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칠 개인에게도 가장 어두웠던 시간, <다키스트 아워>

성공도 실패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계속해나가는 용기다.

by 금파랑

영화: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 2017>

주연: 게리 올드만(Gary Oldman), 감독: 조 라이트(Joe Wright)


Darkest Hour. 직역하자면 가장 어두운 시간. 이 영화는 1940년 5월 9일부터 28일까지의 총 20일의 시간을 그린다. 이 시간대는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한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부터 덩케르크 철수작전(다이나모 작전이라고도 불린다)까지다.


전쟁 초기,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 독일은 파죽지세로 유럽 국가들을 하나하나 무릎 꿇게 했다. 영국과 프랑스를 주축으로 한 연합군의 입장에서는 정말이지 역사적으로 '가장 어두운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이 시간은 윈스턴 처칠 개인에게도 역시 가장 어둡고 암울한 시간이었다. 실제로 처칠은 히틀러에 대한 자신의 통찰이 맞아떨어지기 전까지 많은 비난을 들었다. 정치적으로 한물 간 사람 취급을 받았고, '쓸모없는 늙은 전쟁광'이라며 동료들은 비웃고, 언론은 무시했으며 당에서도 외톨이였다.


처칠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를 "황야의 세월(Wilderness Years)"이라 칭했다. 옳은 말을 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상황. 수상이 된 이후에도 상황은 쉬이 풀리지 않았다. 그의 정적이었던 핼리팩스 외무장관은 히틀러와의 평화 협상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처칠은 핼리팩스의 정치적 책략에 내각에서 완전히 고립될 뻔했다. 영화에서 묘사된 것 이상으로 엄청난 압박을 받았다.


250px-영화_다키스트_아워.jpg
250.jpg
822.jpg
721.jpg
출처: 씨네큐브 '다키스트 아워' (https://www.cinecube.co.kr/cinema/view/836)


어떻게 처칠은 히틀러의 정체를 꿰뚫어 볼 수 있었을까. 모두가 히틀러를 '다룰 수 있다'라며 낙관했던 때에도 말이다. 그것은 단순히 그의 직관에서만 비롯한 것은 아니었다. 처칠은 구체적인 정보 수집을 했다. 독일 내부의 소식통들과 직접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독일의 군비 확장 수치를 독자적으로 분석했다.


또한 그는 히틀러가 쓴 <나의 투쟁>을 읽었다. 완독 했다는 기록은 없지만, 여러 차례 처칠의 연설에서 그 내용을 언급한 것으로 보아 이는 사실로 보인다. 처칠은 <나의 투쟁>을 단순한 허풍 따위로 보지 않고, 히틀러의 실제 로드맵으로 읽었다.


영화에서도 잠깐 묘사되었지만, 처칠은 히틀러를 굉장히 싫어했다. 그것은 단순히 어떤 개인에 대한 호오(好惡)의 감정은 아니었다. 의회를 해산하고 독재 권력을 구축하려는 히틀러는 처칠에게 있어 법치주의의 가장 큰 적이었다.


민주주의의 적, 문명의 파괴자, 그리고 영국과 유럽의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 즉, 처칠의 히틀러에 대한 혐오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깊은 정치적·도덕적 확신에서 나온 것이었다. 처칠은 이런 자에게 협상 따위는 통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When will the lesson be learned?! How many more dictators must be wooed, appeased — Good God, given immense privileges! — before we learn?! You cannot reason with a tiger when your head is in its mouth!"

(얼마나 더 많은 독재자들에게 무릎을 꿇고 비위를 맞추며 모든 걸 털리고 나서야 정신 차릴 거요? 호랑이 아가리 속에 머릴 처박고 어떻게 호랑이와 대화를 해!)


그는 협상 대신 항전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것이 전 세계의 역사를 바꿨다. 가장 어두운 시간을 그저 견뎠다. 자신이 옳다는 확신 하나로 버틴 것이고, 그것을 결국 역사가 증명한 것이다.


20180110000424_0.jpg
914.jpg
1027.jpg
1410.jpg
출처: 씨네큐브 '다키스트 아워' (https://www.cinecube.co.kr/cinema/view/836)


처칠은 사실 장점보다도 단점이 훨씬 많은 사람이다. 영화에서도 언급되는 '갈리폴리 작전'에서는 자신이 주도한 작전이 대참사로 끝나 수만 명의 군인이 사망한다. 이는 처칠의 정치인생 평생에 있어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한다. 게다가 알코올 중독에 가까운 음주량을 자랑했으며, 성격은 괴팍한 다혈질이었고 우울증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칠은 히틀러만큼은 누구보다 정확히 읽었다. 그는 역사를 깊이 공부한 사람이었다. 독서광이자 직접 역사책을 썼고, 이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문학적 소양을 가졌다. 나폴레옹, 로마 제국의 흥망을 꿰고 있었기에 히틀러의 패턴이 선히 보였을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과거의 그릇된 판단과 과오로부터 교훈을 배워, 오늘을 살아가는 나침반으로 삼기 위함이다. 처칠은 이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했고, 몸소 증명해 낸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여러 차례의 전쟁을 직접 경험했다.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지 알면서도 싸워야 할 때를 본능적으로 아는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결정적인 순간에 옳은 판단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방어만 해서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 그것은 싸움이든, 스포츠든, 인생의 중요한 의사결정의 순간에 있어서든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처칠은 당내 여론과 파벌 싸움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기에 자신의 소신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 이는 진정한 지도자란 동료 정치인의 눈치가 아니라, 민중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함을 또한 일깨운다. 처칠의 민주주의관은 실로 꽤나 복잡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는 민주주의의 권위는 결국 민중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었다.




이 영화는 비단 처칠이라는 한 개인에 대한 전기 영화로만 소비되기는 아깝다. <다키스트 아워>는 훌륭한 자기 계발서에 가깝다, 아니 자기 계발 영화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모두가 사탕발린 말만을 하고 싶어 할 때, 아닌 것은 아니라고 밀어붙일 수 있는 뚝심.

옳은 말과 행동을 해도 아무도 믿어 주지 않을 때, 그 판단이 확고한 소신과 혜안에서 비롯한 것이라면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 태도.


과거의 그릇됨을 곱씹어 지혜로 빚어낼 수 있는 성찰.

남의 말에 휩쓸리지 않고, 자주적으로 사유하며 판단을 내릴 줄 아는 생각의 힘.


<다키스트 아워> 그리고 윈스턴 처칠에게서 배울 수 있는 점은 바로 이러한 것이 아닐까.

(물론 영화 내 조지 6세와 클레멘타인이 그에게 충고한 것처럼, 마냥 외골수가 되라는 것은 아니지만.)


<다키스트 아워>는 처칠의 유명한 명언으로 끝을 맺는다. 나 역시 이 글을 그것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Success is not final, failure is not fatal. It is the courage to continue that counts.
-Winston Churchill-
(성공이 최종적인 것은 아니고, 실패는 치명적인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계속해나가는 용기다.
-윈스턴 처칠-)



수, 금 연재
이전 13화가장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