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부부는 여독이 풀리지도 않았지만 또 긴 비행을 해야 한다. 덴버공항에서 한국까지 직항이 없어 LA를 경유해 가는 일정이었다. 나는 내심 걱정이었다. 미국 국내선에서 국제선으로 갈아타려면 지하도를 이용해 20여분 걷거나 순환 버스를 타야 하는데 짐도 있고 잘할 수 있을까 싶었다. 구글에서 LA공항 맵을 다운로드하여 프린트해서 설명을 했다. 붉은 펜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여기 내려서 짐 찾고, 거기서 국제공항이라는 화살표를 따라가고. 혹 가다가 헷갈리면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내게 전화해. 내가 스탠바이하고 있을 게.’
‘할 수 있을 거야. 그 정도 안내판은 읽을 수 있어. 하하’
그렇기는 하겠지만 초행길에 혹시나 싶어서 여러 번 설명을 했다.
떠나는 날 새벽, 덴버공항 출발은 6시였다. 텅 빈 도로 위를 어둠 속에서 달리며 한 달 동안 고생했다고, 보여주고 싶은 곳들이 엄청 많았는데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절친 남편은
‘와이프를 잘 만나서 이런 관광도 하고, 함께 한 시간들 참 좋았습니다.’라는 인사를 해 주었다.
여행 중 빡빡한 일정으로, 우리 집에서 묵을 동안은 남의 집에 있다는 불편함이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모든 게 다 좋았다’고 해준 친구 부부. 이쯤 나이가 들고 보니, 이해하고 양보하고 배려하는 깊은 마음이겠지 싶다.
한 5년쯤 후에는 남미 여행을 같이 하자는 제안도 해보고, 또 미국의 못 본 곳을 보고 싶으시면 언제라도 대환영이라고 말했다. 그래야 나도 핑계 삼아 또다시 긴 여정을 계획해 볼 수 있을 테니까. 여행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어디를 가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가느냐가 제일 중요하다는 말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시간들이었다.
짧은 시간이었다면 좋은 것만 골라서 최대한의 대접을 해 드릴 수도 있었겠지만 한 달은 꽤 길었고, 우리 가정의 모든 부분이 있는 그대로 보여 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감출 것이 없는 관계. 그것이 편안하고 영원한 우정이 아닐까 싶다. 있는 그대로 보여 줄 수 있어 감사했고 긴 시간 함께하며 고마웠다. 살면서 가족을 제외하고는 이렇게 온전히 24시간을 함께 했던 이들은 없다. 절친과 나, 둘이야 마음만 맞으면 어느 때라도 떠날 수 있겠지만 할머니들의 우정 여행에 군소리 한번 안 하고 함께 해준 남편들이오랫동안 있어 내심 든든했다.
긴 여행의 끝자락, 좀 더 잘해주고 싶었고, 좀 더 많은 곳들을 보여주어 더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게 하고 싶었고, 좀 더 맛있는 것을 대접하고 싶었고, 좀 더 편안하게 지내게 하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았음을 이 에필로그에서 고백한다. 어디서든 처음 하는 일들은 시행착오가 있기 마련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친 부부는 그 마음을 알고 있는 듯 떠나는 시간까지 편안하다고 말해 주었고, 잘 지내다 간다는 인사를 해주었다.
한국에 나올 때마다 나의 손과 발이 되어 주었던 친구. 내가 없는 동안 딸을 대신 해 주었던 친구의 마음. 포근한 겨울 함박 꽃 눈이 되어 내린다. 겨울 풍경을 바라보며 고맙고 또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절친과 나, 할머니들은 세월 속에서 더 나이가 들겠지만 아직은 달막거리는 가슴을 안고 산다. 새로운 것들에 두리번거리며 가슴이 뛴다. 가슴 뜀이 엷어지기 전에 서둘러 다음의 우정 여행을 계획한다면 우리들의 욕심일까? 함께 할 남편들에게도 미리 일정을 조율해 본다. 은근히 압박을 가하며, ‘이번 여행 나쁘지 않았잖아? 다음에도 또 같이? 어디 가고 싶은데 있으면 말해 보슈!’
커다란 웃음소리는 어둠 속에서 메아리치고, 먼동이 트는 하늘로 떠나는 비행기를 쳐다본다. 우리들 우정 여행은 오늘도 현재 진행형이다. “ 아자, 아자, 아자!!!
할머니들의 우정여행을 시작하며 글이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습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욕심에 하루하루의 일정을 펼쳤고, 그러다 보니 너무 길어졌고 지루해졌음을 고백합니다. 이것들을 모아 한꺼번에 긴 꼭지를 쓸 수 도 있었겠지만 좀 더 오롯한 기억들을 이어가고 싶었고, 하루하루 바뀌는 풍경들도 추억으로 만들어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남편의 앱이 알려주었다고 하네요. 한달동안 거의 지구의 반 바퀴 정도를 돌았다는~그 안에서 만났던 풍경들을 기억해 두기 위한 우리들의 기록, 절친과 함께 했던 이야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