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밤늦게까지 이어졌던 일정으로 몹시 피곤했었나보다. 일어나 보니 해는 이미 빌딩 숲 사이 중천에 떠 있고 출근하는 이들의 잰 발걸음이 시선 아래로 보였다. 호텔 조식이라는 것이 늘 그렇지만 토스트와 약간의 과일, 커피 한잔 마시고 거리로 나왔다.
두어 블락 건너에 유엔 본부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아침 걷기 운동 겸 그곳을 가보기로 하였다. 빌딩은 출입문을 굳게 잠긴 채 다양한 국기만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온통 유리 창인 높은 빌딩. 정문의 창살 사이로 보이는 풍경들. 내부 관광하는 프로그램은 인터넷 신청을 하면 된다고 하는데 이곳을 와 볼 계획이 없었던 나는 미리 예매하지 못했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며 다음 행선지로 향한다.
호텔 앞에서 가이드를 만났다. 우리가 묵었던 맨해튼 안에 있는 워싱턴 스퀘어 파크(Washington Square Park)부터 일정은 시작되었다. 1895년에 완공된 이 공원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고 한다.
넓은 공원 내에서는 자유분방한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묘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여러 개의 곤봉을 쉬지 않고 돌리고, 온몸으로 20개도 넘는 훌라 후프를 한꺼번에 돌리기도 하고, 전신에 페인트를 칠한 어떤 사람은 몸을 움직여 뭔가를 표현해 보이려고 했다. 그러나 더 진풍경이었던 것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체스를 두는 것이었다. 지나가는 누구라도 그들과 한판 게임을 할 수 있다고 가이드는 전한다. 우리는 공원을 한 바퀴 돌며 그들의 움직임을 기웃거리다가 나왔다. 공원은 뉴욕 대학(NYU=New York University)에 바로 연결되어 있어 학생들의 휴식 장소와 만남의 장소로 많이 이용된다고 했다.
가이드는 아침 시간이라 잠을 좀 더 깨우자며 그리니치 빌리지(Greenwich Village) 안에서 가장 오래된 카푸치노 카페 앞에 차를 세웠다. 아직도 원 주인의 자손들이 그 카페를 하고 있다는데 이태리안 후손들이라고 한다. 작은 카페 안엔 벌써 사람들이 꽉 차 있었고 향긋한 커피 향은 작은 공간을 가득 채우며 우리들을 깨웠다.
지나는 길에 우리들의 국어 교과서에도 실렸던 ‘마지막 잎새(the last leaf)’를 쓴 작가 ‘오헨리(O. Henry)’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고 그 소설의 배경이 되었다는 건물을 보여 주기 위해 가까운 길에 차를 세웠다. 아마 가이드는 나의 카톡 방에 미리 들어와 보았고,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란 것을 알았기에 나름 배려를 해서 그곳을 들렸던 것 같다. 그 세심함에 감사하며 다시 다음 곳으로 향한다.
한참 운전을 해서 도착 곳은 타임 스퀘어(Times Square). 타임스퀘어는 뉴욕의 가장 대표적인 장소로 웨스트 42번가와 웨스트 7번가가 합쳐서 만난 세븐스 에브뉴와 브로드웨이가 교차하는 일대를 말한다. “세계의 교차로”라고 불리는 이곳은 세계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장소이기도 하단다. 차를 세울 곳을 찾지 못한 가이드는 우리들을 내려 주고 한 시간의 여유를 주었다. 차를 가지고 돌다가 세운 곳을 카톡으로 알려 줄 터이니, 이 복잡한 장소를 많이 즐기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사방의 전광판이 쉬지 않고 돌아가며 광고를 올리고 예쁜 색과 그림을 쏟아 냈다. 그 와중에 삼성과 LG의 광고를 찾아 잠시 흥분했는데 이어서 BTS의 사진들이 올라왔다. 순간에 지나가는 광고여서 사진에 담지 못했고, 그다음을 기다렸지만 더 이상 올라오지 않아 아쉬웠다. 사진을 찍으며 브로드웨이 쪽을 바라보며 이곳에서 공연하는 뮤지컬을 한 번쯤 감상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했고, 거리를 좀 걸으며 상점들을 기웃거리는데 가이드의 카톡이 왔다. W 호텔 앞으로 오란다. 차가 그곳에 잠시 서 있다며.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벌써 점심시간이 되었다. 가벼운 점심 식사를 마치고 다음은 센트랄 팍(Central Park)이다. 843 에이커에 달하는 커다란 공원은 미국 내에서 가장 많은 방문객을 자랑하는 공원이다. 남북의 길이는 2.5마일(약 4Km), 동서의 길이는 0.5 마일(0.8Km)이다. 공원 안을 지나는 물줄기를 막아 8개의 인공 호수를 만들었고 자전거 도로 및 차도, 인도 등 다양한 트레일을 가지고 있다. 베다스타 테라스와 ‘물의 천사’라고 불리는 분수 앞에서 인증샷을 몇 개 찍었다.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는 물론 잔디밭에 모포를 한 장 깔고 앉아 쉬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평화주의자 가수였던 존 레넌의 기념물이 있는 ‘이메진(Imagine)’ 앞에서는 존 레넌을 흉내 내며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이름 모를 가수들이 꽤 있었다. ‘이메진 올 더 피플 리빙 포 투데이((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for today) 야하 아아아~~’ 한 자락 같이 흥얼거리며 걸음을 옮긴다. 가을 색이 완연한 것은 아니었지만 가을의 정취가 막 시작되는 곳곳은 여름의 여운이 남아 있기도 해서 어우러지는 아름다움을 연출해 냈다. 공원의 양쪽에 있는 고급 주거 지역의 부동산은 그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주거지역으로 그 이름을 떨치고 있고 아파트를 매매하거나 입주할 때도 주민들의 동의가 있어야만 사고팔 수 있다고 하니, 그 위세가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겠다.
