을 하면서 최근 일, 이년 사이에 자기 계발에 엄청나게 힘을 쏟았다. 배운 만큼 다 습득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 엄청난 배움이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자기 계발의 다음 스텝은 타인 계발로 관심을 두게 됐다.


진짜 자기가 좋아하는 걸 찾아야 한다, 브랜딩을 해야 한다, 콘텐츠가 힘이다 등등.. 이것을 포트폴리오처럼 잘 닦아놓은 후 타인의 성장을 돕는 것. 대략 이런 단계로 가는 것이 1인 기업으로 성장하는 방식이라 생각했다.


사실 나는 사람을 좋아하긴 하나 다른 사람의 관심사나 발전에 크게 기여하며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었고, 그럴만한 재능이 내게 있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어쩌면 나에게 타인의 성장을 돕는다는 것은 하나의 주문처럼 내게 있지도 않은 것을 바라는 것 같은 막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나지만 나보다 더 앞장서서 가는 이들에게 조차도 타인의 계발에 자신의 재능을 제공하는 것 이외에 무언가 다른 특별함을 느낀 적이 별로 없다. 그렇기에 나에게 타인의 계발이란 지식과 화폐의 가치 교환, 이것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번아웃인지, 슬럼프인지, 우울인지 모를 그것들이 차례로 다녀가면서 휴식기를 가지고 있던 중이라 마음에 여유도, 쉬는 시간도 많아졌다. 집에는 TV가 없다. 그러니 무엇을 보던지 자연을 보는 것이 아닌 이상 휴대폰으로 자연 손이 가곤 하는데 주로 전자책이나 유튜브 시청을 하는 편이었다.


마지막으로 본 예능이 뭐였는지 가물가물 한데, 어쩌다 알고리즘이 내게 이걸 보여준 건지 모르겠지만, 개그우먼 김민경이 나오는 '운동뚱' 영상이 있어서 보다 보니 멈출 수가 없었다. 김민경이 40대가 되도록 본인이 운동에 재능이 있는 줄 몰랐는데 하는 것마다 잘해서 그런지 다양한 종목의 운동에 도전하는 그런 프로그램인 듯했다. 사격, 골프, 축구, 야구, 주짓수, 팔씨름.. 과연 그녀가 도전하지 못하는 운동이 있을까? 할 정도로 너무 잘 해내는 모습에 기분이 유쾌해졌다. 보다 보니 꽤 오래전 유행했던 영상인듯한데 댓글 반응 역시 굉장했다. 찾아보니 결국 운동인들이 그녀를 알아보고 트레이닝을 시켜서 급기야!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대표 사격선수가 됐더라.


이야.. 영화 같은 인생. 멋지다.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그녀의 근수저 영상에 혼자서 얼마나 깔깔거리며 웃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두 시간이 흐른 후 그녀보다 그녀 옆에서 단숨에 재능을 알아보고 기가 막히게 코칭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코치, 관장, 사범, 대표의 이름으로 그녀의 옆에 선 멘토의 표정에서 나는 자기 계발 코치들에게서 보지 못한 무언가를 느꼈다. 물론 김민경 그녀의 타고난 재능 때문이겠지만 책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이론에서 보지 못한 코치의 마음이 느껴졌다.(방송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계발은 저렇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며칠 전 1:1 유료 코칭 의뢰가 있어서 1시간가량 비지니스 코칭을 했었다. 코치로서 애송이지만 누구나 처음은 있기에 진심으로 듣고 방향 설정에 도움을 드렸지만 한편 내 머릿속에는 내가 상대의 비용에 상응하는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자가 검열기가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었다. 물론 이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지만 도무지 알고 싶어도 알 수 없는 것이 있다면 '타인의 계발에 진심'은 어떤 것인지였다. 수많은 자기 계발서를 봐도 감을 잡을 수 없던 것이었다.


그런데, 참 엉뚱하게도 '운동뚱' 코치들의 모습을 보고 힌트를 얻었다.


그들은 내내 타인의 재능을 예리하게 보고 충분히 격려했으며 마음껏 기뻐했다. 내가 관객의 입장이라 그런 탓도 있겠지만 이전 같았으면 자기의 재능을 찾아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김민경씨만 눈에 보였을 것인데, 영상을 보는 나의 관점이 더 이상 예전같지 않았다. 이제는 성취의 과정이 보이기 시작했고, 성취를 돕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도 저들 코치처럼 할 수 있을까?

타인의 재능을 귀신처럼 알아보고 가능성의 열어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

예리하게 보고,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질문하고, 충분히 격려할 수 있을까?


타인의 계발에서 가치 교환을 넘어, 기쁨과 희열까지도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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