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이끄는 삶 Day20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고후 5:18)
- 삶이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가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불화나 상처 혹은 갈등이 있을 때마다 그 관계를 깨뜨리기 보다는 유지하는 노력을 하기 원하신다.
- 바울은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따름으로 무엇을 얻었거나, 그분의 사랑으로 여러분의 삶에 얼마간의 변화가 일어났거나, 성경의 공동체 안에 있는 것이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가 있거나, 여러분에게 따뜻한 마음이나 배려하는 마음이 있거든, 내 부탁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서로 뜻을 같이하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속 깊은 벗이 되십시오"(빌 2:1-2, 메시지)라고 권면하고 있다. 바울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우리의 능력이 영적인 성숙의 척도라고 가르쳤다(롬 15:5, 메시지).
- 만약 하나님의 복을 받기 원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알려지고 싶다면 중재하는 법을 배우라. 예수님은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라고 말씀하신다. (...)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자들은 복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중재자의 위치가 힘들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하려고 하지 않는다.
- 화평케 한다는 것은 갈등을 피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를 피하고, 문제가 없는 것처럼 숨기고, 또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비겁한 자의 모습이다. 평화의 왕, 예수님은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으셨다. 때때로 그분은 모든 사람을 위해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셨다. 때로 우리는 갈등을 피해야 하고, 또한 때때로 갈등을 만들어야 하며, 때로는 그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님의 계속적인 인도하심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 또한 화평케 한다는 것이 양보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항상 양보하고, 주장을 내세우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도록 두는 것은 예수님이 의도하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많은 문제들 앞에서 악한 반대자들과 대면하여 물러서기를 거부하셨다.
#사람에게 이야기하기 전에 하나님께 이야기하라
- 하나님과 먼저 그 문제에 대해 의논하라. 친구와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기도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바꾸시거나, 우리의 도움 없이 상대방의 마음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관계들을 놓고 더 기도한다면, 분명 그 관계들은 더 원만해질 것이다.
- 다윗이 시편을 통해 그랬듯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마음을 쏟아놓으라. 하나님께 낙담한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라. 그분에게 울부짖으라. 그분은 우리의 분노, 상처, 불안 등의 감정에 놀라거나 당황해하지 않으신다. 그러니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게 이야기하라.
- 사도 야고보는 대부분의 갈등이 기도의 부족으로 생긴다고 지적했다. (...) 우리는 하나님께 눈을 돌리기 전에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기쁘게 해주기를 기대한다. 그리고는 그들이 우리를 실망시켰다고 화를 낸다. 그때 하나님은 "나에게 왜 먼저 오지 않았느냐?"고 말씀하실 것이다.
#항상 먼저 다가가라
- 우리가 피해자이든 가해자이든 상관없다. 하나님은 우리가 먼저 움직이기를 기대하신다. 상대방이 행동을 취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라. 깨어진 관계의 회복은 매우 중요해서, 예수님은 이를 예배보다 우선순위에 두라고 명령하셨다.
- 관계가 왜곡되고 깨어지만 바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화목의 자리를 마련하라. 미루거나 핑계를 대거나 "언젠가는 해결할게"라고 약속하지 말라. 가능한 한 빨리 얼굴을 맞대고 만날 계획을 잡으라. 뒤로 미루면 분노만 깊어지고 문제가 더 심각해질 뿐이다. 갈등은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곪는다.
- 화목을 위한 만남의 성공 여부는 적절한 시간과 장소를 선택하는 데 있다. 두 당사자가 피곤하거나, 마음이 급하거나, 누군가의 방해를 받을 만한 시간에는 만나지 말라. 만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두 사람이 모두 최상의 상태에 있을 때다.
#그들의 감정에 공감하라
- 입보다는 귀를 더 많이 사용하라. 의견 차이를 좁히기 위해서 어떤 시도를 하기 전에 사람들의 심정이 어떤지 먼저 들어보아야 한다. 바울은 "자신의 일들만 돌아보지 말고 서로의 일들도 돌아보라"(빌 2:4)고 충고했다. (...) 사실보다는 그들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라. 해결이 아닌 공감으로 시작하라.
- 처음부터 사람들이 그 감정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말로 충고하지 말라. 그냥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라. 그래서 그들이 방어하지 않고 감정의 짐을 덜게 하라.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해한다는 표현으로 고개를 끄덕이라. 감정이 항상 진실되거나 논리적이지는 못하다. 다윗이 "내 마음이 슬프고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도 내가 어리석은 탓에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주 앞에서 마치 짐승과 같았습니다"(시 73:21-22, 쉬운성경)라고 고백한 것처럼 사실 분노는 우리를 어리석은 방법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한다. 우리 모두는 상처를 받으면 짐승처럼 행동한다.
- 이와는 반대로, 성경은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잠 19:11)고 말하고 있다. 즉, 인내는 지혜에서 나오고 지혜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데서 나온다.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듣는 것은 "나는 당신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나는 당신과의 관계를 소중히 생각하며 당신은 나에게 중요한 존재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가 그들에 대해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 전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 상투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이 말은 사실이다.
#나에게도 잘못이 있음을 고백하라
- 만일 당신이 진지하게 관계의 회복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면 우선 자신의 실수나 죄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예수님은 그것이 상황을 더 명확하게 보는 방법이라고 말씀하셨다.
