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Majority vs. Minority

영화 위키드를 보고 난 뒤

by 지혜

2016년, 처음 미국에 간 해의 일이다. 아는 동생이 학교에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키드가 온다며 함께 보러 가자고 했다. 거의 100불 정도 되는 금액이라 대학원 생에게는 꽤 큰 금액이었지만, 어쩐 일로 용기를 내서 보러 갔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 뮤지컬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2024년, 이번에 영화 “위키드”를 보면서 나는 정말 그때 뮤지컬을 이해를 절반도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때로는 글린다로 때로는 엘파바로 살았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서 나의 삶은, 그리고 여전히 내 삶의 많은 부분에서 글린다를 본다. 물론 글린다처럼 인기가 많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사회적 기대에 민감하고 세상의 기준을 벗어나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아왔다. 금발의 백인, 전형적인 기득권을 상징하는 글린다처럼, 나도 한국에서는 비교적 기득권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 토종 한국인으로, 교육에 관심 있는 부모님 아래에서, 꽤 좋은 성적을 얻고 소위 말하는 좋은 학교에 진학했다.


그렇기에 내가 당연히 누려왔던 많은 것들이 있다. 전공이 전공인지라 과외를 하면서 어렵지 않게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었고 (글린다였다면 아마 아르바이트 자체를 하지 않았겠지만), 큰 어려움 없이 살았다. 사회의 부조리함을 종종 마주쳐왔지만, 때로는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모르기도 했고, 알게 되고도 그것을 바꿔보겠다고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속으로 갈등하며 넘기기도 했다. 영화 속 글린다의 모습처럼.


미국 박사유학을 가게 되었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다.


그러다 미국에 가니, 상황이 달랐다.


내가 누리고 살았던 게 참 많았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수학과 박사과정 첫 학기, 대학원장과 신입생들이 처음 인사를 나누는 자리였다. 열일곱 명의 동기 중 혼자 여자였던, 그것도 아시안 여자였던 나를 백인 남자 수학과 대학원장이 내가 안 보이는 것 같이 행동했을 때, 내가 정말 이방인이, minority가 되었다고 느꼈다. 한 명 한 명 신입생에게 악수를 하면서 이름이 뭐니, 전공은 뭐고 무슨 공부를 하고 싶냐고 묻던 그 교수가, 내게는 악수를 건네며 이미 시선은 다음 사람에게 건네주고 있었던 그 순간.


‘나는 여기서 환영받지 못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자여서일까, 아니면 아시아인이라서 일까? 어쩌면 둘 다 일지도’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남았다.


그 외에도 내가 미국에서 이방인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일들은 너무나도 많았다. 서툰 영어, 비자문제, 생김새. 끊임없이 내가 그곳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미국에서 알던 사람들이 한국에서 나를 만나면 풀어진 표정과 목소리가 낯설지만 반갑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나는 미국생활동안 경계하고 날을 세우며 지냈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음에도 그 정도였으니, 없었더라면 어땠을지는 상상하고 싶지 않다.)


영화 초반에 엘파바의 모습이 그랬다. 굳어있는 표정과 차가운 모습이 주변 사람들을 경계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고, 한편으로는 이해가 갔다.


자신이 왜 초록색 피부가 되었는지 여러 소설을 쓰는 사람들에게 미리 선수를 쳐 설명하는 모습에 울컥했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으면 스스로 방어기제가 될 레퍼토리를 세웠을까. 그게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마음이었을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나는 고작 몇 년 강의를 한 것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강의 시작하는 날 ‘나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고, 너네가 느끼듯이 내 말에는 액센트가 있다. 너희가 익숙해지는 데에 시간이 걸릴 수는 있겠지만, 여태까지 문제가 된 적은 없어.’라고 말을 하곤 했다. 내 영어에 대한 코멘트를 듣기 싫어서 내가 먼저 내가 생각하는 약점이라는 문제에 대해 아예 학생들에게 오픈하고 강의를 시작했었다. 어쩌면, 엘파바도 그런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초록색으로 태어난 엘파바가 남들과는 다른 생김새 때문에 태어나면서부터 겪는 일들은 감히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소수가 겪는 차별과 조롱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아마 우리의 현실에서도 낯선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아직도 여전히 다른 생김새 때문에 수군거림과 거리감을 경험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서구권의 나라에서는 많은 유색인종들이 겪어왔고, 겪고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곳으로 가게 되면 우리도 majority에서 한순간에 minority가 되며 그런 경험을 하게 되기도 한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러한 수군거림과 차별이 이끌어낼 수 있는 최악의 결과는, 엘파바가 극 중에서 네즈의 장애가 자신이 초록색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라며 말하는 장면에서 보여주듯, 스스로에게 그 죄를 씌우는 일이다. 사실은 네즈를 임신했을 때 엄마가 먹었던 그 꽃과, 그 꽃을 먹으라고 하고 먹기로 결정했던 부모의 책임일지도 모르는 데 말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 외부적 요인이 많은데도 위축되어 있는 마음이 제일 공격하기 쉬운 스스로를 비난하는 것 같아 마음이 너무 답답해지곤 한다. 사회적 약자들이 본인을 탓하지 않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나는 엘파바처럼 혁명가가 될 용기는 없었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 극적인 혁명가가 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가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질문한다. 정답이 없는 문제고, 나 스스로의 답도 아직 찾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파바와 글린다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며 때로는 엘파바처럼 때로는 글린다처럼 느끼고 행동하는 나를 발견한다.


환경과 상황에 따라 그 모습들이 드러날 뿐, 엘파바와 글린다는 어쩌면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있는 모습들일지도 모르겠다.


되게 달라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이지만 그 모습이 모두 내게 있다. 때로는 그렇게 다른 내 모습이 서로 모순인 것 같아 괴롭기도 하지만, 양측을 다 경험하면서 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게 됐다.


누군가는 마이너리티의 삶을 몰라도 좋았겠다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이 경험이 너무 귀하다고 생각한다. 미국 생활이 내가 조금 더 겸손하고 아주 조금 더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걸, 위키드를 보면서 새삼 감사하게 됐다.



keyword
이전 17화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신경 쓰일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