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y Feb 25. 2022

휴면계좌

“고객님, 휴면계좌가 있으시네요.”

 

 그동안 은행에서 이런 말을 들은 것은 딱 두 번이다. 미국에서 큰 시누이가 오기 전과, 친정엄마가 오기 1~2주 전이다. 두 번 다 집에 손님이 한두 달 정도 지내고 갔다는 공통점도 있어 신기하다. 손님이 오게 되면 여러 가지로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아 비용이 들기도 하는데, 그런 것을 알기 전에 그러니까 손님이 오기 전에 하늘에서 돈이 ‘뚝’ 떨어진 것이다. 두 번 모두 10만 원이었기에, 시누이 가족에게는 한우를, 엄마에게는 한우 꼬리곰탕을 대접했다. 솔직히 비용을 떠나 10만 원이 주는 묘한 기분으로 넉넉한 대접이 되었다. 집에 손님은 복이라는 옛말도 있지만, 현실은 알면서도 그렇게 잘 안 되는 경우도 많기에, 결과적으로 다행이다.

 


 시누이 부부가 온 것은 내가 한창 바쁠 때였다. 손님이 나의 상황을 알고 오는 것이 아니기에, 서로 이해가 필요한 시간이다. 두 분은 교회 일로 오랜 몽골 선교를 끝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잠시 우리 집에 들르셨다. 그런데 잉꼬부부가 몽골에서 생긴 일을 우리 집에 갖고 와 티격태격했다. 선교지에서 두 분은 어떤 단체에 소속되어 봉사했는데, 아주버님이 팀장이셨나 보다. 그런 이유로 서로를 챙기지 못해 참던 감정이 터진 것 같다. 천사의 일을 하러 가셨는데, 정작 자신들은 상처를 받았으니 뭐라 위로를 해 드려야 할지 몰라 지켜보기만 했다. 마음이 불편하면 우리한테도 감정이 전해지기에 첫 한 달은 우리 가족도 힘들어,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일이 해결된 남은 한 달을 가뿐히 보내고, 마지막 날 밤에 두 번째 스테이크 파티를 했다. 한우라 맛있다며 기뻐하셨고, 구워둔 고기가 좀 남아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다음 날, 아침 우리 부부는 각자 일터로, 아이는 학교로, 시누이 부부는 미국으로 갈 준비로 바빴기에 짧은 인사를 하며 헤어졌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냉장고에 구워 둔 고기가 모조리 없어졌다는 것이다. 얼마나 맛있었으면. 그리고 고맙다는 편지도 있었다.

 


 엄마도 비슷한 상황에서 오셨다. 손님이 주인의 입장을 알 리가 없다. 그냥 오고 싶을 때 오는 것. 봄이라 이모들하고 봄나물 캐러 갈 계획도 있으셨단다. 사람이 솔직한 것이 좋다지만 감정에 충실하다 보면 실수를 할 수 있다. 나는 일이 바빠 엄마에게 잘해 드리지 못한 것 같다. 그런데 휴면계좌에서 들어온 10만 원으로 미리 한우 꼬리를 사놨기에, 곰국을 끓여 드릴 수 있었던 것인데, 미리 준비했다는 것에 기쁘셨나 보다. 그다음 기회에 친정에 가니, 곰탕을 끓여주셨다. 주말에 엄마와 여행도 다녀왔다. 그런데 복잡한 것은 엄마가 여행에서 찍은 사진을 언니에게 보여줬더니 서운해한다는 것이다. 나보다 친정 가까이에 사는 언니와 언제부터 그런 사이가 됐다. 엄마는,



 “May야!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은 좋지만, 네 얘기를 많이 하지 마라. 특히 너 사는 얘기는 엄마한테만 해. 언니한테도 많이 하지 마. 자매도 서로 자기 살기 바쁘단다. 나이 들면 형제자매밖에 없지만 그래도 서로 존중하고,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

 


 엄마는 그러면서도 내리사랑이니 언니한테 잘하라 하셨다.

 그렇게 한 달을 지냈다. 엄마는 혼자가 된 지 10년이 된다. 그래도 우리가 옛날에 살던 30년 넘은 집을 지키며 이웃들과 잘 지내고 계셔서 여러모로 감사할 뿐이다.

 


 휴면계좌가 또 나오면 좋겠지만, 지금은 코로나 19와 함께 여행이 어려워져, 손님도 휴면계좌도 찾아볼 수 없다. 집에 오는 손님은 복이며 그것을 알려주려 하늘에서 휴면계좌가 ‘꽝’ 떨어졌나 보다. 그 후, 좋은 일이 생겼다면 다 그 덕분이리라.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