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사를 하게 됐다.
오래된 구축 아파트라 손봐야 할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다. 그중 하나가 수전. 요즘 수전들은 아무리 물을 세게 틀어놔도 튀기지 않게끔 만들어졌는데 이 집은 살짝 틀고 손만 씻어도 주변에 물이 엄청 튀기니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국 인터넷으로 물튀김방지정류망(이것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됐다.)을 사다가 뚝딱뚝딱 교체를 했다. 하지만 잘못 샀는지 오히려 물살이 더 과격해져서 틀어놓는 것만으로 주변을 물바다로 만들어 버리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 허탈함에 다시 원래의 것으로 바꿔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거실에 앉아있는데, 그 사이에 딸이 화장실을 들어가 버렸네.
"으악"
잠깐의 비명과 함께 옷과 얼굴이 흠뻑 젖은 딸이 나와서 웃으며 하는 말.
"아따, 워터파크 잘 갔다 왔네."
초등학교 2학년 여자애의 입에서 '아따'라는 말이 나온 것도 신기하고,
옷이 젖어 짜증 날 만도 한데 워터파크로 승화시켜 버리는 여유로움과 센스.
어차피 잠옷으로 갈아입으려고 했는데 잘됐다는 원형적 사고. 이게 바로 원형적 사고라는 것이구나!
하루에도 수십 번 짜증을 내는 아빠를 반성하게 만드는 내 딸의 원형적 사고를 배울 수 있게 되어서,
완전 럭키비키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