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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람 Feb 08. 2022

남편의 취미생활 이해하기

어느 날 남편이 쪼르르 와서 사고 싶은 것들이 있다며 위시리스트를 보여줬다.


바스 에센스, 브러시, 샴푸 …


사진마저 미용용품처럼 생겨서 순간 ‘피부관리조차 귀찮게 여기더니 이제 그루밍족이 되려는 건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건 오해였나 보다. 자세히 보니 그 아이템들은 전부 세차용품이었다.


요즘 들어서야 이해하게 된 남편의 취미는 바로 ‘세차’다. 구독하는 유튜브중 절반 이상이 세차에 대한 내용이다. 그들 세계에서 본인 같은 사람을 일명 ‘세차 환자’라고 한다나. 세차 영상은 왜 보냐고 물었더니 세차 방법도 배우고 대리 만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영상을 보고부터인지 집에 세차용품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다. 베란다 수납공간에도 세차용품이 산더미다. 버킷, 워시 미트, 압축 분무기, 퀵 디테일러 등등. 타월에도 종류가 있단다. 물기 닦는 드라잉 타월이 있고, 왁스 칠하는 버핑 타월이 있다. 하나하나 샀던 물품들이 이제 상자에 한가득이다. 남편은 세차를 하러 갈 때마다 그 짐들을 옮기느라 고생이다.


심지어 세차하는 데 들이는 시간을 보면 더 기가 찬다. 빠르면 3시간, 늦으면 4시간까지. 무슨 세차를 그렇게 오래 하냐며 이해할 수 없다고 괜히 무리하지 말고 정도껏 하고 오라고 부탁까지 하기도 했다.


동네 셀프세차장에서 30분 컷을 하고, 주유소 자동세차에 아랑곳하지 않는 나에겐 남편의 그런 취미는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신혼 초반에는 어차피 금방 더러워질 건데 그렇게 공들일 필요가 있냐며 말씨름까지 하곤 했는데 시간이 지난 지금은 이제 그러려니 한다. 그래, 본인이 만족하면 된 거지 뭐.


이날 남편의 위시리스트를 보고는 바디워시는 없냐고 차도 이제 메이크업을 하는 거냐며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한편으로는 이 정도로 남편이 열정을 갖고 찾아볼 정도면 그냥 받아들여야겠구나 싶었다. 내가 만약 반대의 상황에 있다면? 자기 물건을 애지중지하는 상황이라면 나였어도 그러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 남편에게 갖고 싶은 건 사되 다만 기존에 있던 것들 중 겹치는 건 없는지 잘 확인하고 쓸 것만 사면 좋겠다고 말하며 합의를 봤다.


남편과 같은 ESFJ여서 비슷한 점도 많았지만 신혼 초반에는 서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세차라는 남편의 취미생활이었다. 회사에서 친분을 갖고 지냈던 중년의 어르신께서 그러셨다. 부부도 시간이 지나면 서로 다른   이해하고 그러려니 하면서 살게 된다고.  그러면 같이  산다고.  말이  공감이 가는  보니 우리의 결혼생활도 조금씩 무르익어 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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