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감자 Feb 22. 2024

순수했던 이 시절을 기억해

자식 운동시키는 건 신중해야 합니다. ep.5

혹독한 겨울훈련을 버티고, 드디어 올해 첫 대회에 다녀왔습니다. 그동안 시합이 몇 번 있었지만 아빠의 연차부족으로 대회에 참가할 수 없었기에 이번 대회에 거는 기대가 매우 컸습니다.


결과는,

이길 녀석들에게는 이기고, 질 녀석들에게는 지는 생각보다 뻔한 대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역시 아들이 성장한 만큼 친구들도 많이 늘었더군요. 앞으로의 길이 꽤나 험난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음 대회에는 더욱 힘내보자라는 파이팅을 얻고 돌아왔습니다만, 유독 예선에서 만났던 5학년 아이와 그 아이의 부모가 생각이 많이 납니다.


키도 매우 작고 실력도 아직 많이 모자랐던 그 아이는 우리 아들을 상대로 열심히 해보았지만 0:6 베이글스코어로 패하고 말았습니다.


나름 공 하나하나에 진심을 다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느라 바쁩니다. 서브도 아직 어려워 더블폴트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기죽지 않습니다. 열심히 기합을 넣기도 하고, 아웃된 공을 인이라고 우겨보기도 하고, 시종일관 우리 아들을 노려보면서 공격적으로 플레이를 합니다.


그 아이의 부모 또한 열심히 응원을 합니다. OO아, 괜찮아! OO아, 잘했어! 주변은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아이를 응원합니다. 시합을 뛰고 있는 아들이 기특한지 실수를 해도 웃고, 잘하면 뛸 듯이 기뻐하고 완전히 게임에 몰입되어 있습니다.


시합에서 지고 돌아온 그 아이는 아쉬운 마음과 후련한 마음이 교차되는 듯한 벅찬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기특한 부모는 어떻게 아이에게 밝게 위로를 해줘야 하나 고민을 합니다.



일 년 전의 우리들의 모습과 너무 닮았습니다. 그래서 자꾸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도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작년 이때의 우리 아들도 형편없는 실력이었습니다. 그래도 아들은 이를 악물고 잘하는 형님들에게 덤볐고, 졌고, 또 포기하지 않고 덤비고, 또 졌습니다. 저 또한 그 아이의 부모와 똑같습니다. 포기하지만 말고 많이 배우고 가자라는 주문만 하고, 완전 게임에 몰입되어 응원을 하던 생각이 많이 납니다.


아들이나 저에게 테니스시합을 다니기 시작했던 작년 첫 해는, 테니스를 좋아하는 가장 날 것의 마음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순수하게 테니스를 좋아하고 이기든 지든 마냥 즐거웠던 첫 해의 감정을 기억하고 간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 선수생활을 계속해 나갈 아들과 그런 아들을 계속 응원할 아빠에게 잊지말아야 할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지 않을까요?


순수하게 테니스를 즐기던 이때를 기억해.



모든 일이 그런 것 같습니다.

간절하고, 정말 하고 싶었고, 너무 즐거웠던 것들이 익숙해지고 나면 이것을 왜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게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정말 가고 싶었던 회사에 취직을 해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내가 이러고 사는 게 맞나 싶어지고, 너무 맘에 들었던 이성과 사귀게 되어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화내고 싸우게 되고요. 처음 그 감정과 마음을 잃지 않아야겠다는 뻔한 생각을 합니다. 초심, 그거.



가장 중요한 것은, 5학년의 그 아이의 실력이 작년 아들의 실력보다 훨씬 나았다는 사실입니다. 도대체 얼마나 엉망인 실력으로 겁도 없이 이 세계에 발을 들인 건지 생각하면 웃음이 납니다.


아들도, 그 아이도, 모두 파이팅!

작가의 이전글 맞벌이하면서 아이 운동시키는 게 가능할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