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나러 캐나다 캘거리까지 와준 고마운 제자
대구 수성구에서 한동안 영어 강사로 일한 적이 있다. 그중 유난히 기억에 남는 한 여자아이가 있는데, 그녀의 나이 15세, 내 나이 26세에 만나서 한 해를 매일같이 보곤 했던 그 아이는 정말 영특했다. 그리고 그 아이는 공부에 있어서는 참 똑 부러졌지만 뭐랄까, 일상생활에서는 서투른 점이 많아 늘 한두 번 더 손이 가게 하는 그런 친구였다.
이후 토익 강사로 일을 하게 될 기회가 생겨 그곳을 그만두게 되었다. 유난히 나를 포함한 모든 학원 선생님들을 잘 따랐던 그 아이는, 이후 국내에서 가장 좋은 대학에 진학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려주며 일 년에 한 번쯤은 연락을 주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연락의 빈도는 자연스레 줄게 되었다.
그런데 작년 즈음 무심코 그녀의 메신저 프로필을 보게 되었다. 열다섯 살짜리 꼬맹이였던 그녀가 어느새 대학생 졸업반이 되어 미국 올랜도 디즈니랜드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도 예전에 디즈니 인턴십을 지원한 바가 있어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랜만에 제자에게 먼저 연락을 했고, 우리는 지난날을 반갑게 소회 했다. 플로리다의 올랜도와 앨버타의 캘거리는 꽤나 멀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기회가 되면 놀러 오라는 말을 장난스럽게 주고받고는 대화를 맺었다.
그리고 참으로 고맙게도 그녀는 진짜로, 인턴십이 끝나고 주어지는 몇 달의 자유여행 기간 동안 캘거리를 자신의 여정에 넣었다. 그리고 이틀 전 그녀는 함께 여행하는 남자친구와 함께 무사히 캘거리에 도착했다. 덕분에 나는 새 집에서 난생처음으로 약소한 Bed & Breakfast, 즉 비앤비를 열게 되었다.
북미 동부를 강타한 폭설의 여파로 몇 시간이나 항공기가 지연되어 한밤중에 캘거리에 도착한 그들. 덕분에 우버를 부르는데도 꽤나 애를 먹었던 제자의 얼굴은 조금은 안쓰럽기도 했지만 너무나도 반가웠다. 십 년 전과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아가씨 태가 확 나는 것이 시간의 흐름을 실감하게 했다.
"선생님은 예전이랑 하나도 달라진 게 없어요! 그런데 벌써 결혼도 하고 삼십 대 중반이라니."
"너도 마찬가지야! 마지막으로 본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십 년이 흘렀다니 정말 믿어지지가 않는다니까."
사실 한 가지 마음에 걸렸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우리 집이 거의 텅 비어있었다는 점. 새 집으로 이사 온 지 2주 만에 인도와 한국으로 여행을 떠나야 했던지라 살림살이가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다. 식탁도 2인용 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들이 방문하는 때는 정확히 우리의 귀국 후 10일 만이었다.
시차적응만 해도 시간이 부족했던 판국에 남편과 나는 한 번씩 사이좋게 몸살을 앓았다. 우리는 지금 있는 것들로 최선을 다해서 그들을 맞이하자고 결론을 내렸고, 매트리스를 놓아주고, 손님용 수건 및 슬리퍼 등 급한 것부터 정신없이 주문해서 손님맞이 준비를 시작했다.
다행히 그들은 우리 집에서 약 3일 정도 머무르는 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낸 듯했다. 밥이라도 잘 챙겨주어야겠다는 마음에 3일 동안 최소한 하루 한 끼는 직접 챙겨주었다. 그들은 우리 동네에서 저 멀리 보이는 밴프의 풍경에 감탄하기도 했으며, 다운타운이 내려다 보이는 뷰를 굉장히 좋아했다. 짧은 일정에도 짬을 내어 캘거리 다운타운의 상점가와 캘거리 타워의 전망대, 그리고 레스토랑을 다녀왔다.
하필이면 겨울, 그것도 제일 추울 때인 1월에 북미 동부를 여행하고 있었던 그들. 특히 캘거리에 오기 직전 퀘벡에서 여행했던 그들은 영하 18도의 추위에서 꽤나 힘들었다고 했다. 그런 여정에 우리 집에서 잠시나마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며 재충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면 그저 바랄 게 없었다. 마침 여기는 한동안 내리던 눈이 그쳐 따뜻하고 포근한 날씨였고, 캘거리가 자랑하는 따뜻한 햇빛이 삼일 내내 늘 내리쬐었다.
그리고 어제 아침, 그들은 이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 않고 오로라를 보러 옐로나이프로 향했다. 이십 대의 패기와 체력이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운동화와 어그부츠 차림으로 북극으로 향하려는 그들에게, 우리는 반드시 제대로 된 스노부츠(Snow Boots)를 사가라며 간곡히 호소했다. 다행히 그 충고를 고맙게 받아들인 그들은 캐나다에서 유명한 기념품 중 하나인 컬럼비아 브랜드의 겨울 부츠를 장만하여 떠났다.
사실 제자가 데려온 남자친구의 전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것은 바로 천체물리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이라는 것. 천문학과 우주 덕후인 나에게 그 친구의 첫인상은 뭐, 보지 않고도 합격점을 줄 수 있을 정도였다. (내가 무슨 사윗감 면접을 보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그는 캘거리라는 도시의 규모와 있을 건 다 있는 인프라에 놀라면서도, 토론토나 몬트리올처럼 복잡하고 시끄럽지 않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리고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대한민국 중고교 입시 영어의 특성상 회화는 가르칠 수도 없었고 가르칠 필요도 없었다. 그렇지만 6개월을 디즈니에서 일하며 강도 높은 수련 아닌 수련(?)을 하고 온 제자는 거침없는 프리토킹 실력을 자랑했다. 어렸을 때부터 영특한 아이라고 느꼈지만 그녀의 괄목한 성장은 정말이지 놀라웠다. 해외에서 한 번도 살다 온 적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나 역시 예전 그 아이와 비슷한 경험을 겪었다. 토종 한국인으로 미국에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해서 어떻게든 회화 실력을 갈고닦아야 했다. 어떻게 온 미국인데, 아무런 발전 없이 한국으로 돌아가기란 죽기보다 싫었다. 낯선 환경과 언어의 장벽에, 쉽게 타성에 젖어 아무런 노력을 꾀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다. 절대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았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미국 드라마 대본을 다운로드하여, 교과서에서 절대 가르쳐주지 않는 각종 숙어와 구어, 슬랭(Slang)등을 공부했다. 가끔 무지한 사람들의 시선에, 생각만큼 유창하게 나오지 않는 영어에 주눅이 드는 순간도 있었지만 계속해서 노력했다. 제자 역시 난생처음 머무르게 된 미국에서 비슷한 것들을 깨달았고 우리는 이런 서로의 경험담을 공유하며 예전보다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젊은 친구들의 패기와 에너지를 한 몸에 받게 된 지난 3일이었다. 손님을 받는 입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우리 쪽에서 더욱 즐거웠고 따뜻함을 느꼈다. 남편 역시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한 손님들이라 좋았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의 안녕과 건강을 빌며 헤어졌다.
부디 그들이 옐로나이프에서 아름다운 오로라를 보고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그리고 그동안 조금은 정체되어 있었던 나의 열정에 활기를 불어넣어 준 나의 제자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