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중요한 문제
빛이와 하늘이가 놀이터 근처에서 줄지어 가는 개미떼를 관찰한다. 하늘이는 이를 앙다물고 몸을 '부르르' 떨면서 "무서워어~" 소리질러 보지만, "야, 니가 더 무서워."라는 언니의 한마디에 금세 잠잠해진다.
"우리 개미집 만들어 주자!"
빛이가 하늘이를 데리고 어디론가 뛰어간다. 둘은 바닥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노오란 개나리 꽃잎을 손에 모은다. 그리고는 개미떼가 줄지어 들어가는 구멍 주위로 주워 온 꽃잎을 하나씩 정성스레 놓는다.
어느샌가 서너 살쯤 된 남자 꼬마가 옆에 붙었다. 사과 꼭지처럼 머리 한가운데를 하나로 묶은 아이는 누나들의 행동이 궁금했는지 머리를 요리조리 들이민다. 아이의 꼼지락거리는 손을 보니 개미집이 언제 파괴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이안아! 누나들 방해하지 말고 이리 나와! 자꾸 그러면 저기 아저씨가 '이노옴' 한다?!"
함께 오신 할머니가 기웃거리는 아이를 계속해서 나무라지만, 그 말씀은 아이의 오른쪽 귀를 지나 바람을 타고 자연스레 왼쪽으로 빠져나간다. 안 그래도 바람에 날리는 꽃잎을 손으로 막느라 바쁜데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아이의 손까지 막아야 하는 하늘이 표정이 점점 굳는다.
"불.편.해."
결국 하늘이가 개구진 표정의 아이에게 한마디 던진다. 옆에 계시던 할머니도 이때다 싶어 "누나들이 불편하다잖아!" 거들어보지만, 여전히 한 귀로 들어간 말은 아이의 뇌를 거치지 않고 반대쪽으로 빠져나간다.
"아저씨, 얘 좀 혼내주세요."
불똥이 나한테로 튀었다. 자기들끼리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나 좀 더 지켜보고 싶었는데, 할머니의 정중한(?) 부탁을 거절하기도 어려웠다.
'이노오오오옴!!'
이렇게 하면 되나? 근데 진짜 저렇게 하면 아이가 말을 들을까. 난 '이놈'이란 단어 대신 '이름'을 택했다.
"안녕? 넌 이름이 뭐야?"
갑자기 수줍어진 아이는 줄지어 구멍에 들어가던 개미보다 작은 소리로 "이안이요." 대답한다.
"이안이? 이름 예쁘네. 누나들이랑 같이 놀고 싶었구나? 머리는 누가 이렇게 예쁘게 묶어줬어?"
"어린이집 선생님."
그래도 이번 목소린 구멍에 들어갔던 개미가 다시 집 밖으로 나오는 것 같다. 빙긋이 웃으며 대답하는 아이는 곧 순한 양이 된다.
'미미미 미미미 미솔도레미~'
집에 들어와 아이들 저녁밥을 차리는데 방에서 빛이의 경쾌한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 비록 단음이긴 하지만 얼마나 연습을 했는지 엄청 빠르게 치면서도 음정 하나 빗나가지 않는다. 그런 빛이가 보란듯이 연주하며 하늘이에게 묻는다.
"하늘아, 언니 틀린 거 있어?"
"어, 지금은 밥 먹을 시간이야."
허허, 그러게. 아빠가 밥을 차렸으면 식기 전에 밥을 먹어야지, 왜 피아노를 치고 있니?
우린 가끔 핵심을 잊고 작은 일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무엇이 진짜 중요한 문제인가.
아이들에게 부부끼리 시시비비를 잘 가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 서로를 존중하고 감싸주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휴대폰으로 열심히 문자 쓰면서 오타를 안 내는 것과,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휴대폰을 안 꺼내는 것.
개미집 꾸미는 누나들에게 방해가 되는 아이를 꾸짖어 쫓아내는 것과, 그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
무엇이 더 중요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