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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심포니 40주년, 베토벤 9번에서 바라본 숙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정기공연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by 이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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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는 창단 40주년을 맞아 ‘새로운 기원’이라는 주제로 2025 시즌을 시작했다. 이런 와중에 지난 2월 2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그 첫 정기공연으로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올렸다. 이는 전통적 형식을 바탕으로 혁신을 이룬 작품으로 인류애와 통합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국립심포니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동시에 드러내는 공연이었다. 특히 과거 음악감독을 역임한 최희준이 지휘를 하였다는 점에서 국립심포니의 정체성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이 곡이 단순한 기념비적 공연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원’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음악적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는지는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1악장이 시작되고 몇 마디 지나지 않아 제1바이올린 파트에서 활의 각도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연주가 이어지면서, 음과 음이 부드럽게 연결되지 않고 이질적으로 들리는 순간이 발생했다. 이는 전체적으로 오케스트라의 조율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의 방증이기도 했다. 현악기의 경우 전반적으로 활의 무게와 보잉 컨트롤이 일관되지 않아 긴 프레이즈에서 음색이 균질하게 유지되지 못했고, 프레이즈 연결에서도 응집력이 부족해 아쉬움이 남았다. 목관군의 호흡과 음정 또한 불안정하여 플루트가 박자를 미세하게 앞서거나 음이탈이 있었고, 트럼펫과 호른도 엠보셔가 흔들리며 고음역에서 음정이 불안했다. 앙상블을 맞춰간다는 관점에서 제시부와 전개부에서는 프레이즈별로 앙상블이 맞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었지만 재현부부터는 오케스트라 전체 응집력은 좋아진 편이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오케스트라 투티가 이어질 때 팀파티가 과할정도로 큰 음량으로 연주하게 되면서 전체적인 균형감을 깨뜨리는 상황이 발생해 아쉬움이 남았다.

2악장은 섬세한 리듬이나 갑작스러운 다이내믹 전환을 부각하지 못했다. 다소 평면적이고 투박한 질주감만 부각된 형태로 곡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국립심포니는 지휘자의 템포 변화에 즉각적으로 반응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클라리넷이 숨을 길게 사용하며 앙상블 타이밍이 미세하게 밀리기도 했고, 바순 역시 지휘자의 템포 변화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호흡 컨트롤이 좋지 않아 음정이 맞지 않긴 했지만 오보에와 호른이 보여준 셈여림의 표현만큼은 인상적이었다. 이 두 악기는 다소 투박하게 몰아붙인 질주감 속에서도 프레이즈에 따라 곡의 감상에 몰입하게 하는 씬스틸러와 같은 역할을 수행해내기도 했다.


tempImageRFpmbX.heic 사진=이강원,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3악장은 오케스트라의 공명과 밀도감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았다. 현악기군의 활 사용이 일관되지 않아 공명감이 전혀 느껴지지 못해 상당히 단조로운 연주가 이어졌다. 또한 비올라와 첼로가 레가토를 펼칠 때 줄과 활의 접촉이 불안정하여 보다 섬세한 연주를 들려주었다면 완성도가 더욱 높아졌을 것이다. 호른은 음정이 지속적으로 흔들리며 전반적으로 음정과 음색이 불안정하여 목관악기와의 앙상블이 조화롭지 않았다. 아쉬움이 묻어나는 여러 상황들 속에서도 다행스러웠던 점은 곡의 후반부로 갈수록 점진적으로 개선되는 연주를 보여줬다는 점이다. 첼로와 콘트라베이스의 피치카토가 연주의 뒷배경을 안정적으로 만들어주는가 하면, 진성과 공명감이 느껴지는 비올라의 연주가 순간적으로 들려오기도 했다.

마지막 악장의 도입부에는 앞선 악장의 주요 주제를 인용하고 거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때론 몇 악기군들이 아티큘레이션을 분명하게 표현하지 않아 때때로 앙상블이 흐트러지는 구간도 있었지만 첼로와 더블베이스가 공명감을 잘 이끌어내었고, 환희의 송가 주제를 표현하는 과정에서도 피아노로 이뤄지는 셈여림 표기를 세밀하게 잘 표현해내 서주 완성도를 높이는데 좋은 역할을 수행해냈다. 이후 네 명의 성악 독창자와 4부 합창단이 가세한다. 이때 국립심포니의 연주에서는 베이스 독창이 이어질 때 클라리넷과 오보에의 연주가 독창을 방해하는 수준으로 음량을 키워냈고, 테너의 독창에서는 호른과 트럼펫의 음정이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피콜로 역시 오케스트라 전체의 질감에서 유독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 오케스트라와 성악이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할 순간에서 아쉬운 요소로 작용했다. 독창자와 합창단 모두 성량 자체는 훌륭한 편이었지만 몇 가지 아쉬움은 남았다. 소프라노 박소영과 메조소프라노 양송미의 경우 대체로 정제된 표현으로 노래하는 반면 테너 국윤종과 베이스 김대영은 다소 격양된 표현으로 노래를 했다. 그래서 남자 성부의 독창이 있는 경우 각각 음정이 맞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합창단의 경우 후반부로 갈수록 응집된 에너지를 발산하여 효과적으로 클래이맥스를 표현하였지만, 가사의 표현을 명료하게 표현하지 않아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해내지 못했다. 음향적 효과와는 별개로 딕션이나 텍스처를 연구하는 과정이 필요해 보였다.


국립심포니는 이번 공연에서 ‘새로운 기원’이라는 시즌 타이틀의 정신을 담아내려는 모습을 보였다. 4악장의 서주에서 첼로와 더블베이스가 환희의 송가 주제를 명확하게 전달해내는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합창단의 응집된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발산해내고, 코다부분에서 오케스트라 전체 연주를 피아니시모로 잠깐 표현하였다가 다시 연주하는 다이내믹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다만 전통성에 기반한 긴밀한 연주, 인간애와 화합의 정신을 전달한다는 관점에서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였다. 관악기의 음정 불안, 현악기군의 활 컨트롤, 성악과 오케스트라의 불균형 등 개선해야 할 부분이 더러 있었다. 이에따라 ‘새로운 기원’으로 나아가기 이해서는 보다 정확한 음악적 비전을 설정하고, 세부적인 기량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일종의 숙제를 남긴 공연이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앞으로 이들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그 변화의 과정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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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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