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무게
차를 타고 생활용품 매장에 가는 길, 빛이가 창밖에 지나가는 버스의 커다란 바퀴를 가리키며 말한다.
"와. 타이어다!"
빛이가 있을 때 한 번도 써보지 않은 단어인데 5살짜리가 벌써 타이어라는 단어도 알고, 참 많이 컸다.
"빛이 너 벌써 타이어를 알아? 대단하네?"
빛이가 갸우뚱하며 대답한다.
"그게 무슨 말이야, 타요버스 몰라?"
아. 아이들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 버스 '타요'였구나. 뭐든 아는 만큼 들리고, 듣고 싶은 대로 들린다.
매장에 도착했다. 빛이의 관심품목은 늘 색종이와 클레이다.
"아빠, 여기 클레이도 있지?"
"그러엄. 여긴 다있소니까 다 있어~"
빛이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날 빤히 바라본다. 그리고는 내 옆을 지나치며 혼잣말로 중얼댄다.
"그게 무슨 말이야.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말이 있냐."
이제 가벼운 말장난도 아무렇게나 못 하겠다.
돌아오는 길, 차에서 퀴즈놀이 중이다.
"아빠가 먼저 문제 낼게. 1 하고 1 하고 더하면?"
빛이가 한숨을 쉰다.
"너무 쉽잖아. 난 더 어려운 거 내볼게. '물'하고 '달'하고 더하면?"
난 순간 얼음이 된다.
숫자가 판치고 잇속만 따지는 세상에서는 절대 생각할 수 없는 신세계 수학문제다. 아이의 말에 점점 무게가 실림을 느낀다. 이제 숫자놀음 따윈 그만해야겠다.
밤에 잠을 자는데 몸이 안 움직인다.
'이게 가위눌린다는 건가?'
가위에 눌려 본 적이 없어서 어떤 느낌인지 전혀 몰랐는데, 잠결에 숨도 잘 안 쉬어지고 뭔가에 강하게 눌린 느낌이 들어 발버둥치며 깨어났다.
식은땀을 흘리는 척하며 눈을 떠 보니, 빛이 다리가 하나는 내 배 위에, 하나는 내 목 위에 올라와 있는 게 아닌가.
말의 무게만큼 아이의 무게도 많이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