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은 Jan 26. 2024

나를 괴롭힌 계모에게 효도하고 싶은 마음

내가 아끼는 동생은 계모 밑에서 자랐다. 친모는 알콜중독에 늘 험한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견디다 못해 이혼을 선택했고, 계모가 들어왔다.


계모는 아들 둘을 데리고 내 동생 집에 들어온 모양이다. 그녀는 알콜중독자는 아니었지만, 그 동생에게 못되게 굴었고, 동생은 힘겨운 유년기를 보내야 했다.


그땐 그게 학대였는지 몰랐어요.


동생은 말했다.


예를 들면 어떤 게 있었지?


일단 씻지를 못하게 했어요.


왜?


물값 나온다고요.


이런!


그리고 모든 물건을 만지지 못하게 했어요. 냉장고도 손댈 수 없었고, 주방에 들어갈 수도 없었고, TV리모콘을 만질 수도 없었죠. 


그게 말이 돼?


나는 물었다.


그러게요. 그땐 그게 나쁜 건지 몰랐어요.


동생은 말을 이었다.


그 계모는 나를 빼곤 자신이 데려온 아들 둘에게는 무척 잘해줬어요. 나한테만 못되게 굴었죠. 그래도 밥은 먹게 해 줬어요. 자기 아들한테는 엄청 다정했죠. 나는 내 방 안에만 갇혀 있었어요. 나오면 안 됐고, 화장실에서 물을 써도 안 됐고, 냉장고를 내 맘대로 열어서도 안 됐죠.


정말 나쁜 사람이구나.


나는 혀를 끌끌 찼다.


스무 살이 넘어서 군에 가고 난 뒤에 사람이 매일 씻어야 한다는 걸 알았죠.


그 말에 가슴이 아팠다. 어떻게 그런 삶이 있을까?


대학도 못 갔고,  스무 살이 넘으면 집을 나가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정말 스무 살이 되자마자 집을 나왔어요. 닥치는 대로 일을 해서 살아남아야 했죠.


정말 힘들었겠구나.


스물세 살 땐가, 백화점에서 일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그 계모를 불러서 밥을 사 드렸어요.


왜?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


옷 한 벌을 사 드리고 백화점 꼭대기층에 있는 가장 비싼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계모가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어요. 내가 너에게 가혹하게 한 것 맞다고.


그래도 인간은 인간이구나! 자기가 한 일을 인정은 하네.


네, 그런데 사과도 그것으로 끝이더군요. 그 뒤론 똑같았어요. 나보다 장성한 자기 아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다정한데 저한테는 그러지 않았죠. 그리고 자신이 잘못한 것에 대해서도, 그 일에 대해 나에게 사과했었다는 것도 잊은 것처럼 행동하더라고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처럼.


아, 어떻게 그럴 수 있니?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게, 내가 잘 돼서 그 계모한테 잘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이 지점에서 나는 화가 났다.


네가 왜 그래야 하지?


모르겠어요. 그냥 그런 마음이 들어요. 열심히 노력해서 내가 잘 된다면, 그 계모한테 효도해 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요.


음... 이해할 수 없네.


물론 나라면, 인연을 끊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상황에 모든 인간이 똑같은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 이 동생의 선택, 이 동생의 희망사항은 나보다 고결하고 숭고하다.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기독교 성경에 따르면 인간은 본래 악하고, 죄인이나 지금 우리 현실을 보면, 인간은 자정능력, 도덕적 역량을 갖추고 있는 듯하다. 악인의 자녀가 반드시 악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악인의 자녀는 그 자녀가 선택함에 따라 얼마든지 선의 길을 갈 수 있다. 이 동생의 경우를 보면 더욱 그러하다.





이 친구, 성우 지망생이다. 허스키한 목소리지만, 실제 더빙에 들어가면 맑고 청아한 목소리를 낸다. 딕션도 훌륭하다. 나는 이 친구가 성공한 성우가 되길 바란다. 어려운 성장기를 보낸 만큼,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만큼, 열심히 포기 없이 노력하고 있는 만큼 그 보상을 제대로 받았으면 한다. 노력한 자에게 보상을!


정말 악한 인간에 둘러싸여 자랐음에도, 자신의 내면에 선한 의지를 품고 있다는 것은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인간은 자신이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다. 그렇게 악을 끊고 선을 쌓아가는 것이다. 참 대단하고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 동생에게 많은 것을 배운다. 포기하지 않는 것, 노력하는 것, 지난 날의 괴로움을 현재의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켜 나아가는 능력. 이것들은 그 자체로 고귀하다.








*구독을 부탁드립니다. 구독은 작가를 춤추게 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