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이끄는 삶 Day 18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골 3:15)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 133:1)
- 진정한 교제는 예배에 참석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교제는 함께 삶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것에는 이기적이지 않은 사랑, 진실한 나눔, 실제적인 섬김과 희생적으로 서로에게 베풀고 서로에게 위로를 주는 것을 포함한, 신약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모든 '서로'에 대한 명령들이 포함되어 있다.
- 교제에 있어서 그 크기는 매우 중요하다. 작을 수록 좋다. 큰 무리와 함께 예배를 드릴 수는 있지만 교제는 할 수 없다. 그룹의 크기가 커져 열 명 이상이 되면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기 시작하고, 소수의 사람들이 주도하기 시작한다.
- 예수님은 소수의 제자들을 두고 사용하셨다. 예수님은 더 많은 사람들을 선택하실 수도 있었지만,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소그룹은 열두 명 이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아셨다.
#진정한 교제에서는 사람들이 진실함을 경험한다
- 진정한 교제는 피상적이고 표면적인 상호 작용이 아니다. 진실하며 때로는 아주 깊은 나눔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진실하게 이야기할 때만 가능해진다. 그들은 상처를 나누고, 감정을 표현하며, 실패를 고백하고, 의심을 보이며, 두려움을 시인하고, 약점을 깨달으며, 기도를 부탁한다.
- 진실해지는 것은 위험한 일이고, 용기가 필요하며, 겸손해야 할 수 있다. 노출, 거부 그리고 또 다시 상처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에 직면하는 것이다. 누가 이런 위험을 감수하겠는가?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약 5:16). 우리는 오직 위험을 감수함으로써 성장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가장 어려운 일은 우리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솔직해지는 것이다.
#진정한 교제를 통해 사람들은 상호 의존을 경험한다
- 상호 의존은 주고받은 것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에게 의지하는 것이다.
- 상호 의존은 교제의 핵심이다.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책임을 나누며, 서로를 돕는 것이다. 바울은 "나는 우리가 믿음으로 서로를 돕기 원한다. 너희의 믿음은 나를 도울 것이고 나의 믿음은 너희를 도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진정한 교제를 통해 사람들은 공감한다
- 공감하는 것은 충고를 하거나, 빠르고 표면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다. 공감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고통에 함께 참여하고 그 고통을 나누는 것이다. 공감하는 것은 "나는 네가 겪고 있는 것을 안다. 네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은 이상한 것도 아니고 잘못된 생각도 아니다"라는 것을 말해 준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감정 이입이라 부른다. 하지만 성경적인 단어는 공감이다.
- 우리는 공감을 통해서 두 가지 근본적인 필요를 채울 수 있다. 즉, 이해받고, 감정의 정당성을 확인받는 것이다. 우리가 상대방의 감정을 확인해주고 이해해줄 때마다 우리는 교제를 쌓아간다. 문제는 우리가 때때로 너무 급하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공감할 시간을 못 갖는다는 것이다. 또는 스스로의 상처에 너무 묶여 있다. 자기 연민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공감을 메마르게 한다.
- 가장 깊고 친밀한 단계는 함께 고통을 나누는 교제인데, 이것은 서로의 고통과 슬픔에 참여하고 짐을 함께 짊어지는 것이다.
- 우리가 서로에게 가장 필요할 때는 바로 심각한 위기, 깊은 슬픔 그리고 의심의 상황을 지날 때다. 상황이 악화되어 우리의 믿음이 무너지려고 하는 바로 그 때에 믿음이 친구를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런 때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 필요하고, 우리를 이끌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멀게 느껴질 때에도 소그룹 안에서는 그리스도의 몸이 실제로 존재하고 가시적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욥이 고통받고 있을 때 가장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래서 욥은 "고통당하는 친구를 동정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일이야"(욥 6:144)라고 절규했다.
#진정한 교제를 통해 사람들은 자비를 경험한다
- 교제는 은혜의 장소이고, 이곳에서는 우리의 실수가 들어나지 않고 덮어진다. 교제는 자비가 정의보다 강할 때 일어난다.
