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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을 보아도 경이로운 곳, 브라이스 캐년

절친부부와 함께 했던 한 달

by 전지은


미국, 40여 년을 살았어도 다 가보지 못했다. 핑계만 있으면 여행을 하는데도, 가는 곳마다 느끼는 감정은 ‘이렇게 천혜를 받은 땅이 또 있을까’ 싶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데 최선인 곳, 자연 그 날 것 자체가 충분한 이야깃거리가 된다.


전날, 인디언 가이드의 노랫소리가 귀에 맴돌고 맥주 한 잔에 취해 잠들었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모여야 한다. 파웰 호수(Lake Powell) 언덕으로 해 뜨는 광경이 장관이라며 꼭 봐야 하는 곳이란다. 엊그제 갔던 별이 쏟아지는 언덕에서 보는 일출. 6시 24분 일출 예정 시간에 맞추어 새벽길을 떠났다. 날이 밝으며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파웰 호수는 미국의 유타 주와 애리조나 주를 잇는 콜로라도 강의 일부를 막아 만든 인공 호수라고 한다. 라스베가스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던 미드 레익(Mead lake) 다음으로 저수량이 많아 애리조나 주, 네바다 주, 캘리포니아 주의 주 수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국 여행사는 여행 일정을 짤 때 아기자기한 테마들을 많이 넣는 것 같다. 은하수가 흐르는 언덕도 그랬고, 이 새벽에 서둘러 보러 가는 일출의 광경도 그중 하나다. 그곳에서 일출을 맞으며 반드시 찍어야 하는 인생 컷이 있다. 돌 위에서 팔짝 뛰는 것, 서로를 그윽하게 바라보는 것 등등 주문도 많았다. 젊은 신혼부부야 물론 잘 따라 했지만, 나이가 있는 우리들의 동작은 말 그대로 달밤의 체조, 아니 해뜨는 시간의 체조였다. 아무튼 시키는 대로 포즈를 잡으며 깔깔 대며 인생 컷을 만들어 보려고 애썼다. 그 이른 시간에 우리 말고도 서너 대의 관광 밴들이 더 왔다. 삼삼오오 내리는데 모두 한국사람들이다. 다들 우리와 똑같은 포즈로 인생 컷을 건지려고 애쓴다. 참, 한국 사람들은 이런 포인트를 그리 잘 알까 감탄을 하면서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2시간 반쯤 운전을 해서 도착한 유타주의 브라이스 캐년(Bryce Canyon, ). 붉은색, 주황색, 분홍색의 파노라마. 그랜드캐년이 그 크기로 우리들을 압도한다면, 브라이스 캐년은 아기자기한 모습으로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 준다. 발아래로 손에 잡힐 듯 보이는 트레일을 따라 내려가면 옆으로 이어지는 사암의 모양들이 아기자기하게 다가온다. 트레일은 내려가는 길부터 시작하므로 쉬워 보이지만 내려갔으면 올라와야 해서, 오르막이 만만치 않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와 다시 방향을 틀어 평지를 걷다 보면 그 끝에 전망대가 있다. 그곳에 서면 브라이스 캐년 전체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며,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또 있을까 싶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곳은 부드러운 사암들로 되어 있어 100년 후 즈음이면 사라질 것이라는 것이 지리학자들의 통설이다. 100년 후에 또 올 일이야 없겠지만, 이 아름다움이 사라지기 전에 눈에, 마음에, 머리에 가득 담아 두어야 할 것 같다. 한여름 성수기에는 주차장이 턱없이 부족함으로 시내에서 무료로 운영하는 셔틀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편하다는 말도 가이드는 전해 준다.

협곡과 협곡 사이로 여러 개의 트레일이 있고 4.6Km의 평탄한 길로 이어지는 곳부터 19Km 정도의 길고 험하고 굴곡이 심한 곳도 있다고 안내되어 있다. 걷는 것이 힘들다면 말을 이용한 길도 있다고 하는데, 승마를 하지 못해도 가이드가 있어 이용이 쉽단다. 그렇다면 더 나이 들기 전에 몇 번 더 와서 느긋한 마음으로 트레일을 며칠 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때도 절친과 같이 올 수 있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이겠지.


다음 갈 곳은 자인언 캐년(Zion Canyon). 2시간쯤 걸린단다. 운전을 하는 가이드와 조수 석에 탄 남편만 깨 있고 모두들 꾸벅꾸벅 졸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새벽 일출을 보려 일찍 서둘렀으니 그 피곤함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모양이었다. 뒷좌석의 우리들이 그런데 운전을 하며 이야기까지 해야 하는 가이드는 더 하겠지 싶다. 그러나 조수석에 탄 남편은 이야기를 이어가며 가이드의 졸음을 쫓아 준다. 중간중간에 껌도 건네고 커피도 건네며. 도로는 텅 비었고 양 옆은 자연이 선사해 준 아름다움이 가득했다. 붉은색으로 이어지다간 회색의 돌이 나타난다. 그러다간 다시 사막이 이어지고 또다시 계곡이며 돌산들이 이어졌다.


차의 흔들림 안에서 졸았다 깼다를 반복하다가 갑자기 커다란 바위 굴이 나타났다. ‘뭐지?’ 하고 다들 잠이 확 달아나 버렸다. 그곳은 자이언 캐년의 입구. 자이언 캐년은 캐년 전체가 돌로 이루어져서 마땅히 하이킹을 할 수 있는 곳이 없단다. 따라서 주로 차로 드라이브를 하면서 보는 곳이라고 알려 준다. 이곳도 예전에 와 보았던 곳인데, 차가 지나다니는 동굴을 못 보았던 걸로 봐서 반대쪽의 입구만 서성이다 돌아간 것 같다. 그때는 라스베가스에서 당일 차기로 왔었으니까. 가이드는 인증 숏을 해야 하는 곳에서 차를 세웠다. 우리들은 시키는 대로 포즈를 잡았다.


규모로 우리를 압도했던 그랜드 캐년, 신비롭기만 했던 앤탠롭 캐년, 황홀한 그림 같았던 브라이스 캐년과 회색 석산의 중후한 매력을 지닌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인 자이언 캐년. 각각의 특성을 그대로 지니고 우리에게 자연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라스베가스로 돌아가는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곳곳에서 공사가 있어 트래픽이 장난이 아니었다. 우리들이 콜로라도로 돌아오는 비행기는 8시 45분. 최소한 2시간 전에는 공항에 도착해야 하니, 가이드는 속력을 내는 듯했다. 그재서야 조수석의 남편도 꾸벅 꾸벅이다. 긴장이 풀렸던 때문이리라.


이제 돌아가 지난 한 달을 돌아보는 일만 남았다. 친구 부부는 며칠 후 돌아갈 것이고 나는 그들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지난 시간들을 복기해 보며 여행기를 쓸 것이다. 이 함께 했던 시간들이 절친 부부에게는 평생의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다. 친구와 나의 우정은 여행을 통해 더 돈독해졌고, 하늘을 나는 비행기 소리는 자장가가 되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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