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에서 시작된 용기
여기저기 처음 보는 모자들에 혜원이는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입을 벌리고 둘러보는 혜원이가 딴길로 새지 않게 아이들은 혜원이를 안내했다.
초록색 문 앞에서 자신의 집이라고 소개한 아이가 문을 열자, 아늑한 공간이 혜원이의 눈에 들어왔다.
"여기에 앉아 있어 봐. 내가 옷과 빵을 좀 내어올게."
혜원이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지개색 창모자를 쓴 중년의 남자와 남자 아이가 함께 찍은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는 다양한 모자 사진이 벽에 붙어 있었다.
옷을 갈아입은 혜원이는 식탁에 앉아 아이가 내어온 빵을 먹기 시작했다. 맞은편에서 소년은 눈을 반짝이며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너는 어디서 출발했어? 어떤 여행 중이야? 부럽다! 나도 얼른 여행자가 되고 싶어!"
혜원이는 잠시 망설였다. 어쩌지? 사실대로 말해야 하나? 여행자? 난 여행자가 아닌데...
하지만 혜원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아이는 신나게 말을 이어갔다.
"나도 얼른 모자를 받아서 아빠같은 여행자가 되고 싶어!"
혜원이는 아이의 말을 듣고 의문이 들었다.
"모자?"
"응! 우리는 19살이 되면 자기 자신과 가장 잘 어울리는 모자를 선물받아. 나는 아직 나이가 모자라서 자나 깨나 시간이 가길 기다리고있어"
혜원이는 혼란스러웠다. 이곳에서는 19살이 되면 모자를 준다니? 혜원이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 마을에서는 모자가 아니라 신발을 줘."
아이는 팔짝팔짝 뛰면서 대답했다.
"역시 너 여행자가 맞구나? 나도 들은 적이 있어! 우리 아빠가 여행 다니면서 마을마다 주어지는 선물이 다 다르다고 했거든. 그 말이 사실이구나! 우와, 신발이라니! 나도 보여줄래?"
혜원이는 생각했다.어쩌면 내 한 짝뿐인 신발을 보여줘도 이 아이는 모르겠구나. 가방에 두었던 신발 한 짝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보여주었다.
소년은 운동화를 살펴보며 말했다.
"우와! 운동화라니! 너무너무 재밌다, 나중에 나도 여행자가 되어서 너희 마을에 놀러 간다면, 그때 나도 신발을 선물해 줄래? 어때? 우리 교환하자!"
아마 마을에서는 비웃음을 당할 게 분명한 짝 없는 운동화가, 이 아이에게는 특별하고 신기해 보이다니. 혜원이는 아이에게 말했다.
"우리 마을엔 나보다 멋있는 신발이 더 많아! 혹시 마을을 구경시켜줄수있니?"
혜원이는 이곳에서 자신의 짝 없는 신발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한편으로 위로가 되었다. 이 마음은 모자 마을을 구경하고싶다는 생각까지 들게만들었다.
마을은 혜원이의 마을과는 달라 신기한 것 투성이었다.
모자 사탕, 모자 풍선, 장미 모양의 핑크색 모자, 심지어 강아지와 고양이를 위한 펫 모자도 판매하고 있었다.
새로운 경험에 정신이 없었다. 그때 아이가 말했다.
"기념품이 필요하지? 여행자들은 기념품을 모으잖아! 내가 우리 마을의 기념품 가게로 데려다줄게!"
혜원이는 아이와 함께 모자 모양 가게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수천 가지, 수만 가지 모양의 모자 브로치가 넘쳐났다. 아마 이 모든 브로치를 구경하려면 하루는 꼬박 걸릴 것이다.
각기 다른 색깔과 모양 덕분에 혜원이는 기분이 좋았다. 혜원이는 잠깐동안 운동화가 아니라 모자를 받아도 썩 나쁘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아이가 혜원이에게 무엇인가 건넸다.
"이거 선물이야!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바다가 있는 마을로 여행을 가보고 싶어."
아이가 건넨 것은 파란색 배 모양으로 된 모자 브로치였다.
"어... 고마워... 브로치를 달 만한 곳이..."
"너의 운동화에 다는 건 어때? 여행자의 운동화잖아. 기념이 될 거야!"
아이는 브로치를 직접 혜원이의 운동화에 달아주었다.
혜원이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자신을 부러워하는 아이의 눈빛에 차마 진실을 말할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무엇보다 쓸모없고 무늬 없는 운동화에 푸른 배 모양의 모자 브로치는 꽤 잘 어울리기도 했다.
"고마워. 나중에 네가 우리 마을에 온다면, 내가 꼭 멋있는 신발 선물로 보답할게."
그렇게 혜원이는 아이와 함께 마을 여기저기를 한참 돌아다녔다. 그러다 문득 시간이 꽤 흐른 것을 느꼈다.
"미안해. 이제 나 가봐야 할 것 같아."
"그래, 그래! 여행자는 원래 오래 머무르지 않는 거야!"
혜원이는 브로치가 달린 운동화를 들고 마을을 나섰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연기가 퍽 가까워진 느낌이다.
뒤를 돌아보니 아이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혜원아! 다음에는 내가 멋진 모자를 받아서 너희 마을로 놀러 갈게! 기다려 줘!"
흔드는 손을 뒤로하고 혜원이는 걷기 시작했다. 자신이 곧 여행자가 된 느낌이었다.
조금은 특별해진 운동화를 바라보며 혜원이는 마음을 다잡았다.
'분명 내 신발은 멋진 신발일거야'
이제부터 부지런히 가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