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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한 바퀴/내 미국의 고향, 콜로라도 스프링스

할머니들의 우정 여행

by 전지은



하루 푹 쉬고 났더니 피곤은 싹 사라졌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콜로라도 스프링스(Colorado Springs)는 미국의 중서부 콜로라도 주의 제2의 도시이다. 주 전체의 지형은 고도가 높아 마일 하이(Mile High)라고 불린다.


우리 동네는 콜로라도 주의 주도인 덴버(Denver)에서 남쪽으로 한 시간가량 내려오는 곳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살다가 20여 년 전 이곳으로 이사를 오며, 지인들로 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백인의 텃세가 무척 센 곳이고 이민자들을 영 탐탁지 않아하는 성향의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산다는.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하고 이사를 왔던 곳이다. 처음 이곳에 적응을 하는 데는 날씨도, 병원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열심히 살았고 최선을 다했더니 그 힘든 시간도 해결이 되었고 나중에는 중환자실의 케이스 매니저로 11년을 일하다 퇴직했으니 그 결과는 나쁘지 않다. 또한 성당에서 좋은 지인들을 만나 새로운 사업도 시작했고 그 사업은 나름 잘 되어서 그 결과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그리고 이젠 이곳에 산 세월이 내 평생 가장 오래 산 곳이 되어 미국의 고향 같이 되어 버렸다. 한국에서는 강릉, 미국에서는 콜로라도 스프링스 사람이라고 스스로 이름 붙인다.



우리 동네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미국 공군 사관학교(Air force Academy)이다. 그것도 지척에 있다. 베란다에 나가면 서쪽 산 아래에 학교 건물들이 먼발치로 보인다. 겨울이 되어 대학 간의 풋볼이라도 있는 날이면 구장에 켜 놓은 전광판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검은 하늘에 멋있는 그림을 연출하기도 한다. 그곳부터 가보기로 하였다.


친구 부부는 패스포트를 챙기고 난 운전면허증을 확인하고 공사 입구 검문소에 들렸다. 내 면허증을 보고 차의 트렁크를 확인하고 어딜 가는냐고 묻는다. ‘방문객 센터(Visitor Center)’에 간다고 하자 통과. 캠퍼스의 크기는 작은 도시만 하여 한참을 운전해 들어가야만 방문객 센터를 만날 수 있다. 공사답게 입구에는 전투기 한 대가 세워져 있었는데, 마침 공사 중이어서 눈도장만 찍고 패스. 옆으로 보이는 운동장, 훈련장, 골프장, 가운데 여러 동의 건물을 보자, 친구 부부는 감탄을 금치 못한다. 이렇게 넓은 캠퍼스를 본 적이 없다며. 방문객 센터에 들어가 공사의 역사 사진들을 둘러보고 친구 남편은 기념품으로 모자 하나를 샀다. 공사 로고가 붙어 있어서였겠지만, 가격이 꽤 비쌌다. 그래도 기념이니까.

걸어서 작은 언덕 하나를 돌면 그곳에서는 연병장도 보이고 학생들의 기숙사 빌딩도 보인다. 그리고 공사의 대표 건물인 채플(Chapel)도 있다. 이 교회는 가톨릭이든 개신교 든 종파를 가리지 않고 쓰게 되어 있고 졸업한 사관 생도들의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에는 무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런데 이 채플도 현재 공사 중이다. 오래된 채플의 스테인드 그라스 사이로 비가 새고 건물의 페인트도 낡아 수리를 시작했는데, 공사 중 벽면에서 석면(Asbestos)이 나와서 보수 공사를 다시 계획해야 했다. 지금은 건물 전체를 천막으로 두르고 5년 계획으로 건물을 보수하고 있다. 콜로라도 스프링스 시민은 큰 관심을 갖고 재 개방되기를 바라고 있다.


공사를 빠져나와 다음 향한 곳은 ‘신들의 정원(Garden of Gods)’이다. 이 공원은 방문객 모두가 무료로 들어갈 수 있다. 공원은 1909년 찰스 퍼킨스(Charles Perkins)의 자녀들에 의해 시에 기증된 곳이다. 찰스는 그 당시 이 동네의 부호로 넓은 땅을 사서 집을 짓고 살다가 1907년에 타계했다. 그 자녀들이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시에 기증하면서 한 가지 조건을 붙였다. ‘평생 입장료를 받지 말라’는. 시는 그들의 청을 받아들여 현재까지도 입장료는 없다. 모든 것이 관광객들과 이 도시를 사랑하는 시민, 인터넷상의 모금 만으로 유지되고 있다. 공원은 480 에이커(약 58만 평 정도)로 그리 크지는 않으나 잘 정돈되어 있다.


암벽 등반을 하기도 하고, 걷는 트레일이 여러 개 있어 하루 종일 흙 길을 따라 걷는 가벼운 하이킹을 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공원의 이름이 ‘신들의 정원’이라고 붙여진 이유는 그 옛날 이곳에 살았던 원주민인 유테 인디언들이 ‘하늘에서 신이 내려와 놀던 곳’이라고 전해 준 것에서 기인되었다고 한다. 붉은 사암들로 주로 이루 어진 공원. 붉은 색깔이 땅은 기가 무척 센 곳이라고 알려지며 이곳에서는 요가를 하거나 기체조를 하는 사람들도 간혹 볼 수 있다.




공원 내 차도는 일방통행으로 서서히 드라이브를 하면서 즐길 수도 있고,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인증숏을 찍으며 걸어도 좋다. 나는 우리 집에 오는 거의 모든 손님들과 함께 이곳을 간다. 웃으며 ‘우리 집 정원, 근사한 게 있는데 같이 가실까요?’라고 하면 손님들은 ‘정말?’하는 시선이다. 여름이면 아침 일찍 남편과 같이 가서 걷기도 하고 병원에 근무할 땐 유방암(Breast Cancer) 환자들을 위한 모금을 위한 걷기 대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한두 시간쯤 편하게 걷기에 딱 좋은 코스의 지도는 안내소에서 나누어 주거나 앱으로 다운로드할 수 있다. 요즈음은 관광버스가 오기도 하고 지프차나 자전거로 하는 일일 코스가 있기도 하다.


공원을 벗어나 10분쯤 운전을 하면 콜로라도 시내가 나온다. 다운타운이라고 하여도 작은 거리 몇 개가 전부이고 시청과 법원 건물이 있는 정도이다. 그런데 2년 전, 다운타운 재개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고, 텐트촌을 이루었던 노숙자들에게 집을 제공하며 타운을 재정비했다. 그곳에 장애우들 올림픽 기념관(Paralympic Museum)이 세워졌고, 요즈음은 그 현대식 건물의 외향과 내부에서는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 아이들과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인기 몰이를 하고 있다. 콜로라도 스프링스는 고도가 높아 운동선수들이 트레이닝을 할 수 있는 올림픽 트레이닝 센터가 있다. 그러니 장애우 올림픽 기념관을 유치한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오자 남편은 스테이크를 준비했다. 어우러지는 채소들과 몇 가지 음식을 준비해서 우리 집을 처음 찾아 준 절친 부부를 진심으로 환영했다. 와인 한잔 하며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며 느긋하게 저녁 식사를 즐긴다. 가을이 익는 것처럼 우리들의 나이도 익겠지만 그 안에서 더 진해질 우리들의 우정도 함께 익어간다. 세월이 간다는 것, 나이가 든다는 것, 사는 일에 참 편안해지는 일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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