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식 거부? 그게 뭐였더라?
'이유식'
만드는 것부터 일이다. 이유식을 저을 때마다 피로함과 지루함에 찌든 팔목을 부여잡으며 매번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좀 쉬운 방법 없나?'
있다. 사서 먹이면 된다. 빠르게 계산해 본다. 한 끼 분량의 작은 병 하나가 5천 원 정도 하니까 하루 세끼 1만 5천 원. 한 달이면 45만 원. 대량구매하면 좀 싸니까 한 달에 40만 원이면 되겠다. 그쯤이야 뭐. 바로 포기.
그래서 오늘도 이유식을 젓는다. 난 수입산 돼지고기를 먹지만, 이 쪼만한 아이의 밥엔 최고급 한우가 헤엄친다. 난 아이들 키우느라 정신없이 밥과 김치로 한 끼를 때우더라도, 황실에서 태어난 듯한 이 녀석의 식사엔 온갖 유기농 채소를 잘 씻고 다듬어 내 영혼과 함께 갈아 넣는다. 설거지가 싫어서 물 마실 때 컵에 입도 대지 않는 나지만, 이유식 용기만큼은 정성스레 씻어 젖병소독기에 살균까지 한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늘 그 이유를 궁금하게 만드는 식사다.
그래서 이유식인가.
이놈의 이유식은 만드는 것만큼이나 먹이는 일도 쉽지 않다. 만드는 게 육체적 노동이라면 먹이는 건 정신적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아이와의 눈치싸움이 시작된다. 먹일 때마다 긴장감이 돈다. 숟가락으로 아이 입 주변을 '똑똑' 두드리다 아이가 입을 벌리는 순간 잽싸게 숟가락을 그 틈으로 집어넣는다. 두 개 밖에 없는 윗니 또는 잇몸 위쪽에 숟가락을 쓸어 올리며 빠르게 빼내는 기술이 자연스레 습득된다. 언제든 도로 뱉어낼 수 있으니 숟가락은 늘 대기 중.
그나마 그렇게라도 먹으면 감사한 일이나, 아이가 입을 닫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허무함이 찾아온다.
'이걸 내가 어떻게 만들었는데.'
만드는 동안 '내가 이렇게까지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찾고 있었다면, 이젠 '아이가 안 먹는 이유'를 찾을 시간이다.
여러 가지로 이유가 많은 밥이다.
셋째쯤 되면 이유식은 발로 만든다.
한우? 그런 거 없다. 대형마트에서 수입산 다짐육을 한 팩 집어든다. 한우 5분의 1 가격이지만 '청정지역에서 자란 소라 건강엔 훨씬 좋을 거다.'라고 스스로 주문을 외며 아이에 대한 괜한 미안함을 털어낸다.
계량? 그런 것도 없다. 큰 솥에 재료를 대충 다 때려넣고 휘휘 저어 2주치씩 만든다. 이렇게 만들면 혹시 아이가 잘 안 먹더라도 별로 아깝지가 않다.
먹이는 사람 마음이 편해서일까. 놀랍게도 셋째 별이는 첫 미음을 먹었던 순간부터 지난 6개월간 이유식을 남겨본 적이 없다.
'어라? 막네?'
최근 들어 이유식 거부가 시작됐다. 그간 심하게 잘 먹던 아이가 갑자기 혀를 내밀어 숟가락을 막는 모습이 낯설다. 창과 방패처럼, 숟가락과 혀의 전쟁이 며칠간 이어졌다.
돌이 되면서 바나나, 치즈, 고구마, 등을 줘봤더니 이젠 그런 것만 먹으려 한다. 바나나를 주는 척하다가 입을 벌리면 이유식 숟가락을 '쏙' 넣어보기도 하고, 이유식에 치즈를 조금씩 찢어 올려주는 방법으로도 꽤 버텼지만 이젠 그마저도 안 먹힌다. 치즈는 삼키고 밥만 뱉어내는 모습을 보면 얄밉기까지 하다.
'먹지 마라. 안 먹는 시기도 있나 보지 뭐.'
포기하고 한숨을 쉬며 화장실에 다녀왔다. 잠깐 사이 별이의 손과 몸에 이유식이 한가득이다. 식탁 위에 둔 이유식 그릇까지 별이 손이 닿았나 보다.
'근데 생각보다 양이 많이 줄었네?'
가만 보니 별이가 손으로 이유식을 떠서 혼자 열심히 먹고 있다. 이유식이 먹기 싫었던 게 아니라 '혼자' 먹고 싶었나 보다.
'이렇게 또 독립심이 자라고 있구나.'
가끔은 힘을 빼고 포기하면 해결되는 문제들이 있다.
그날 이후 밥을 동글동글하게 만들어 식탁에 줄지어 세워두면 별이는 혼자 열심히 집어 먹는다. 이유식 먹일 때의 긴장감도 사라졌다. 별이 옷이 좀 엉망이 된다는 단점은 있지만, 충분히 감수할 만하다.
'아, 역시 영원한 건 없구나!'
이유식 먹이는 걱정은 더 이상 없을 줄 알았는데 이제 이 방법도 끝났다. 별이가 식탁 위에 줄지은 주먹밥을 바닥에 던지는 재미를 알아버렸다. 고구마와 단호박의 비율을 높여 달달구리 이유식을 만들어보지만 그 역시 안 먹힌다.
"아빠, 내가 한번 먹여볼까?"
8살 빛이가 묻는다. '아빠도 못 먹여서 지금 쩔쩔매고 있는데 니가 무슨 수로 먹여.'라는 마음의 소리를 빠르게 번역한다.
"아니, 지금은 별이가 잘 안 먹어서 아빠가 먹이는 게 좋을 것 같고, 나중에 잘 먹으면 빛이한테도 기회를 줄게."
그렇게 내가 먹이면 다 먹일 수 있을 것 같이 얘기했지만, 결국 반도 못 먹이고 식사는 끝났다. 빛이가 또 한 번 묻는다.
"아빠, 이거 남은 거 내가 먹여봐도 돼?"
"맘대로 해."
어차피 남긴 거 재미 삼아 연습이라도 해보라는 마음으로 빛이에게 이유식을 넘겼다. 역시나 별이는 빛이의 숟가락에도 고개를 돌린다. 그럼 그렇지.
"아빠, 별이 다 먹었어. 잘 먹는데?"
빛이에게 맡긴 후 씻고 나왔더니 이유식이 진짜 바닥이다. 빛이가 다 먹었나 하는 의심도 살짝 들지만 우선 믿고 다음에 다시 시험해 보기로 한다. 다음 날도 빛이에게 이유식을 맡겼다. 먹이는 모습을 보니 입이 떡 벌어진다.
"자, 우리 별이 치즈 한번 먹어볼까? 이거 치즈야. 치이즈? 아이구 잘 먹네. 자, 또 치이즈! 치즈 싫어? 그럼 이번엔 고구마 한번 먹어볼까? 여기 고구마 있네? 고구우마?"
기가 막히다. 저런 건 가르친 적이 없는데 어디서 배우는 거지? 아무래도 천재를 낳은 것 같다. 영재원 보내야 하나? 하하.
아이들의 능력은 생각보다 뛰어나다. 끝까지 믿고 기다리면 자기 나름의 방법을 잘 찾아간다. 개입하고 싶어도 참고 기다릴 때, 내 예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일들이 벌어진다.
하, 근데 고민이네.
저걸 잘 먹였다고 칭찬해줘야 하나, 아기를 속이고 거짓말했다고 혼을 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