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선 준비를 시작한다. 방으로 배달된 가방에 붙일 태그에 이름을 쓰고 연락처를 적었다. 태그는 하선하는 시간에 따라 색깔 별로 구분이 되어 있다. 남편도 나도 큰 가방 한 개와 작은 백팩이 하나씩 있었으므로 다음날 아침에 쓸 것들만 두고 가방을 정리했다. 작은 엽서들, 달력, 작은 기념품. 무게가 그리 늘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꼼꼼히 짐을 싸며 지난 며칠 간의 일정을 되돌아본다.
캐나다 동부의 가을색을 잔뜩 기대하고 갔었는데 아직 단풍철이 아니어서 못내 아쉬웠다. 그리고 가이드를 잘못? 만나 본의 아니게 하루가 힘들었던 적도 있고 또 좋은 가이드를 만나 다음을 약속할 만한 곳도 있었다. 처음 와 보는 곳들이니 어찌 계획했던 대로 다 될 수 있을까. 모든 여행이 다 그렇겠지만 나름 잘 준비한다고는 했는데 그 끝은 늘 준비가 덜 되었던 것 같고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절친의 버켓 리스트 중의 하나였던 크루즈 여행에 동참했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던 것에 그 의미를 둔다.
짐을 싸고 나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우리는 배의 갑판을 돌기도 하고 배의 못 가본 곳들을 기웃거리기도 하다가, 아직 다 못 마신 음료 쿠폰이 남은 걸 알게 되었다. 크루즈를 예약할 때 구매했던 음료 쿠폰은 일인당 하루에 15잔, 각종 알코올 음료를 포함한 것이었다. 우리 넷은 라운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혹시 심심한 시간이 있을까 싶어서 가져왔다는 화투를 꺼내, 몇십 년 만에 고스톱을 쳤다.
한 곳에 좌정하고 앉아야 칵테일 등을 시켜서 마시기에 편할 것 같아서. 친구가 새로운 맛이라며 맛있다고 홀짝 거렸던 마가리타부터, 진 앤 토닉, 올드패션, 더티 마티니, 섹스 온 더 비치… 아는 대로 불러 보았다. 알록달록 각각 색도 다르고 맛도 다른 것들이 계속 들려 나왔다. 화투는 치는 둥 마는 둥 섞어 마신 칵테일에 모두들 알딸딸. 그 가벼운 취한 맛에 별것 아닌 이야기들과 화투장 맞는 것에 박장대소를 하며 오후를 지냈다.
오후엔 마지막으로 정장을 입고 식사를 했고, 식사가 끝난 후 짐을 정리하고 태그를 붙여 방 밖에 내놓았다. 그러다 마침 생각난 것이 있어 하나 더 넣으려고 방문을 열었더니 벌써 짐을 가져가 버리고 없었다. 와아~ 빠르네, 하며 하는 수 없이 아침에 들고나갈 팩백에 넣을 수밖에.
식사 후 극장에서 있었던 마지막 공연은 종업원들이 준비했던 뮤지컬 비슷한 것이었다. 아마추어 냄새가 물씬 풍겼지만 우리 손님들에게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했고, 다시 또 올 것을 권하는 내용이었다. 또 똑같은 코스를 오지 않더라도 다른 코스를 가는 같은 배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하며 무대는 막을 내렸다.
새벽에 도착하는 뉴욕에서는 한국인 가이드를 예약해 놓았다. 열흘이라는 긴 시간 동안 영어에 힘들었을 친구 부부를 위해 나름 마음을 쓴 것이었다. 아무리 중간에서 통역을 했다고 해도 온전히 의사 전달을 할 수 없었을 거고 일일이 묻기도 힘들었을 친구 부부. 남아 있는 여행들은 한국 여행 앱을 통해 예약을 했으니, 한국어로 진행이 될 거고 친구 부부가 좀 편안하게 여행을 이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우리들의 쿠르즈 여행은 끝을 향해 물결을 가르고 있었다. 푸른 바다에 흰 물살을 커다랗게 이어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