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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감자 Jan 16. 2024

시합에 진 아이는 혼나야 하나요?

자식 운동시키는 건 신중해야 합니다. ep.3

아들 녀석이 이제 6학년이 됩니다. 초등부에서 가장 최고참이 되는 거죠. 23년 시즌이 끝나고 추운 겨울에도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영하 10도의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이 다 트고 갈라져도 그저 재밌게 하고 있습니다. 이제 좀 힘이 붙으면서 실력이 많이 올라온 것 같고 이제는 쉽게 지지는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로 다 같이 성장하고 있을 텐데 말이죠.


2023년의 5학년 아들의 테니스를 돌이켜보면 그야말로 패배의 연속이었습니다.


아들이  4학년 가을에 한두 번 대회를 경험해 봤을 뿐이고, 실질적으로는 5학년 봄부터 제대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 2~3학년 때부터 시작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인데 아들의 경력으로 그들을 이기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요? 게다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피지컬적으로 뛰어나지도 않고, 아직 엄청난 재능을 뿜어내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저 너무 재밌게 테니스를 즐기고 있고, 너무 성실하게 열심히 할 뿐입니다. 아직 실력도 부족하고 시합 경험도 적은 아들은 나가는 대회마다 신나게 지고 돌아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봄부터 가을까지 단 한 번도 이기질 못합니다. 단 한 번도요.


열심히 하지만 성과가 나오지 않는 아들은 갈수록 의기소침해지고, 매번 회사에 연차를 내고 아이를 데리고 지방으로 가야 하는 아빠는 갈수록 지쳐갑니다.(테니스대회는 대부분 지방에서 많이 열립니다.)


단 한 번의 승리가 절실합니다.


매번 시합에서 지고 터덜터덜 코트 밖으로 나오면 저는 아들을 안아주고 손을 잡아주며, “잘했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멋있었어. 이런저런 플레이는 멋있었고 아까 그런 플레이는 조금 아까웠다. 왜 진 거 같아? 많이 배웠지?” 로 마무리를 합니다. 졌지만 칭찬을 받고 고칠 점, 더 노력해야 할 점을 함께 이야기합니다. 아빠는 선수출신도 코치도 아니기에 이기는 방법을 알려줄 수는 없습니다. 응원하고 함께 고민하는 수밖에요.


하지만 이상한 일은 여기서부터 생겨납니다.


아들을 이긴 상대방 아이는 밝게 웃으면서 나오는 게 아니라, 긴장 가득한 모습으로 나옵니다. 코치님 앞에서 차렷자세로 고개를 푹 숙인 채 혼나기 시작합니다. 이겼는데 말이죠. 여기서 왜 이렇게 했냐, 저 순위 낮은 녀석 상대로 이것밖에 못하냐 등 등  많이도 혼납니다.

이기고 돌아왔는데 왜 혼나야 하나요?


대회장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심하게 혼내거나 욕설을 섞어가며 혼내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모든 코치님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좋은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제가 가르칠 수 없는 시합에서의 전략과 승패의 이유에 대해 더 자세히 듣고 배울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자식처럼 가르치는 마음가짐의 코치님들도 매우 많습니다. 가령 아들의 친한 테니스동료의 코치님은 그들의 식습관, 미래를 위해 우선시 되어야 하는 운동법, 즐겁게 운동하는 방법들을 고민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혼내면서 가르치는 교육을 하는 코치님들도 분명 있고요. 혼내면서 본인의 감정이 들어가 있나 의심이 드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회사동료에게 한 적이 있습니다. 그도 어릴 적에 검도선수로 활동했던지라 오히려 그런 방식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해서 놀랐습니다. 이겨도 혼내고, 지면 더 혼내서 악바리 근성을 키워야 한다고요. 승부욕을 키우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요. 우리 아들이 계속 지는 이유가 온실 속의 화초처럼 마음 편하게 배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하네요.


<어릴 때는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경쟁심을 키우는 게 맞다.> VS <어릴 때일수록 이기는 방법과 근성을 배워둬야 한다.>


아직도 아이들을 혼내면서 가르치는 코치님들을 보면 이렇게 하는 게 맞는 방식인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사실 그렇게 배운 아이들이 근성과 승부욕이 더 강해져 우리 아들보다 훨씬 빨리 배우고 잘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또한 혼날 때뿐, 금방 신나서 떠들고 노는 모습을 보면 어느 정도는 기합을 잡아주는 게 맞나 싶기도 합니다.


체육과 전혀 관련 없는 삶을 살아온 저로서는 어떤 것이 정답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어릴 때는 배우는 모든 것이 흥미롭고 즐거워야 하며, 이를 통해 아이의 자존감을 키워줘야 한다는 자녀교육에 대한 신념은 있습니다. 아들이 저의 마음과 교육관을 잘 이해하고 잘 따라와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지난여름, 지고 돌아와 분해서 우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역시 승부욕은 남들이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게 맞나 봅니다.


올해는 아들이 더 재밌게 하고 더 많이 이겼으면 좋겠습니다. 더욱 테니스를 사랑하게 되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아들아,

이제부터 지면 빠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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