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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Feb 25. 2024

또 눈이 오네요

다시 강릉 5


이어지는 대설 주의보. 대관령과 삽당령 현지 상황들이 속속들이 방송된다. 마을 전체가 고립된 곳과 헬기로 노인을 구하는 일. 주말인데 도로의 눈을 치우는 공무원, 지게차까지 동원된 눈 치우기. 그야말로 눈과의 전쟁이다. 그런 가 하면 강릉 시내 한 상가에는 눈사람 알바가 웃으며 손님을 맞이하는 사진이 SNS에 올라오기도 했다. 아침 뉴스엔 많은 관광객이 겨울 눈 숲을 찾아 산행을 왔다는 보도도 있다.


창밖엔 또 눈이 부슬부슬 내린다. 창으로 보는 회색 바다에 떠 있는 배가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이 여유롭다. 눈 꽃 만개한 소나무 숲은 눈 무게가 힘들어 휘어져 있고 그 사이로 드문드문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간다. 이건 눈 멍 인가?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다 발이 시려 거실로 들어온다. 시린 발을 녹이려 담요 속에 발을 넣으며 따뜻한 커피 향에 젖어본다. 혼자인 이 시간. 소소한 행복을 온전히 느껴본다.


미국, 콜로라도 주에도 눈이 많이 온다. 가끔씩 대설 주의보가 내리면 남편의 반응은 ‘또? 아이고 눈 치우기 힘들어서…’라는 탄식이 제일 먼저다. 그래도 콜로라도 주는 거의 습기가 없는 눈이어서 치우기 그리 힘들지는 않다. 그러나 요즈음 강릉의 눈은 그야말로 습 설이라 무게가 만만치 않다. 제설을 하는데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눈 멍만 때리면 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눈은 아름답지만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이나 길을 내기 위해 애써야 하는 사람들은 힘들기만 하다.

설국 탓에 나흘을 갇혀 있었고 오늘은 조심해서 밖에 나가보려고 한다. 미끄럼 방지가 있는 부츠를 꺼내 신고 편의점을 기웃거려 볼까, 길 건너 마켓에 가볼까? 냉장고 안에는 음식도 식수도 충분하지만 갇혀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리기 위해서. 그리고 눈이 쌓인 해안 솔 숲길을 걸어 볼까?


눈 쌓인 백사장. 겨울 바다와 눈꽃을 이고 섰는 솔 숲길에서 마지막 가는 겨울에게 잘 가라는 작별인사를 건넨다. 겨울 눈꽃이 만개한 숲은 흰 국화꽃들이 만개한 정원처럼 환하다. 물기를 머금은 노송은 흰 숲에 검은 등걸로 한 폭의 동양화를 그린다. 잔솔들 위로는 안개꽃처럼 흰 카펫이 얇게 깔려 있다. 시선을 돌리면 파도가 맞닿는 눈 덮인 백사장이다. 백사장 위를 덮은 눈은 포근한 겨울 솜이불 같다. 사랑, 한 자락 겨울 바닷가에 내려놓으면 가슴 만은 따뜻하다.


걸음은 빨라지고 입김은 뿌옇게 안경에 서린다. 한참 걸었더니 볼이 시리다. 돌아오며, 겨울은 아무리 버텨도 봄에게 밀려 날 것이란 생각이 든다.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계절의 시계. 이제 삼월이 되면 봄의 전령사들이 하나 둘 소식을 전해올 것이고 성급한 우리는 또 봄이야기를 두런두런 시작하겠지.


그래도 아직은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雪國)의 첫 문장을 기억한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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