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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꽃길의 시작

by smilemail

드넓은 꽃밭에서 느꼈던 따스함을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었다.

혜원이는 공장을 뒤로한 채, 새 신발을 신고 첫발을 내디뎠다.
하얀 운동화에 흙이 살며시 물들었다.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이미 걸어온 길이었지만,
분명히 새로운 길이었다.

혜원이의 말에 아저씨는 웃음을 터트렸다.


"혜원이는 참 특별한 아이구나, 완성된 신발을 원하는데, 기다려보렴"


아저씨는 기계에서 염색되지 않은 신발 한 짝을 건네주었다.

짝 없는 신발로 놀림받을 거란 불안감은 어느새,

자신만의 신발을 만들 수 있다는 특별함으로 바뀌어있었다.


"혜원아, 기계를 직접 돌리는 건 위험하단다. 너만의 신발을 만들 수 있는 곳으로 데려가줄게"


혜원이는 아저씨를 따라 염색 구역 복도를 지나, 어디론가 들어갔다.

그곳은 커다란 책상을 가운데 둔 커다란 방이었다.

갖가지 디자인의 신발들로 벽면이 가득 차 전시되어 있었다.


"여기는 신발을 디자인하는 공간이야, 여러 가지 재료들과 염색약이 있으니 마음껏 사용해보"


혜원이는 책상으로 다가갔다. 이리저리 펼쳐진 종이 위에는 연필로 스케치된 신발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고,

책상 옆 상자들 속에는 알록달록한 염색약, 붓, 레이스, 구슬 같은 신발을 꾸밀 수 있는 재료들이 있었다.

혜원이는 그 광경이 씨앗을 준 할머니의 책상과 닮아 있는 듯해 혼자 작게 웃었다.


혜원이는 짝을 찾은 운동화를 책상 위에 두었다. 참 신기했다.

오늘 아침, 느닷없이 하늘에서 툭 떨어졌던 짝 없는 신발,

몰래 떠난 여정의 끝에서 신발의 짝을 찾게 될 줄은 몰랐다.


'이제 어떻게 꾸며볼까?'


혜원이는 상자 속에서 붓을 꺼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건 모자 마을 아이가 선물해 준 배 모양 브로치였다.

순간 여정이 머릿속에 차곡차곡 떠올랐다.

다양한 마을을 여행하고 싶다는 아이의 눈빛,

비가 그친 뒤 노랗게 물들어 있는 꽃밭과 씨앗을 건네던 할머니의 손

혜원이는 할머니가 준 씨앗을 주머니에서 꺼내었다.

브로치와 씨앗을 번갈아가면서 쳐다보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붓을 다시 내려놓았다.

그런 혜원이를 본 아저씨가 말했다.


"혜원아, 실수해도 괜찮아. 꾸밀 수 있는 신발은 많아! 걱정하지 말고 해 봐"


혜원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저씨, 못하겠어요. 이 신발은… 그냥 이대로가 제 것인 것 같아요.”


하얀 운동화는 혜원이가 처음으로 우리 마을을 나와 다른 세상을 경험한 그 자체였다.

운동화를 꾸미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신발은 이미 혜원이가 걸어온 길, 보고 듣고 느낀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혜원이는 신발을 조심스럽게 들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신고 있던 슬리퍼를 벗고 드디어 운동화를 신었다.

마치 “잘못 온 신발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듯,
하얀 운동화는 혜원의 발에 꼭 맞았다.

알록달록한 양말과 브로치가 새하얀 운동화와 놀랍게도 잘 어울렸다.


"아저씨, 감사해요! 전 제 신발을 찾은 것 같아요. 신발을 찾았으니 다시 마을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혜원이는 아저씨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공장 아저씨는 혜원이를 입구까지 배웅해 주었다.


"혜원아 내가 신발을 만들어 선물을 한 아이 중에서 너는 정말 특별한 아이야, 조심히 가렴"


혜원이는 공장을 나와 씨앗을 꼭 쥐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세상에는 더 많은 꽃들이 있을 거야, 이 꽃들로 우리 마을을 물들게 하고 싶어"


혜원이의 표정은 어느새 확신으로 바뀌었다.


"내 꿈이야! 내 꿈을 찾은 거 같아, 세상을 더 많이 보고 듣고, 아주아주 예쁜 씨앗을 모아 우리 마을로 가져오고 싶어!"


드넓은 꽃밭에서 느꼈던 따스함을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었다.

혜원이는 공장을 뒤로한 채, 새 신발을 신고 첫발을 내디뎠다.

하얀 운동화에 흙이 살며시 물들었다.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이미 걸어온 길이었지만,


분명히 새로운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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