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27일
‘진짜, 가는 건가?’
‘누구 하나 티켓에 문제가 생기진 않겠지?’
‘그리고 하필 그게 나는 아니겠지?’
‘연착되지만 않았으면…’
아이들 없이 혼자서 푹 자고 일어난 출발 당일 아침,
눈뜸과 동시에 무의식의 생각들이 정신없이 말을 건다.
어차피 비행기가 떠야 사라질 생각들이기에
지금은 그저 ‘어서 와.’ 하며 맞이한다.
저녁 9시까지 교회에 모여 함께 출발하기로 했다.
출근했다가 지방에서 바로 올라오는 청년도 있고,
저녁수업 후 부리나케 달려올 대학생도 있는 반면,
난 간만에 여유가 좀 있다.
각 유적지에서 청년들에게 설명해 줄 내용과
전해줄 메시지를 다시 한 번 정리해 본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 오전시간이 사라진다.
지난 몇 주간 이 일에만 몰두했음에도 불구하고
준비하다 보니 끝도 없다.
내 안에 아직 더 곱씹고 소화해야 할 부분도 많았으나,
그건 장시간 비행의 지루함을 덜어줄 선물로 남긴다.
‘아, 짐 싸야지!’
며칠 전 다이소에서 쇼핑을 했다.
아이들 없이!
원래부터도 쇼핑에 별로 관심 없는 편이긴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후로는 가끔 커피한잔 사먹는 것 외에
나 자신을 위한 소비를 해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오롯이 나만을 위한 쇼핑을 했다.
'색종이'와 '클레이'가 아닌, 여행용품코너만 봐도 좋고,
요것조것 고르는 재미도 있다.
그래봐야 15분 만에 ‘후다닥’ 끝난 쇼핑이지만
나름 굉장히 만족스런 성과다.
짐의 무게를 최소화하기 위한 가벼운 백팩 5,000원,
여권 및 휴대폰 보관을 위한 작은 보조가방 2,000원,
가방 양 옆에 ‘쏘옥’ 끼워갈 가벼운 슬리퍼 3,000원.
이런 게 만원의 행복인가.
짐이 별로 없다.
청바지, 반바지, 티셔츠 3장, 바람막이, 속옷, 양말,
스포츠타월, 면도기, 로션, 핸드북, 휴대폰, 여권.
아. 그리고 다이소에서 산 슬리퍼까지.
이정도면 충분하다.
조금 더 과장하면 난 여권만 있어도 살 수 있다.
짐을 싸는 데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다 싸고 저울에 무게를 달아보니 2.5㎏.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짐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도, 무겁지도 않다.
퇴근시간을 피해 조금 일찍 교회로 출발했다.
집에서 교회까지는 지하철로 한 시간 반.
비전트립에서 펼쳐질 그림들을 머릿속에 그리며,
이전에 다녀왔던 기억들도 끄집어내 보고,
함께 할 청년들 한 명, 한 명 떠올리다 보니,
몸은 이미 교회다.
일찍 온 몇몇 청년들과 이른 저녁을 먹고
하나둘씩 교회로 모여드는 청년들을 맞이한다.
‘왜 이렇게까지 반가운 걸까.’
늘 봐오던 청년들인데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거의 이산가족 상봉 수준.
함께 길을 걸어갈 사람을 만나는 건 참 기쁜 일이다.
그것이 여행이든, 결혼이든, 공동체를 세워가는 일이든,
믿음의 모험엔 늘 설렘이 있다.
수요일인 오늘은 J가 가장 바쁜 날이다.
수업도 늦게 끝나고 학생회 모임까지 하면 저녁 7시,
밥까지 먹고 교회로 오면 저녁 9시도 빠듯하겠다.
저녁 8시.
마지막까지 J의 마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약간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J에게 연락했다.
‘헉. 안 받는다.’
기도가 절로 나오는 순간이다.
세상에서 제일 긴 2분이 지나고, 전화벨이 울렸다.
J다. 떨리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묻는다.
“어디… 야?”
“저 지금 교회 근처에서 엄마랑 밥 먹고 있어요.”
됐다, 됐어!
삶에 큰 문제가 생기면 자잘한 문제들은
자연스레 사라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J가 겪는 ‘공황’의 문제가 공동체의 ‘짐’이 아닌,
우리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힘’이 되리라 믿는다.
* 브런치스토리 연재가 최대 30화까지만 가능하여
<비전트립 다이어리>는 우선 오늘로 마감합니다.
준비기간을 거쳐 '비전트립 다이어리_출발편'으로
다시 돌아올 예정입니다.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