- 우리는 모두 자신의 시각으로는 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갈등이 있는 당사자와 만나기 전에 제삼자에게 자신의 행동을 평가하는 데 도움을 달라고 부탁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께 자신의 잘못이 어느 정도인지를 여쭤보아야 한다. '내가 문제인가? 내가 비현실적이고 둔한가? 혹은 내가 너무 예민한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 1:8)
- 고백은 화해의 아주 강력한 도구다. (...) 우리가 스스로의 실수를 겸손하게 인정하기 시작한다면 상대방도 화를 풀고 공격을 늦춘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마도 우리가 방어적일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핑계를 대거나 책임을 전가하지 말라. 정직하게 그 갈등의 원인을 제공한 정도의 대가를 치르라. 자신의 실수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라.
#사람을 공격하지 말고 문제를 공격하라
- 누구의 잘못인가를 가리는 데 너무 많은 노력을 쏟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우리는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 15:1). 화를 내면서 하고자 하는 말을 올바르게 전달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단어 선택을 현명하게 해야 한다. 부드러운 대답이 언제나 가시 돋친 말보다 낫다.
- 갈등을 해결하려고 할 때 어떻게 말하느냐는 무슨 말을 하느냐 만큼 중요하다. 만일 공격적으로 말을 한다면, 그 말을 듣는 사람도 방어적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슬기롭다 하고, 사람들은 부드러운 말을 잘 듣는다"(잠 16:21, 쉬운성경).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하면서 상대방을 설득할 수 없다.
- 교제를 위해서 우리는 비난, 비하, 비교, 판단, 모욕, 멸시 그리고 빈정대는 태도 등 관계에 있어서의 핵무기들이 들어 있는 무기고를 파괴해야 한다.
#할 수 있는 한 협력하라
- 평화에는 항상 대가가 따른다. 때로는 그 대가가 우리의 자존심일 수도 있고, 자기중심성일 수도 있다. 교제를 위해서 우리는 양보하고, 상대방에게 맞추며, 상대방의 필요에 호의를 보이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롬 12:19, 빌 2:3). 성경은 예수님의 일곱 번째 산상수훈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경쟁하거나 다투는 대신에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때 너희는 진정 자신이 누구이며, 하나님의 집에서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지 알게 된다"(마 5:9, 메시지)
#해결이 아닌 화해를 강조하라
-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이 동의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해결은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화해는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가 화해에 초점을 맞출 때 문제는 그 중요성을 잃고 무의미하게 되어버린다.
- 하나님은 획일이 아닌 연합을 원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문제에 대해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고도 함께 살아갈 수 있다.
- 그렇다고 해서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것을 포기하라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계속적으로 논의하고 논쟁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영적인 조화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 이 과를 읽고 누구에게 연락해야 하는가? 누구와 관계를 회복해야 하는가? 단 일 초도 더 지체하지 말라. 지금 책을 잠시 덮고 그 사람에 대해 하나님과 이야기하라. 그리고 전화를 듣고 그 과정을 시작하라.
- 우리가 평화를 위해 일한다면 이는 하나님이 하실 것을 그대로 하는 것임을 기억하라. 그래서 하나님은 평화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당신의 자녀라 부르는 것이다(마 5:9).
_릭 워렌, 목적이 이끄는 삶
Q. 내가 오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지금 당장은 깨어진 관계를 회복해야 할 사람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전에는 오래 화해하지 못하던 사람이 매일처럼 꿈에 나타나곤 했다. 중학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가 화해 할 때까지 꿈에 나오기도 했고, 대학교 때 친했던 후배와 화해하지 못한 기간동안 계속 꿈에 나오기도 했다. 동생과 싸워서 연락하지 않았을 때에는 동생과 화해하는 꿈을 매일같이 꾸기도 했다.
그래도 지금은 다 화해 했고, 더 이상 해결해야 할 깨어진 갈등이나 관계도 없다고 생각이 든다. 주님께 감사드린다.
이번 릭 워렌 목사님의 글을 읽으면서는,
- 화평케 한다는 것은 갈등을 피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를 피하고, 문제가 없는 것처럼 숨기고, 또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비겁한 자의 모습이다.
- 또한 화평케 한다는 것이 양보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항상 양보하고, 주장을 내세우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도록 두는 것은 예수님이 의도하신 것이 아니다.
이 두 부분이 특히 마음에 와닿았다. 화평케 한다는 것은 회피가 아니다. 주님께 먼저 지혜를 구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고,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 후 부드러운 언어를 통해 나의 마음을 진실되게 표현하는 것이다. 또한 무조건적인 양보도 아니다. 동의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을 사려깊은 언어로 솔직하게 이야기 하는 것이다.
무례하지 않으면서도 담대하기가, 화내지 않으면서도 강하기가, 무조건적인 양보를 하지 않으면서도 온유하기가, 회피하지 않고 문제를 이야기 하면서도 부드럽기가, 배려 하면서도 비겁하지 않기가 참 어려운 지점인 것 같다. 관련하여 주님께 계속적으로 지혜를 구하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주님 마음에 흡족한 주님의 자녀가 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