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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영 Sep 11. 2023

불편한 소식가의 일상

小食 : 음식을 적게 먹음.


말 그대로 보통 사람들보다 먹는 음식의 양이 적은 사람들을 요즘 소식가, 소식좌라고 부른다면, 나는 소식가가 맞다. 밥 한 공기도 거의 다 먹어본 적이 없고, 하루에 세끼는 고사하고 두 끼를 먹는 것도 어느새부터인가 힘들어졌다. 그나마 좋아하는 간식류들은 적당히 먹는 편이지만, 포만감이 가득한 음식들은 젓가락질 여섯일곱 번 만에 힘들어져 누구보다 빨리 식사를 마무리하는 편이다.


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배부른 느낌이 싫다. 위 안에 음식물들이 꽉 차 몸을 답답하고 굼뜨게 만드는 기분이 거북하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정말 컨디션이 좋은 날이 아니면 대부분 적게 먹거나 간단한 쿠키와 초콜릿을 때운다. 이 모습을 본 아빠는 항상 혀를 차며, 밥을 먹어야 한다고 잔소리를 하지만 나도 괴롭다. 먹방 유튜버처럼 치킨을 왕창 쌓아놓고 먹고 싶고,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저녁에 삼겹살을 마음 놓고 먹으면서 부른 배를 손으로 통통 튕기고 싶단 말이다. 그런데, 도통 넘어가질 않는 걸 어쩌란 말인가.


그렇다고 해서 내가 미디어에 나오는 소식가 연예인들처럼 초밥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부르고, 커피 한잔으로 하루 종일 버틸 수 있는 초절식형은 절대 아니다. 그저 보통보다 약간 입이 짧은 정도.


점점 나이를 먹을수록, 사회생활을 하며 억지로 식사를 해야 하는 자리가 생길수록 소식가의 식사는 더욱 괴로워진다. 다들 열심히 음식에 집중하고 있을 때, 이미 수저를 놓고 있는 날 보면서 한 마디씩 거드는데 주목받는 걸 싫어하는 나는 이럴 때마다 괴로울 수밖에 없다.


"그게 다 먹은 거예요?"

"입이 진짜 짧네, 짧아. 그래서 날씬한가 봐."

"왜 더 안 먹어? 다이어트해?"


날씬하지도 않고, 다이어트를 하는 중도 아니라고 말하지만, 다들 관심은 그릇에 남겨진 음식에만 집중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하루 이틀 같이 밥 먹는 것도 아닌데, 매번 점심식사 때마다 내 식사량으로 한 마디씩 나오는 말들이 오히려 입맛을 떨어트렸다.


대체, 왜들 그렇게 남 먹는 거에 관심이 많은 건지.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최대한 많이 먹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일부러 해장국을 시키면 밥을 조금 덜고, 뚜껑은 누가 볼세라 바로 덮어버렸다. 덮밥이나 비빔밥을 먹을 때에도 음식을 얕게 깔아 좀 더 많이 먹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애썼다. 그래야, 세 마디 나올게 두 마디 나오고, 두 마디 나올게 한 마디 나오니깐.


친구들 틈에서도, 가족들 틈에서도 불편하게 만드는 눈치들이 생기니 어쩔 수 없이 혼자서 먹는 게 가장 편하고 행복했다. 그래서 종종 도시락을 싸와 테라스에서 혼자 점심을 먹거나, 카페에 가 스콘과 샌드위치 같은 작은 것들로 식사를 대신한다. 아무 첨언도 없고, 온전히 내게 맞는 정량을 먹을 수 있는 평온함. 가끔씩 찾아오는 자유로운 이 시간이 더없이 좋다. 


그런 불편함을 겪어보았으니, 나도 타인의 식사습관과 개인적인 취향에 대해 왈가불가하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 카레에 있는 당근을 하나하나 빼고 먹더라도 그럴 수 있었고, 족발을 먹을 때 비계 부분을 전부 떼고 살코기만 좋아한다 하더라도 그럴 수 있었다. 한 끼 거른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다 각자 자신의 소신대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중이니 제삼자는 그저 본인 몫의 끼니만 생각하면 됐다. 


자기의 몫을 스스로가 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식탁에서도 생활 속에서도 모두가 존중받기를 원하는 게 큰 욕심일까. 하루하루 무엇을 먹을지 끼니를 걱정하기보다,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는 게 먼저인 일상에서 좀 벗어난다면 나도  함께하는 식사자리가 더 즐겁고 행복할 텐데. 소식가, 채식주의자, 편식가 들도 마음 편히 나만의 음식을 일상처럼 공유하며 먹을 수 있는 날들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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