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가 이렇게 축하받을 일이라니요. 사람들은 나의 마지막 출근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겠다는 결단을 대단히 여기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너야말로 진정한 MZ세대야'라는 묘한 축하를 받으며 회사를 떠났다.
하지만 정작 내 앞에 놓인 현실은 초라했다. 내가 직장인이었다는 사실은 자존감에서 꽤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나 보다. 퇴사를 하고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 몇 주간의 휴식기 동안 나의 자존감은 저 밑바닥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일하는 남편 대신 설거지 정도는 내가 해야지. 그런 김에 청소기도 좀 돌리고. 이왕 하는 거 걸레질까지 하지 뭐.
자연스럽게 모든 집안일은 나의 몫이 되었다. 여태 남편이 맡아온 빨래 돌리기와 수건 개는 일까지 해 치우고 나니 안 그래도 화장실 청소도 내가 하는데 이렇게 돼버리면 집안일이란 집안일은 내가 다 하는 거잖아?
점점 나의 평범한 일상이 하찮아 보이기 시작했다. 일 좀 했다고 생색낼 사람도 없고 사람들이랑 부대낄 일도 없고 잡다한 이야기 나눌 사람도 없고 말이다. 사회와 단절됐다고 생각하니 나의 자존감은 종잇장처럼 구겨지고 있었다.
매일 저녁 남편이 '오늘은 어땠어?'라고 묻는 질문은 곤란한 질문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매번 똑같은 대답에 맴돌았다.
“청소 좀 하고 책 읽고 글 끄적이다가.. 똑같지.”
우리 집 가장은 남편과 나 둘이었는데 당분간 남편 혼자 그 역할을 하게 되었다. 남편이 조금이라도 가장 행세를 하면 ‘임시 가장’일 뿐이라고 남편의 유세에 펀치를 날렸다. 하루에도 수없이 오르내리는 자존감을 수습하면서 그렇게 한 달을 보냈다.
다행인 건 나의 에너지를 쏟을 새로운 곳이 생겼다는 것. 학부 때와는 다른 분야를 전공하게 되면서 배워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지만, 남편의 단골 질문인 '오늘은 어땠어?'라는 물음에 이제 할 말이 많아졌다. 앞으로 할 일이 많아졌다는 사실에 새삼 으쓱해하고 집안을 휘돌며 다니니 일상에도 다시 생기가 도는 듯하다. 회복될 것 같지 않던 자존감을 조금조금씩 되찾고 있다.
마음이 지쳐서 도저히 못 버틸 것 같던 시간을 어찌어찌 극복해낸 걸 보니 나 자신이 조금은 기특하기도 하다. 앞으론 그런 일 없을 거라며 나를 토닥였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여전히 스스로를 어르고 달래야 할 만큼 금쪽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