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네가 도착했다. 가방을 들고 활짝 웃으며 나오는 친구 부부는 생각보다 덜 피곤해 보였다. ‘여기, 여기’ 손짓을 하며 친구네를 맞는다. 반갑게 잡은 친구의 손이 따듯하다. 오늘의 일정을 간단히 브리핑했다. ‘일단 차를 타고 나이아가라 폭포부터 보자. 아~ 비행기 안에서 잠은 좀 잤니? 졸리면 커피 마실까?’라고 하는데 남편은 벌써 커피와 빵을 사 들고 다가온다. 남편 둘이 반갑게 악수를 하고 커피를 마시며 그리 넓지 않은 토론토 공항을 천천히 걸어서 빠져나왔다. 빌린 차에 짐을 싣고, 나는 운전석 옆자리에, 친구 부부는 뒷자리에 앉았다. 나는 내비게이션을 보며 조수 역할을 해야 했고 친구 부부에게는 편하게 눈 좀 붙이라고 했다. 토론토에서 나이아가라 폭포까지는 한 시간 반 정도 운전하면 된다. 아침 시간 고속도로는 그리 밀리지 않았고 단풍나무들을 조금씩 붉은 옷을 입기 시작했다.
캐나다와 미국의 국경, 그곳을 넘어야만 내가 예매해 둔 나이아가라 가운데로 가는 보트를 탈 수 있었다. 길게 줄지어진 국경의 검문소. 줄이 너무 길어 20분 이상 기다려야 했다. 캐나다 입국 앱을 깔고 알려 주는 대로 모든 인적 사항을 입력했고 예방 접종 기록도 갖고 있었으므로 별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예상은 아예 빗나갔다. 검문소의 경찰은 친구 부부에게 ‘너희는 미국에 처음 들어오는 거냐?’이라고 물었고 우리 부부에게도 아주 거친 소리로 명령했다. ‘차를 저기 세우고 저 건물 이 층으로 들어가 대기하고 있어’라고. 이 티켓으로 나이아가라 폭포를 가는 것이 맞느냐고 물었지만, 그는 ‘검역을 하는 경찰관일 뿐, 관광가이드가 아니야!’라고 거칠게 대답했다. 주눅이 든 채로 차를 세우고 건물로 들어갔다. 건물 2층에는 우리 말고도 몇 명이 더 있었고 순서대로 이름을 부르면 들어가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친구 부부는 엄지와 네 손가락의 지문을 찍고 검역을 필했다는 도장을 받았다. 죄지은 것도 없는데 가슴을 쓸어내리고, 차로 돌아와 폭포로 향했다.
시간을 많이 지체해 약간 시장기가 돌았지만 나이아가라 폭포의 가까운 곳으로 들어가는 보트의 소요 시간을 알 수 없어, 시장하지만 그냥 보트를 타기로 했다. 차에 있던 병에든 물로 허기를 채우며.
준비해 갔던 우비를 입고, 입구에서 나누어 주는 푸른색 얇은 우비를 덧입고 나이아가라 폭포 최전방으로 다가가는 보트를 탔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국립공원 지역이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이다. 뉴욕 쪽과 캐나다 쪽에서 관광을 할 수 있는데, 내가 예매했던 표는 공교롭게도 미국 쪽에서 들어가는 보트였고 그렇게 불친절하고 거친 미국 경찰이 있는 국경을 통과해야 했다. 주의해서 예매를 한다고 했는데 나의 큰 실수였다. 또 다른 일들이 꼬여 있을까 봐 은근 걱정이 되었다. 미국 생활 38년 만에 와 보는 곳이어서 기대에 잔뜩 부풀었다. 친구 덕에 와 보는 세계의 폭포. 한마디로 장관이었다.
일 년에 800만 명이 넘는 세계의 사람들이 나이아가라 폭포를 방문한다고 하니 그 위력은 참으로 대단한 것 같다. 입이 딱 벌어지게 광활한 넓이에 쏟아져 내리는 물의 양을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이렇게 대단한 위용을 떨치는 물의 위력을 보기 위해 관광객이 연일 끊기지 않는구나 싶었다.
며칠 머물면서 하이킹을 하거나 옛 도시를 살펴보는 일도 좋을 것 같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국립공원 중의 하나이고 전 세계 담수의 20%의 양을 자랑한다고 안내서는 설명하고 있었다. 보트 내에서는 옆의 사람의 말도 잘 안 들렸다. 친구는 ‘나이아가라’에 오면 ‘나이’가 간다며 소리쳐 말했다. 그 말에 빵 터졌다. ‘그래, 나이를 보내고 더 젊어지자’ 박장대소를 하며 비처럼 내리는 물줄기를 즐겼다. 떨어져 내리는 폭포수는 굉음에 가까운 소리를 냈고 물의 위쪽으로는 고운 무지개들이 줄을 이어 떴다가 지기를 반복했다. 보는 이들의 각도에 따라 피고 지는 무지개들을 뒤로하고 물벼락을 흠뻑 맞은 채 돌아왔다.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 언제 다시 또 볼 수 있을까 싶은 풍경을 뒤로하고 다시 검문소. 다시 캐나다 입국 앱을 펼치고 예방 접종 표를 다시 보여 주는 수고를 해야 했다. 미국과 캐나다 사이라고 해도 국경을 통과하는 일이 얼마나 까다로운 일인가를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장관의 풍경 하나로 모든 것을 이해하기로 하고 서둘러 다음 목적지로 길을 떠났다.
도착한 곳은 킹스턴. 다음 날, 천 섬(Thousand Islands)을 보기로 예약이 되어 있는 곳이다. 구글에서 한국 식당을 검색했다. 시장한 허기를 충분히 달래 주기 위해서는 한식이 최고 아닐까. 버닝 그릴(Burning Grill)이라는 곳을 찾았다. 식당 안의 인테리어는 1980년대를 연상케 했지만, 오삼불고기에 돌솥비빔밥의 솜씨는 꽤 괜찮았다. 소주를 부르는 식탁을 거부할 수 없어 운전을 해야 하는 남편을 제외한 우리 셋은 ‘치어스”를 외치며 한 달을 잘 지내보자고 외쳤다. 포식에 약간 취기가 돌자 호텔로 돌아와 눕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다. 또 내일의 새로운 곳을 약속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