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을 사랑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생겼다. <<강릉관광브랜드 공연, 프리 페스티벌, 강릉은 극장이다>>의 첫 공연이 지난 목요일 강릉 아트 센터에서 있었다. 관광거점도시 육성사업, 이라는 명제를 달고 범 시민적으로 하는 행사인가 보다. 거리를 걷다 보면 시내버스의 옆면에, 시내 곳곳에 플랭카드를 붙이고 행사를 알렸다. 나의 호기심이 발동했다. 우선 관광거점도시라는 것이 무엇일까 찾아보았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정부와 지자체가 공동으로 투자해 해당지역을 한국의 대표관광도시로 만드는 사업을 말한다. 이 사업은 2020년에 시작돼 2024년까지 추진되며, 문체부에서는 우선 2020년 국비 총 159억 원을 투입해 도시별로 수립계획을 마련하고 세부 사업 내용을 확정하게 했다. 대상지로 부산, 안동, 강릉, 전주, 목포를 선정했다. 그 사업의 일환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바로 <강릉은 극장이다>이다. 행사는 5/25-6/14까지, 강릉 아트센터 및 강릉 주요 관광지 일원에서 펼쳐진다. 강릉이라는 도시 전체를 극장이라는 무대로 삼고, 그 안에서 관객이 되어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같았다. 입장권 예매를 서둘렀지만 일부 프로그램은 매진이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예매가 가능했던 것부터 관람해 보기로 했다.
음악무용극, “신(新) 사임당을 그리다”는 지난 목요일 강릉 아트센터에서 공연되었다. 신사임당 하면 너무나 잘 알려진 현모양처이고, 오만 원 지폐에서 그 우아하고 위풍당당한 자태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음악무용극은 사임당에 대한 시선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야기는, 신사임당의 전기를 담당하게 된 한 작가가 사임당의 모습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데서 시작한다. 작가는 신사임당을 예인으로 바라본다. 어린 시절 사임당은 세상에 대한 갈망과 궁금증이 가득한 호기심 많은 소녀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아버지는 그런 사임당에게서 예술가의 기질을 발견하고 잘 키워주려고 하지만 시대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 여인이라는 지위와 차별 속에서도 사임당은 응어리를 극복하고 세상으로 나간다. 평생 동안 예술가로 살고 싶었던 신사임당. 그녀는 스스로의 이름은 사임(師任)이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자신이 가장 닮고 싶은 주문왕의 어머니, 태임(太妊)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6장으로 이어지는 음악무용극의 화면에는 오죽헌의 모습이, 사임당의 시가, 사임당의 초충도가 뜬다. 그 화면과 어우러지는 사임당의 삶이 표현되는 춤사위. 공연의 처음부터 끝까지 가야금, 거문고, 아쟁, 해금, 대금과 몇 개의 타악기 연주로 어우러지는 가락에 맞추어, 한을 토하듯 애절하게 이어지는 정상희 님의 소리에 취하며 음악무용극이 무엇인지 알게 되기도 했다.
홀로 되신 어머니를 두고 고향을 떠나며, 대관령 굽이굽이를 넘으며, 신사임당은 그리움에 사무친 마음을 풀어놓는다. 작은 춤사위와 어우러지는 한 맺힌 소리. 구슬픈 가락이 말 그대로 심금을 울린다. 그 그리움은 내 가슴을 파고들어 눈물이 흘렀다. 얼마 전 엄마를 보낸 내 마음이 겹쳐지며…
조선 중기였지만 사임당은 딸, 매창(梅窓)이 당당하게 살기를 바라고, 자신을 표현하며 살기를 바란다. 그 장면에서 또 나의 모습이 겹쳐지며, 미국에서 살았던 내 모습이 엄마 보시기에는 당당했고, 잘 살았던 모습일까 싶다.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되었던 당당함. 그 안에서 매창의 모습도 배운다.
세월이 가며 사임당도 죽고 딸, 매창도 성장하여 당당하게 살아간다. 그런 매창으로 바라보는 사임당의 시선에서, 삶과 죽음은 과거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작가는 신사임당이 예술가로서 얼마나 당당하게 살아왔고, 사임당의 생애를 통해서 과거는 현재로 옮아 오며, 그 예술 적인 표현들이 현대 사회에서도 얼마나 커다란 위로와 치유가 되는지 알려주는 춤사위로 작품은 막을 내린다.
각종 국악기를 연주하며 우리 가락을 들려주었던 음악가들과 현대 춤사위로 사임당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었던 무용가들과 사임당이 되어 내면을 한 맺힌 소리로 풀어 내준 소리꾼이 어울렸던 시간. 나도 그 시간 그곳에서 엄마를 다시 만났다. 아직은 그 그리움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 해질 것 같은 오늘 밤이다.
어떤 댓글에서 전해주었던 친구의 이야기. 그냥 길을 걷다가도, 고드름이 물이 되어 내릴 때, 먼산을 바라볼 때. 그냥 노래를 들을 때, 드라마를 보고 있을 때, 잠에서 문득 깼을 때.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시간. 오월 붉은 장미가 눈부신 담장을 지나다가, 밀려드는 파도 소리에, 바람에 흔들리는 들꽃에서도 엄마의 모습은 그렇게 있을 것 같다. <강릉은 극장이다>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고향 강릉의 곳곳의 정취를 더 많이 느끼고, 그 안에 가득한 사랑들을, 문득문득 찾아오는 그리움을 곁에 두고 오늘 하루도, 또 내일도 모레도 그리워하며 살아야겠다. 애쓰지 않고, 잊혀지지 않는 현재로 그냥, 그렇게 곁에 두고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