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함을 통해 바라본 오해 풀기
때는 2020년 2월. 일, 시, 분, 초까지 기억나진 않지만 너무 명확히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는 인문학 열풍으로 구글에 들어가는 사람들 중 인문학 전공자가 늘어나 문과 최고의 부흥기가 아니냐 이런 말이 나오던 시기였습니다. 저는 패션이나 전자기기, 차와 같은 트렌드는 관심 없지만 지적 허영심(?)과 관련된 트렌드에는 관심이 많으며, 한 주제를 가지고 토론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2019년 한 독서토론 모임에 가입했었습니다.
19년에 가입한 뒤 6개월 정도 지난 어느 날 모임장이 저에게 강연에 참여해 볼 생각이 없느냐고 요청했습니다. 저는 좋다고 했죠. 강연은 인문학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이미 유튜브에서 많이 봐왔던 내용들이라 크게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끝날 때 "인문학 교육 관련 사업을 해당 지역까지 확장하려는데 추첨을 통해 100만 원 상당의 교육을 무료로 시켜주겠다. 관심 있으신 분은 여기 종이에 내용을 적어서 제출해 달라."라고 했습니다. 뭐, 추첨이고 무료로 해준다는데 되면 좋고 안되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같이 간 사람들과 함께 적어서 제출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같이 간 사람 4명 중 3명이 당첨됐습니다. 그렇게 인문학 교육을 진행하게 됐습니다. 교육 시작 전 OT를 진행하며 인문학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함께 3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더군요. 첫 번째는 논어였습니다. 두 번째는 불경, 세 번째는 성경이었습니다. 저는 뭔가 종교적인 것보다는 정말 '學'에 초점을 맞추고 싶어 논어를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 저와 함께 당첨됐던 두 사람이 성경을 선택했고,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성경을 공부하게 됐습니다.
강사는 말을 아주 잘했습니다. '와, 강의를 하려면 저렇게 해야겠구나.'싶을 정도로 세상에 설민석 같은 사람들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성경 공부에 빠져들게 되었을 즈음 갑자기 강사는 사업 확장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좀 더 큰 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토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또 흔쾌히 수락했죠. 그렇게 거기서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고 친해질 즈음 갑자기 일이 생깁니다. 2020년 2월 중순 무렵, 대구에서 갑작스럽게 코로나 확진자가 증가한 것입니다. 왜 대구에서만 갑작스럽게 코로나 확진자가 늘었을까 조사해 보니 한 종교가 엮여있었습니다. 얼마 뒤 뉴스에서 해당 종교와 관련된 모든 건물 주소를 나열할 정도로 심각했었습니다.
저는 평소에 '보이스피싱 누가당해?'라는 선입견으로 살아왔던 사람이다 보니 당연히 저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반복적으로 올라오는 뉴스에 혹시나 싶어서 주소들이 나열되어 있는 페이지에 접속해 '컨트롤 + F'를 눌렀습니다. 제가 갔던 곳의 주소를 입력하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결과가 없습니다.'라는 문구를 기대했는데 파란색 드래그가 나오는 겁니다. 너무 충격적인 마음에 당시 연락하고 있던 사람들과 강사에게 물어봤습니다. "우리가 간 곳의 위치가 뉴스에 이렇게 나오는데 우리 혹시...?"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일단 진정하고 얘기를 기다려보자."였습니다. 여기서 '아, 강연부터 성경까지 모든 것이 설계된 거였구나.'를 느꼈습니다.
저는 관련된 모든 사람들과 연락을 끊었습니다. 문제는 사무실이었습니다. 자의는 아니었지만 어찌 되었든 해당 종교와 연관되어버려 진 상태였기에 선배들에게 말하고 저는 2주간 격리당했습니다. 다행히 코로나에 걸리진 않았지만 해당 종교와 엮였다는 내용이 해당 종교인으로 변질되어 제 주변 사람들은 저를 이상하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제 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었죠. 당시에 거의 코로나를 몰고 온 재앙, 살인자와 버금가는 수준의 취급을 받았습니다. 제가 어떻게 말해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1주? 2주?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어떤 다큐프로에서 저와 같은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이 방송에 나오고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던 시선을 거두었습니다. 예전에 타블로가 학력위조(안 했지만) 사건 때 했던 말이 생각나더군요. "못 믿는 게 아니라 안 믿는 거잖아요..."
저는 이렇게 '억울함'에 대한 감정을 뼛속 깊이 새겼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주체가 다른 사건이 생겼습니다. 제가 후배에게 어떤 일을 시키고 나중에 물어보니 모른다고 얘기하는 겁니다.
나 : "왜 모르냐, 내가 너와 함께 작업했던 기억이 너무 명확하게 있는데?"
후배 1 : "제가 안 했습니다."
후배 2 : "아냐 네가 했어"
나 : "아니, 지난번에 네가 ★☆●◎라고 쓰던 거 ●◎★☆로 바꾸라고 했잖아."
후배 1 : "뭔지는 아는데 제가 안 했습니다."
선배 : "그거 후배 2가 시작했어"
후배 1 : (머리를 쥐어뜯으며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제가 안 했다니까요!!"
후배 2 : "제가요???"
저는 후배 1에게 잘못을 추궁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자료 찾아서 다 되어있는지 확인하고 제출하는 것이었고, 만약에 저장이 안 되어있다면 다시 작성해서 제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후배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제가 안 했다니까요!!"라고 말했을 때 상당히 당황스러웠습니다. 당시 후배 1의 표정과 떨리는 몸은 분명 억울한 감정이었습니다. 제 의도는 후배에게 "네가 했는데 왜 모르냐, 정신 안 차리냐? 일 똑바로 안 할래?"와 같은 잘못을 추궁하는 내용으로 전해진 것 같았습니다. 명확하게 기억나는 내용들이 있었지만, 제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이상하게 흘러가는 분위기에 잠시 이야기를 접었습니다. 그리고 후배 1은 담배를 피우러 잠시 나갔습니다.
뇌과학 책을 읽으면서 많이 봤던 내용 중 하나가 기억은 왜곡이 심각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명확하게 기억해도 그 당시 영상을 저장해 두었거나, 바로 기록을 하지 않았다면 왜곡이 심각한 수준까지 될 수도 있다는 연구결과를 많이 봤습니다. 다행히 이 생각이 나면서 그동안 상대방에게만 이 사실을 적용하고, 나에게는 적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성했습니다. 잠시 담배를 피우고 온 후배 1에게 "내 기억이 맞다고 우겨서 미안하다."라고 사과했습니다. 후배 2도 "나는 너의 잘못을 추궁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미안하다."라고 사과했으며, 저도 덧붙여 "맞아, 그런데 우리의 의도가 어떠했든 네가 기분이 나빴으면 우리가 잘못한 거야."라며 주체가 달랐던 이 사건을 마무리했습니다.
평생 억울함이라는 감정 없이 살아가면 좋겠지만, 적어도 살면서 한 번 이상은 느끼게 될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당했을 때의 그 감정을 생각하면 아직도 분함과 무기력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억울함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억울함을 뼈에 새겼던 제가 최근에 후배 1에게 이 감정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해가 쌓이기 전에 후배의 억울함을 인지하고 즉시 사과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의도 전달 과정에서 생기는 오해는 종종 있습니다. 이것은 쌓이기 전에 빨리 풀수록 좋습니다. 만약 내가 상대를 오해하게 만들었고 그것을 인지했다면, '이해해 주겠지?, 살다 보면 오해가 생길 수도 있지'라는 마음대신 즉시 사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