- 용서 없이는 교제할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하신다. "서로에게 악의를 품지 말아라"(골 3:13). 이것은 괴로움과 분노가 교제를 핵심부터 파괴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불완전한 죄인들이기 때문에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면 때로는 의식적으로, 그리고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골 3:13)
- 많은 사람들은 신뢰와 용서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비를 베푸는 것을 주저한다. 용서는 과거를 잊는 것이다. 신뢰는 미래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 용서는 상대방이 그것을 구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바로 해야 하는 것이고, 신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만일 누군가가 우리에게 계속적으로 상처를 준다 해도 하나님은 우리가 바로 용서하기를 바라시지만, 그들을 바로 신뢰할 것을 기대하지는 않으신다. 또한 그들이 계속적으로 우리에게 상처를 주도록 내버려두는 것도 원하지 않으신다. 그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신뢰를 다시 쌓기에 가장 좋은 곳은 격려와 믿음을 보여주는 소그룹 안에서다.
- 진정한 교제에 헌신되어 있는 소그룹에 속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유익이 많다. 그것은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크리스천으로서의 삶의 이룹다. 2천 년 이상 동안 크리스천들은 교제를 위해 정기적으로 소그룹으로 모여왔다. 만일 이런 모임에 속해보지 않았다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잘 모를 것이다.
- 우리는 공동체를 위해 창조되었다.
_릭 워렌, 목적이 이끄는 삶
Q. 예수님을 믿는 다른 누군가와 더 진실한 관계를 맺기 위해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한가지 일은 무엇인가?
공동체에서 나눔을 할 때 진실함과 솔직함이 필요하다는 부분은 알고 있었지만 이번엔 더 깊게 다가왔다. 릭 워렌 목사님의 본문을 보면 "그리고 그 가운데 가장 어려운 일은 우리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솔직해지는 것이다." 라는 부분이 나오는데, 일단 나 자신에게 솔직해 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요즘 자기 전에 조던 B.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 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법칙 8. 언제나 진실만을 말하라,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말라 라는 부분을 읽고 있다. 거기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우리 인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로서 속이고, 조작하고, 획책하고, 기만하고, 왜곡하고, 축소하고, 호도하고, 배신하고, 얼버무리고, 부정하고, 생략하고, 변명하고, 과장하고, 모호하게 뒤섞는 능력이 거의 무한에 가깝다."
나는 종종 사람의 사고와 내뱉는 언어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 자신이 같은 행동을 해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해석을 할 수가 있다. 이를테면, 내가 집을 청소하지 않아 집이 더러운 상태다. 그래서 기분이 안좋다. 그러면 나는 여러가지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집을 청소할 수도 있었지만, 피곤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둘째는 "정말 집을 청소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피곤했나? 그건 핑계다. 결국 내 게으름이 내 기분을 더 안좋게 만든거다." 같은 맥락에서 정도의 차이를 넣을 수도 있다. "피곤하니까 쓸고 닦지는 못했지만 대충이라도 정리했으니 최악은 아니라는 데에서 위안 삼자." 또한 아예 '집을 청소하지 않아 집이 더러운 상태다. 그래서 기분이 안좋다'라는 명제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기분이 안좋아서 집을 청소하지 못했던 건 아닐까? 혹은 집이 더러운 것은 아주 작은 트리거 중 하나고 사실은 점심을 먹지 못했고 어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으며 회사에서 커뮤니케이션 하며 곤란한 상황에 처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기분이 안좋았던 게 아닐까?"
그리고 내 진짜 마음은 무엇일까. 진실은 무엇일까. 아니 애초에 내 마음의 문제에 대해 진실을 따질 수 있을까? 아직도 사실 명확하게 파악하지는 못하겠다. 이전의 나는 사실 나 스스로를 질책하는 쪽으로 사고하곤 했다. "너의 게으름으로 청소를 못한거야." "네가 부족하기 때문에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거야". 그러다가 이런 것이 과한 자기검열이고 스스로를 몰아 세우는 건강하지 못한 방식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나 자신을 더 너그럽게 풀어주고 사정을 봐주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다보니 또 "내가 나 자신의 합리화에 속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부분에 관련하여 계속적으로 성경을 읽고 주님께 지혜를 구해보아야겠다. 또한 12가지 인생의 법칙을 읽다 보면 성경이 많이 인용되는데, 그 부분도 더 읽어보며 사유 해 보아야겠다.
그리고 어쨌거나, 내 마음 속에서 이러한 고민과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만큼은 진실이다. 내가 이러한 고민과 갈등을 하고 있다는 것을 글로 적어 나의 영적인 공동체에 공유하기 때문에 이 또한 진실한 교제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구든, 이 주제에 대해 나와 이야기 해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편하게 이야기 해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