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지은 Feb 07. 2024

입춘(立春)이라네요

다시 강릉 1


창문으로 늘 보던 눈 덮인 로키산맥을 뒤로하고 며칠 전 다시 강릉에 왔다. 반겨주는 풍경은 차가운 겨울 바닷바람과 높은 파도, 잿빛 하늘이지만 마음은 포근하기만 하다. 언제 돌아와도 너른 가슴을 내어주는 동해바다, 그 물결 위로 긴 우울을 벗어 놓는다.


‘괜찮다, 괜찮다’를 마음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미국 집으로 돌아갔지만 슬픔의 무게는 깊고 무거웠다. 엄마를 여윈 상실감은 편해지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깊고 무거운 추가되어 가슴에 내려앉았다. 애써 티를 내지 않고 편안한 척했던 몇 달이 지나자 속마음은 짓이겨지는 것 같았다. 왜 이렇게 편해지지 않는 걸까, 자책을 하며 애를 써 보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힘들어졌다. 여행을 하는 중에도, 친구들을 만나 미루어 두었던 수다를 떨면서도, 고전을 읽고 독후감을 쓰면서도 마음은 편치 않았다. 결국은 ‘애쓰지 말자’며 거의 숙제처럼 쓰던 일상의 신변잡기들, 여행기, 책 읽기 등을 놓아버렸고 살림마저 뒤로 미뤄두었다. 종일 집안에서 그야말로 집 콕. 유튜브를 보거나 넷플릭스로 시간을 보내며 지냈던 지난 몇 달. 평생 못했던 ‘긴 게으름’을 피웠다. 어쩌면 그건 우울증의 한 증상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 우울이 더 깊어지기 전에 다시 하늘길에 올랐다. 나름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언제나 올 수 있는 고향 바다, 강릉으로 돌아왔다. 코끝이 찡하게 추운 겨울 바다 바람을 맞으며 가슴은 뻥 뚫리듯 시원했다. 찬 바람이 시린 가슴을 덥혀주었다면 어불성설일까? 한 곳에 마음을 두지 못하고 기러기 같은 생활을 이어간 지 5년. 미국으로 들어가면 강릉이 집 같고, 강릉에 와 있으면 미국 집이 내 살 곳인데 라는 생각이 든다. 작년 여름 미국으로 들어갈 땐 어쩌면 오랫동안 오지 않을 것 같았던 곳에 또 돌아와 섰다.


겨울 바다와 눈 덮인 백사장을 가슴으로 만난다. 고향의 포근함과 엄마의 따뜻함을 다시 찾아왔다. 천상으로 돌아가신 엄마의 모습은 없어도 옛 동네의 추억들과 골목에 가득했던 그리움은 고스란히 이곳에 남아 있다.

다시 고향

다시 바다

다시 바람

그 사이로 엄마의 음성이 들리고, 엄마의 따스한 손길이 느껴진다. 슬프면 슬프다고 말하고,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 지르고, 그리우면 그립다고 표현하며 이 우울감에 맞서리라. 감정을 너무 누르지 않고 편안하게 받아들이리라. 봄이 오는 이유가 자연의 법칙인 것처럼, 상실감이 겨울 같은 혹한기를 몰고 왔고 깊은 우울감을 불러왔다. 그 우울은 게으름이라는 용기에 포장되어 그렇게 방치되어 있었다. 서너 달, 타인의 시선 안에서 나의 모습은 썩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단지 내 마음은 끝도 없이 나락으로 떨어졌고 무엇을 잡을 힘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의 게으름은 스스로 용납이 되지 않았다. 뭐 라도 돌파구를 찾아야 했고 그것이 내게는 가장 편하고 쉬운 ‘다시 강릉’으로 돌아오는 일이었다.

이번 강릉의 이유는 그냥~이다.

강릉이 여기에 있고

여기로 올 곳이 있고

엊그제 입춘이 지났다. 이제 곧 봄이 올 것이고 그 봄을 강릉에서 지내며 서두르지 않고 조금씩 상실의 상처를 봉합하며 지내보려고 한다. 넋을 놓고 바다를 바라보거나 숨이 차도록 솔밭길을 걷고 꽃망울이 올라오는 봄의 연초록을 기다리다 보면 내 마음도 봄이 되어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봄을 기다린다. 꽃망울이 열리는 그 봄을…


*사진들은 pixabay 에서 모셔왔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떤 인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