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리

동반자

by 전지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남편은 한 달 일정으로 동행했다. 고향은 아니지만 강릉을 무척 좋아한다.


이렇게 여유로운 풍광이 어디에 또 있겠느냐며. 강릉의 송정 해변 솔밭 길, 매일 다른 바다 빛을 보여주는 동해.


42년 전 첫 데이트를 했던 경포 호숫가. 조금만 시외로 나가면 만날 수 있는 야트막한 산길. 그중 특히 송정 해변 솔밭길을 너무 좋아해 아침저녁으로 걸었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걷기도 하고 늦은 저녁에는 플래시를 들고 걷기도 했다. 비 온 뒤 솔향과 파도에 밀려오는 바다내음. 호수같이 잔잔한 바다 아래로 몰려다니는 고기떼. 흔들리는 수초와 조개들. 해무 가득한 바다는 하늘과 구분이 안되고. 또 어떤 날은 지평선 끝에 작은 배하나 떠 있어 잔물결에 흔들거리며 반짝인다. 매번 다른 풍경을 너무 즐기며 걸었다.




로키산맥의 끝자락에서 병풍처럼 둘러 쌓인 산을 보며 살다가, 끝도 없는 지평선을 만나며 걷는 길은 남편에게 더 없는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선사했던 것 같다.


남편이 이번 한국에 나와 있는 동안 가장 많이 한일은 솔밭을 걷는 것이었다. 어쩌면 좀 더 나이가 들어 이곳에 와 살 수 있을까 하는 눈으로, 강릉을 알고 싶어 했다. 유튜브를 찾거나 관광 안내서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여기도 좋고 저기도 가보고 싶고….




친구 부부의 도움을 받아 여러 곳을 둘러보았지만 그래도 그중 가장 좋은 곳은 송정 해변 솔밭 길과 경포호수 둘레 길이었단다. 이 의견에 나도 전적으로 동감한다. 걸을 땐 걷는 일 그 자체로, 경포 호수에서는 걷다가 벤치에 앉아 물결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속의 잡념은 모두 사라지고 고요와 감사만 남게 된다. 어쩌면 남편도 나와 비슷한 마음이 되어, 그 풍경들을 즐겼던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 만났던 먹거리들도 즐거움에 한몫했다. 우럭 미역국, 전복 해물뚝배기, 막국수, 순두부, 청국장, 오징어 먹물 아이스크림, 순두부 젤라토. 시내에서 공수해 오는 오징어 물회와 감자전과 옹심이까지.


강릉이 아니고는 만나지 못할 풍경과 먹거리들을 즐기며 지내다 보니 예정했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친구 몇 명을 만나고 짧은 여행 한 번을 제외한 시간들은 거의 매일 강릉에서 지냈다. 그러면서 더 나이가 들어 이곳에 와 살아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고 돌아갔다.




나야 여기가 고향이고, 친구들도 많아 심심할 시간도 없이 지낼 수 있지만, 친구도 하나 없는 이곳에, 마누라의 고향이니까 와서 살 수도 있다고 말하는 데는 조금 놀랐다. 그러자 남편은 친구 같은 마누라가 같이 있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고. 가장 친한 친구이고 가장 든든한 울타리이고 누가 뭐라고 해도 내 편일 서로만 있으면 된단다.


아~ 그런 거구나. 40년 이상을 함께 지내다 보니, 눈 빛만 보아도 서로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알게 된 지금. 어디서 살더라도 둘만 있으면 되는 거구나 싶었다.


남편이 돌아가고 며칠 잠을 설쳤다. 빈자리가 쓸쓸함으로 다가올까 두려워, 매일 전화를 한다. 친구가 왔다는 이야기, 날씨 이야기도 하고, 돌아가는 비행기가 연착되어 고생한 이야기도 했다.


그 말미에 “누리호 발사도 딜레이가 되는데 돌아가는 델타 비행기쯤 연착 됐던 게 뭐 대수겠어? 기다릴만했어. 봐… 기다리니까 올라가잖아.”하며 웃는다. 나도 따라 크게 웃으며. “ 그래? 그런 건가?”


그 마음 고마워하며 오늘도 또 쓸데없는 소소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전화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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