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을 하고 누리는 나름의 특권 중 하나는 부모님으로부터 종종 책 선물을 받아본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새로 나오거나 주목을 받고 있는 책이 생길 때면 우리 집 주소로 그 책을 주문해주신다.
얼마 전 그림책 작가 이수지 님의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으로 알려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수상 소식이 알려졌다. 이 소식을 이미 기사로 접했던 나는, 그림책을 몇 권 보냈다는 아빠의 말에 단번에 누구의 책인지 알아챘다. 도대체 어떤 책인지 궁금해서 얼른 받아보고 싶었지만, 쇄도하는 주문량에 도착 예정일이 늦어졌고 책에 대한 궁금증은 점점 커졌다.
마침내 도착한 책은 <그림자놀이>와 <여름이 온다>였다. <그림자놀이>는 여자 아이가 그림자놀이를 하면서 어떤 상상을 하면서 놀이를 하는지 그림으로 보여준다. 아이는 그림자를 보면서 꽃, 나비, 코끼리 등을 상상하는데, 이때 신발의 그림자로 탄생한 여우가 현실 세계에 있는 아이를 쫓자 아이는 그림자 세계로 도망치지만 혼자 남은 여우가 슬퍼하고 외로워하자 여우와 화해하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작가가 의도한 내용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내가 이해한 내용은 이렇다. 오로지 그림만 있으니 책 내용에 대한 생각이 다양한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여름이 온다>의 경우 아이들이 여름을 맞이하는 모습을 표현한 책이다. 여름이라면 폭염을 상상하며 질색부터 하는 나의 모습과는 달리, 뙤약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물놀이를 하며 뛰어놀고 서로 장난치며 여름을 격하게 즐기는 아이들을 보고는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언제부터 여름을 싫어하기 시작했을까. 겨울도 마찬가지다. 한때는 날씨가 덥든 춥든 습하든 비나 눈이 쏟아지든 나름대로 모든 날씨가 좋았던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날씨를 불평하고 뛰어놀기가 귀찮아지고 세상이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두 권의 책을 읽고 나니 아이들만이 가지고 있는 동심, 순수함이 그리워졌다. 그 당시 나에게 힘든 일이란 친구들이랑 놀다가 엄마의 호출로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수없이 많다. 단순함은 복잡함으로, 동심은 흑심으로, 호기심은 무관심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며칠 전 엄마 아빠와 통화를 하며 그림책에 대해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림책 읽어보니까 어떠니?”
“음… 나는 이제 동심을 잃었나 봐… 별 감흥이 안 나서 최대한 노력하면서 읽어봤어…”
(엄마 아빠의 폭소)
최근 들었던 새로운 이야기. 우리는 위층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할 때 이미 엘리베이터가 올라가 있는 경우, 위로 올라가야 하니까 ⬆️(위 화살표) 버튼을 누른다. 반면 아이들은 위에 올라가 있는 엘리베이터를 다시 아래로 불러야 한다는 생각에 ⬇️(아래 화살표) 버튼을 누른다고 한다. 우리는 우리를 중심으로, 아이들은 엘리베이터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의 중심이 자신에게 쏠려있는 나와는 달리 자신을 벗어나있는 아이들을 보니 아이들의 시선은 어른들과 정말 다르겠구나 싶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29살이 되어버린 지금,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순 없겠지만 두 권의 그림책은 나에게 여러 생각이 들게 했다. 그리고 그림책은 아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분명 어른들에게도 충분히 의미를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