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미국 본토에 도착하는 날이다. 미국의 최동북단인 메인(Maine) 주. 겨울이 길고 긴 겨울 동안에 폭설이 많이 오는 곳이다. 그러나 봄부터 가을까지는 해산물 천국인 곳, 메인 주이다.
크루즈는 항구에서 좀 떨어진 바다에 정박을 했고 손님들을 소형보트로 육지로 데려갔다. 이곳 지형상 큰 배가 정박할 시설을 만들지 못했는지, 자연경관을 보호하려는 주민들의 노력인지는 알 수 없지만 크루즈 여행을 해보면 가끔 이런 곳들을 있다. 아침 이른 시간에 이민국 직원들은 이미 승선하여 입국 검사를 시작했다. 친구 부부와 우리는 지정된 시간과 장소가 각각 달랐다. 미국 시민권자와 외국인이 구분되어 심사를 받았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관광하기 위해 출입국 관리소를 통과하며 겪었던 악몽에, 서둘러 입국 심사를 마치고 친구 부부 곁으로 이동했다. 다행히 쉽게 통과. 작은 보트를 타고 육지로 나와 지정한 버스에 올랐다. 예약된 일정은 아카디아 내쇼널 팍(Acadia National Park)과 랍스터 점심(Acadia National Park & Lobster Bake).
북대서양 해안의 보석이라고 별명이 붙은 공원은 연간 400만 명 정도가 방문하는 미국 내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은 10대 공원에 속한단다. 트레일 코스는 물론 말을 타고 돌 수 있는 길도 있고 차가 다닐 수 있는 길도 여러 개 있다. 11월 중순부터 4월까지, 겨울 동안에는 많은 적설량으로 공원이 폐쇄된다고 한다. 가을은 단풍을 찾는 등산객으로 붐비고 여름에는 방학을 이용한 가족 단위의 캠핑이 대세를 이룬다. 캠핑 사이트는 일 년 전 예약이 필수 일 정도라고 하니 미국의 동부에서 꽤 인기 있는 곳인 것 같았다.
우리도 가을이 제법 익은 공원의 단풍을 즐겼다. 낙엽이 쌓인 길을 친구와 걸으며 ‘인생의 후반’에 만나는 이 아름다움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를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27마일의 자동차 도로 위를 서서히 달리는 버스, 굽이를 돌 때마다 새롭게 나타나는 경치에 대해 가이드는 열심히 설명을 했다. 이번 가이드는 나이가 꽤 든 할아버지.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말을 소리는 작았고 퀘벡의 가이드에 견주어 보자면 너무 아마추어 티가 났다. 그래도 그 나이에 일을 하시는 것에 점수를 주기로 했다. 힘들었지만 참아야 했던 것은 버스에서 내릴 것도 아니고 점심시간 이후면 바로 끝날 관광이었기에.
식사 시간이 되었고 예정되어 있던 대로 랍스터 런치이다. 메인 주의 주 관광 메뉴인 해산물. 그중에서도 단연 랍스터가 일 위이다. 미국 내에서 구매 가능한 랍스터의 50퍼센트를 공급하기도 하고 나머지 50 퍼센트는 메인 주 자체 내에서 소비를 한다고 하니, 메인 주 하면 “랍스터” 불려지는 것이 당연하겠다.
도착한 곳은 일박에 500불 한다는 워터프런트(Water Front)의 한 호텔. 구석진 곳에 단체 관광객을 받기 위해 따로 마련된 작은 강당 같은 곳이었다. 화려한 장식은 없었어도 통 창 너머로 바다가 보이는 풍경이 제법 근사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해산물 특유의 바다향이 가득하다. 랍스터를 조리하는 냄새. 시장기가 발동하였다.
의자에 앉자마자 음식이 나온다. 불행하게도 랍스터가 담긴 접시를 제외하고는 모두 일회용 종이 접시이다. 하기사 그 많은 손님들에게 일일이 근사한 도자기 접시를 사용하려면 일이 얼마나 힘들까 싶었다. 서빙되어 나온 랍스터는 살짝 익힌 후 버터에 구운 듯했다. 버터 향과 어우러지는 랍스터와 맥주 한잔 시켜서 마시며 바다를 바라보는 일. 소소한 것에 충분히 행복할 수 있고, 큰일 아닌 것에도 감사할 수 있는 오늘이다. 전날도 크루즈 내 저녁식사에서 버터에 구운 랍스터 테일이 나왔었고 2개씩이나 시켜먹었고 와인도 곁들였었다. 그 칼로리 계산은 수포자의 머리로는 감당이 안된다. 먹는 즐거움도 행복한 일 중에 하나라는 쓸데없는 사족을 달며 친구와 나는 함께 깔깔거린다.
관광이 끝나고 승선하기 전에 항구에 다아 있는 작은 거리들을 걷는다. 수제 아이스크림 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하나씩 사서 들고 '아, 달콤하고 맛있네'를 연발하며 책방을 기웃거리고 엽서를 사고 아카디아 공원 사진들의 달력도 하나 샀다. 다시 또 올 수 있는 곳일지 알 수 없으니 이런 기념품쯤은 하나 있어야 한다며. 몸무게가 는것 만큼 짐의 무게도 늘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