다음은 허드슨 야드(Hudson Yards)의 엣지 전망대(Edge). 야외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구조물로 100층 아래를 내려다보면 정말 떨어질 듯 아찔 했다. 건물 위 유리로 만든 삼각형의 코너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들이 줄을 길게 섰고 우리들도 줄의 대열에 합류했다. 돌아보니 우리들의 나이가 가장 많은 것처럼 보였다. 모두들 젊은 친구들이다.
나는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서 어쩔 줄 몰랐는데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나의 고소공포증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또 다른 한쪽을 바라보니 건물의 가장자리에 몸을 기대서 밖을 내다보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1200 피드의 상공에서 뉴욕의 거리를 내려다보는 아찔함을 그들은 만끽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몰이 뉴욕 내에서는 가장 근사하다고 하여 많은 관광객들이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려와서 만나는 곳은 뉴욕의 새로운 랜드 마크인 쇼핑센터다. 세계의 최고급 매장들이 다 모여 있다는데 그 장소의 넓이에 비해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뉴욕의 곳곳을 둘러보던 중 가장 한가했던 곳이었다. 밖으로 나오면 벳슬(Vessel)이라는 또 하나의 랜드 마크가 있다. 약 2500개의 개별 계단으로 복잡하게 연결된 수직 오르막 길은 인체의 정맥과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랜드마크를 오픈 하자 말자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들이 몇 있었고 그중 틴 에이저 하나가 죽은 것을 끝으로 이 랜드 마크는 고층으로 올라가는 시설이 폐쇄되었다. 맨 아래층 하나만 열어 놓았고 우리들은 그 복잡한 구조의 안쪽을 살피며 고개가 아프도록 올려다보았다. 2019년 3월에 오픈하여 2021년 7월에 문을 닫았다고 하니 그동안 사건이 얼마나 많았을까 싶다.
이렇게 짧은 뉴욕 관광을 마쳤다. 수박 겉핥기식의 관광이었지만, 처음 뉴욕을 만났던 친구 부부에게는 이런 곳이 있을 을 보여 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뉴욕에서 한 달 살이를 해 볼까 싶다. 세계의 3대 미술관중에 하나라는 뉴욕 현대 미술관을 비롯 자연사 박물관, 휘트니 뮤지엄도 봐야 하고 브로드웨이 공연도 보고 싶고, 세인트 패트릭 주교좌성당(St. Patrick’s Cathedral)에서 미사도 한번 참석해 보고 싶다. 록펠러 센터(Top of the Rock)도 들려 보고 싶고 유엔 센터 안에 들어가서 견학을 하고 싶기도 하고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곳에서 하선을 하여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며 전망대까지 올라가 보고 싶기도 하다.
더하여 센트랄 팍에서 편안한 운동화를 신고 종일 트레일을 해 보고 싶기도 하다. 천천히 걸어야만 발견할 수 있다는 뉴욕의 진짜 모습이라는 ‘소호(Soho)’ 도 다시 가보고 싶고. 아직 알지 못하는 뉴욕의 곳곳을 돌아보며 미국의 최대 도시, 아니 세계 최대 도시의 모습을 알아가고 싶다. 이 생각이 어느 날 실천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라구아디아(LaGuardia)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출발 시간은 저녁 8시 45분, 덴버 도착은 자정이 훨씬 지난 시간이었다. 덴버 공항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한 시간. 아마 밤 2시경이나 되어야 집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종종걸음을 친 우리들은 3시간 반의 비행시간 동안 꿀 같은 잠을 잤다.
다음날은 해가 중천에 뜨도록 자고 밀린 빨래도 하고 종일 쉬어야 할 것 같다. 미루어 두었던 피곤이 비구름처럼 한꺼번에 몰려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