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사립탐정 진 앤 송 Jan 9. 2026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마 19:3~4)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 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마 19:5~6)
여짜오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마 19:7~9)
제자들이 이르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만든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마 19:10~12)
위 말씀은 <결혼>에 대한 중요한 말씀이자 대부분의 성도들이 <이혼>을 금하는 성경적인 근거로 드는 구절입니다. 조금 마이너한 기념일이지만 5월 21일이 부부의 날인데 가정의 달인 5월에는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 이렇게 세 번의 기념일이 있습니다. 부부의 날이 하필 21일인 이유는 <둘이 합쳐 하나가 되었다>는 의미이며 바로 위 성구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그런데 저 구절을 읽어보시면 끝에 이게 뭐냐? 싶은 말씀이 나옵니다. 결혼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이라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는 은혜롭고 아름다운 말씀과 음행 외에는 아내를 버리고 재혼하지 말라는 실무적인 당부에 이어서 갑자기 심영, 아니... 고자 얘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위 구절을 정말 많은, 거의 대부분의 교회에서 결혼의 신성함을 강조하고 이혼을 금하는 근거로 사용하는데 본 탐정은 여러분께 엄청난 반전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역사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적지 않은 공부를 해온 본 탐정은 여성에게 있어 결혼이 필수이고 연애가 사치이며 이혼은 곧 인생의 막장을 찍는, 그런 시대와 사회는 굉장히 낙후되고 여성인권이 밑바닥인 시절임을 알고 있습니다.
(여성에게 있어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가슴이 뛰는 대로 하면 되는> 시대가 정말 인권이 발달한 올바른 시대와 사회인 것이지요.)
즉 위 말씀은 그렇게 여성인권이 막장인 고대사회를 배경으로 하며 이 시절의 아내들은 권리는커녕 남편의 소유물 취급에 부속품 정도였고 이혼은 아내들의 선택이 아닌 <남편으로부터 내쳐지고 버려지는> 것이었습니다.
(가령 예수님과 우물가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인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던 것은 다섯 번이나 남자를 갈아치운 게 아니라 <다섯 번이나 버림받은> 것이지요.)
남편이 수틀리면 아내를 내치고 버리는 게 비일비재했던 시절에 주님께서는 결혼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이고 사람이 나눌 수 없는 것>이니 결혼한 아내를 함부로 버리지 말고 음행 같은 일이 아니고서야 내칠 생각 말라는, 아내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와 보호조치를 당부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이면서도 그 시절 남성 개념을 못 벗어난 제자들은 그 말씀을 듣고 <한 아내만 평생 데리고 살아야 되는 것이면 차라리 결혼하지 않는 게 낫겠다>는 희대의 개소리를 나불거리고 주님께서는 <퍽이나 안 하겠다. 차라리 고자나 되라>는 팩폭을 날리시지요. 저 말씀은 바로 이런 상황인 겁니다. 흔히 생각하시는 것과 꽤 다르죠?
이 말씀을 이런 팩트를 모르고 그대로 적용하면 엄청난 파국이 벌어집니다.
남편 잘못 만나고 결혼 잘못해서 무엇보다 행복하고 따사로워야 할 가정과 결혼생활이 영적ㆍ육적 전쟁터가 되고 피가 마르고 몸이 말라가고 심령이 황폐해지는데도 이혼을 못 하는 아내들이 수도 없습니다.
아이 때문에, 그 외에 여러 가지 사유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기가 막힌 것은 바로 <이혼은 비성경적인 죄악>이라고 가르치는 목사와 거기에 아멘, 하며 이혼을 생각하는 자매를 정죄하고 비난하며 마치 가정을 깨려는 마귀의 궤계에 넘어가는 것 마냥 매도하는 성도들입니다.
이혼을 생각할 지경까지 간 것 자체가 이미 가정은 깨진 것인데 깨진 가정의 껍데기를 붙잡는 것을 가정을 지킨다고 생각하는 이상한 개념들이 팽배한데 일단 성경적이고 아니고를 떠나 한 사람의 인생이 고달프고 가시밭길인데 그것을 빠져나와 새 삶을 찾겠다는 시도와 노력을 그렇게 매도하는 게 정상적인 인간으로서 할 일인지나 생각해야 합니다.
일단 이혼을 하려면 결혼을 해야 하니 결혼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하겠는데 결혼이란 타인과 타인의 결합으로 가족과 가정의 기본이자 영적으로는 주님과 교회의 결합을 이 땅에서 아날로그로 구현하는 예표입니다.
부모와 자식의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사랑>과 달리 이성적인 사랑으로 맺어지며 서로에게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사랑을 싹틔우는, 연애라는 과정을 거쳐 결혼에 이르는데 결혼을 사랑의 완성, 연애의 끝이라 생각하시는 분들 많지만 어림없는 소리입니다.
결혼 전의 연애는 둘이 함께 <사랑을 담을 가장 좋은 그릇>을 만드는 과정이며 결혼을 함으로써 <그릇이 완성되고> 이후 신혼부터 시작하여 결혼생활을 하면서 <그릇에 사랑을 채워가는> 것입니다.
아이를 낳기 전인 신혼기간, 아이를 낳은 후,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그릇을 채우는데 통상 아이가 대학을 들어가거나 졸업할 때까지가 그릇에 사랑을 채우는 기간이며 그릇을 채우는 기간이 끝나는 시점이 흔히 여성들이 맞닥뜨리는 <갱년기>입니다.
나이도 중년에 접어들고 아이도 자라고 가정생활에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이때부터는 그릇에 사랑을 채우는 게 아니라 <그동안 그릇에 채운 사랑을 소비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며 만약 부부의 사랑그릇이 너무나 야무지게 채워져서 공간이 모자라 철철 넘치기까지 한다면 그 사랑이 다른 가정에서 온 며느리에게도 적셔지는 것입니다.
(며느리가 착하고 잘못이 없는데도 시집살이를 시키고 구박하는 시부모들이 어떤 상태인지 이 한 마디로 아시겠지요? 본인들이 쓸 사랑도 없는데 며느리에게 베풀 사랑이 있겠습니까?)
어쨌든 연애, 신혼, 육아, 갱년기, 노년까지의 모든 결혼생활은 각 시점에 맞게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사랑하고 함께 살아가는 기간이며 흔한 생각처럼 갱년기가 되면 호르몬의 변화로 인해 마음이 변하는 게 아니라 호르몬이 변하는 시기에 맞는 또 다른 사랑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반려자, 동반자로 귀히 여기고 내 자녀의 부모로 신뢰하며 지내온 부부는 이런 결말을 맞게 됩니다만 잡은 물고기에게 먹이를 안 준다느니, 결혼했으니 어쩔 거냐느니, 뭐 이런 카스테라에 이빨도 안 들어갈 소리나 하며 아내 알기를 부엌데기, 무급 파출부, 시댁 종년 정도로 취급하는 남편들은 소위 갱년기에 이르면 비로소 그때까지 쌓아온 업보를 돌려받아 늘그막에 모진 구박과 박대를 당하고 황혼이혼을 당하거나 독거노인으로 최후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중간에 부부관계를 정리하는,
즉 <이혼>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어떤 의미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