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선생님이 첫 수업을 하시던 날. 선생님만큼이나 나도 진땀을 흘렸다. 아이들과 친해지려고 하나씩 하나씩 농담을 꺼낼 때마다 몇몇 아이들은 웃었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야유를 보냈다. 우리와 친해지고 싶어 하는 마음이 느껴졌지만, 웃기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어색해서 미간을 몇 번이나 찌푸렸는지 모른다.
현서쌤은 단시간에 속마음을 털어놓게 하는 능력이 있다. 타인에게 먼저 다가가고, 배려하고, 얼굴만 보고도 나의 기분을 알아차리는 분이셨다. 마냥 따뜻한 것 같은 쌤에게도 우울한 감정이 있다는 걸 알고 놀라긴 했다.
내가 그동안 봐온 수학선생님은 겉은 파랗고 속은 빨간 사람이었고, 현서쌤은 겉은 빨갛고 속은 파란 사람이었다.
그래서 둘이 만난다면, 서로의 다른 모습에 끌려 특별한 보라색으로 섞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 몰래 소개팅을 하고, 나 몰래 연애를 시작했지만 다 알고 있었다. 수학 선생님은 언제부턴가 새로운 색들의 옷을 입기 시작했다. 교복 같았던 옷들이 솜사탕처럼 변했다. 현서쌤은 예전처럼 화려하게 꾸미지 않았다. 대신 책을 샀다. 그것도 아주 두꺼운 책으로.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특별한 보라색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현서쌤이 과외를 미루고, 얼굴이 흙빛이 되어 나타났다. 학교에서 본 수학선생님은 여전히 그대로라 아무것도 알아차릴 수 없었다. 한 명은 예전 그대로인데, 한 명은 누가 봐도 헤어진 얼굴이었다. 그래서 물어보기가 겁났다. 현서쌤이 돌아올 때까지 좀 더 기다렸다. 3개월쯤 지났을까. 현서쌤이 먼저 나에게 물었다.
"그때 말이야. 어떤 점이 어울릴 거라고 생각한 거야?"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그대로 말했다.
파란색 수채화 물감을 묻힌 붓이 지나간 자리에, 빨간색 수채화 물감을 묻힌 붓이 지나가다 만나,
투명하고 영롱한 특별하다는 보라색처럼 둘이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현서쌤은 가만히 생각하더니 내게 말했다.
"그 그림이 수채화가 아니라, 점묘화였던 것 같아."
보라색이 된 것처럼 보였지만 가까이서 보면, 파란색과 빨간색은 섞이지 않고 그대로 그 자리에 있던 것뿐이라고.
그 그림에 물을 한 방울 두 방울 떨어뜨리면 다시 영롱한 보랏빛이 되지 않겠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물방울이 눈물일까봐 안타까워서 말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