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60 바라보는 오빠가 영어공부가 한창이란다. 얼굴에 화색이 돈다. 배움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중이다. 대화 중 간간이 영어를 섞어서 말하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다. 학창 시절, 그리 열심히 공부한 적 없고, 지적 호기심이 많은 분은 아니었다. 학력도 고졸이다.
등산모임으로 1시간 늦게 합류한 처남, 내 남편이다. 오빠의 대화 속 영어를 장난으로 받아친다. “형님, 영어 발음이 좋은데요?”, “형님, 영어 자주 쓰시네요?”, “영어가 이제 일상이군요!”
개그가 점점 무르익어 수위를 넘실대고 있다. 자칫 부정적 감정으로 흘러 비웃음으로 종결될 수 있어 불안한 시선으로 지켜봤다.
남편은 오빠의 말에서 영어 단어만을 꺼내서 계속 장난을 쳤다. 대화는 남편 때문에 계속 발목이 잡혔고 오빠의 언짢은 감정 빗장은 서서히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드디어 절정에 치닫고 말았다.
오빠 : 난 부모 자식 간에 친구처럼 대화 잘 되는 가정 보면 부러워. 난 아들이랑 커뮤니케이션이 안돼.
나 : 그래 오빠, 아들이랑 가끔씩....
남편 : (잽싸게 끼어들며) 어! 형님 또 영어 쓰시네요? 허허 이거 영어가 정말 일상이네요!
오빠 가족은 서둘러 자리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다음 날 문자가 왔다. 다음부터는 우리 형제들만 보자고.
남편과 대화를 했다. 부글부글 끓는 감정을 억지로 누르며 말했다. 마치 장독에서 둥둥 뜨는 매주를 누르기 위해 매주돌 올려놓은 것처럼.
오빠가 쓰는 영어말꺼내 장난치는 거, 어는 정도에서 멈췄으며 좋았다고. 비웃음으로 흘렀다고. 아들과 대화가 안 돼서 속상한 사람에게, 심지어 부럽다 말하는 사람 얼굴에 오물 한 대야 부어준 꼴이라고. ‘나 형님 이야기 하나도 안 듣고 있어’ 대놓고 공표한 거라고.
남편은 나쁘게 할 의도 1도 아니었다며 해명했다. 그거 안다. 형님을 비웃은 게 아니라 영어공부하시는 모습 멋지게 생각한다며 진지하게 말했다. 그거 안다. 하지만 현실은 이거다. 지금 말하는 그 생각은 티끌만큼도 전달 안 됐다는 것. 버스는 이미 떴다는 것. 떠나는 버스가 흩뿌린 흙먼지만 눈앞에 자욱하는 것. 입 꾹 다물고 실눈 뜨고 바라볼 뿐이라는것.
사람의 마음을 샅샅이 알고 상대할 수는 없다.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고 받을 수 있다. 의도가 있는 발언인지 아닌지 구분도 어려울 수 있다. 남편은 나쁜 의도 없었다. 나는 안다. 그러나 자주 만나지 않고 겨우 명절에나 잠시 얼굴 보는 다른 가족들도 알까? 눈치라는 것도 있지 않나?
(눈치를 감지하는 감각도 퇴화하는지 궁금하다. 그럴 것 같기도 하다. 전두엽의 퇴화일 수도)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공감이다. 남편은 말했다. “당신이 처가 식구들과 있을 때 예민해지니, 난 참석 안 해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