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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무환을 꿈꾸며

다 이루었다

by 윤슬기

오늘도 우리 부부는 8살 빛이와 5살 하늘이를 준비시키느라 아침부터 온 힘을 쏟는다. 아이들의 기분을 건들지 않으면서도 정해진 시간 내에 움직이게 하려면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어렵게 집을 나선다. 그러나 하늘이가 유치원에 잘 들어가는 순간을 보기까지는 안심할 수 없다. 요즘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 일이지만, 언제든 유치원 문 앞에서 드러누울 수 있다는 생각에 늘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우리가 걱정하는 일의 대부분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는 것도 알고, 최악의 경우를 떠올리며 정신적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도 없는데, 머리로 알면서도 이럴 때만큼은 그게 잘 안 된다.


작년 어린이집 문 앞에서 진을 뺐던 몇 번의 기억과, 지난주에 정신없이 나오느라 유치원 가방을 집에 두고 나와서 난리가 났던 하루, 많지도 않은 데이터 가지고 자꾸 쓸데없는 상상에 사로잡힌다.


'유비무환'


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어야 하는데, 마음의 준비를 하면 할수록 문제의 크기는 눈덩이 굴리듯 더 커지는 느낌일까. 사실 육아에서는 '유비무환'보다는 '임기응변'이 필요할 때가 훨씬 많다.


등굣길 만난 빛이 친구가 빛이에게 과자 한 조각을 건넨다. 빛이가 한입에 쏙 넣는다. 과자는 빛이가 먹었는데 잘 보니 아무 말 없이 따라가는 하늘이의 양 볼에 뭐가 가득 찼다.


'아, 큰일이다. 심통이네?'


손이 바쁘게 움직인다. 가방과 옷을 빠르게 더듬다 다행히 웃옷 왼쪽 주머니에서 무언가 '뽀시락'거림을 느낀다. 언젠가 약국에서 받은 비타민 사탕 하나.


'아싸. 살았다.'


빛이를 먼저 들여보내고 하늘이의 손을 '꼬옥' 잡는다. 주변에 아무도 없지만 이럴 땐 괜히 하늘이에게 가까이 붙어 조용히 속삭인다.


"하늘아, 아빠가 '특별히' 하늘이한테만 주려고 준비해 둔 '선물'이 있어. 가방에 살짝 넣어 줄까? 아니면 하늘이가 '스스로' 주머니에 넣을래?"


역시 하늘이는 '스스로'라는 단어를 덥석 물었다. 자신만을 위해 준비된(?) 비타민 사탕을 주머니에 넣으며 금세 뿌듯한 표정으로 들어간다.


오늘도 유치원으로 들어가는 하늘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다 이루었다.'를 외친다. 다시 집을 향해 걷는다. '무비무환'의 마음상태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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