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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담하는 쏘쏘엄마 Nov 23. 2021

아이와 점검중인 엘리베이터 앞에서 (+인지행동상담)

합리적 정서행동치료_비합리적 신념

아뿔싸.. 또 늦잠이다.

이번 주부터는 어린이집에 절대 늦지 않기로 했는데 시간을 보니 벌써 9시 30분이다.

내 마음은 엄청 급한데 우리 딸은 그렇지 않나 보다... 무슨 옷을 입을지 10분 넘게 고르고 있다.

속이 터진다. 서둘러 옷을 입으라 하고, 밥을 먹고 양치를 하는데 역시 그냥 넘어갈 리 없었다.

너무 기가 막혀 아침에 찍은 사진... 입을 헹구지 않겠다고 실랑이 중.. 누나가 우니 더 크게 따라우는 복댕..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서둘러 나갔다.

10시까지 가야 하는데 9시 55분. 좋았어, 경보로 걸으면 딱 맞춰 가겠다!


그렇게 서둘러 나갔는데 엘리베이터 점검 중이었다. 왜 하필 딱 이 시간인 거지........

양치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급하게 나왔는데 짜증이 치민다.

우리 집은 20층 가까이 되는 고층, 걸어 내려가는 건 어렵다. 아이들과 속절없이 기다릴 수밖에.


마침 안에서 뚝딱뚝딱 소리가 들려서 큰 소리로 언제 끝나냐 물어봤더니 거의 다 했다며 금방 끝난다고 하신다. 5분도 안되어 엘리베이터가 열렸지만 내려가는 길 마음이 엉망이다.

아침부터 양치 문제로 나는 화내고 애는 울고 동생까지 따라 울고... 서둘러 나왔더니 공사 중이고..  늦잠을 잔 거부터가 문제였다며 월요일 아침부터 모든 게 엉망이라고 속으로 투덜대는데 갑자기 아이가 웃는다.


왜 웃지?


그러더니 해맑게 이야기한다.


"엄마 우리 옛날에 엘리베이터 공사할 때 엄마랑 과자랑 주스 먹으면서 앉아서 기다렸잖아~~ 그때 웃겼는데! 재밌었잖아. 오늘은 복댕이랑 또 기다렸네? 근데 과자가 없어서 아쉽다."


아.. 엘베 공사인 걸 보더니 그때가 생각났나 보다.

나는 속으로 투덜대며 기다렸는데, 우리 딸은 즐겁게 기다렸나 보다.


나도 웃음이 나왔다. 그래 그때 재밌었는데.

딸과 그때 일을 회상하며 잠깐 이야기를 나누자 금세 마음이 편안해지고 즐거워졌다. 여전히 마음은 급했지만 이 정도야 뭐, 서두르자 하며 딸의 손을 잡고 엉덩이를 쭉 빼고 빠르게 걸었다.


내 마음처럼 쿵쾅대던 발걸음이 조금씩 가볍고 경쾌해지는 느낌이었다.


생각이 바뀌니 상황은 바뀐 게 없는데도 기분이 좋아졌다.






행복이가 회상하던 그때는 내가 복댕이를 임신했을 때 일이다.

행복이를 하원 시키고 오는 길에 집에서 먹으려고 양파과자와 사과주스를 샀다. 그날은 비가 오고, 덥고, 습했다. 나는 그 당시 일을 마치자마자 서둘러 아이를 데리러 간 거였기에 찝찝하고 피곤했다. 얼른 집에 가서 씻고, 편안하게 앉아 얼음 동동 띄운 주스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싶었다.


 공동 현관문을 열고 엘베를 타려는데 점검 중 표시가 떴다. 지하 3층에 멈춰있길래 행복이와 내려가서 언제 끝나냐고 물었더니 이제 시작해서 30분은 걸린단다. 우리만 올려 보내 주면 안 되냐고 했더니 이미 공사가 시작되어 그건 어렵다고 기다리던가 걸어 올라가야 된다고 했다. 다시 1층으로 올라왔다.


 우리 집이 10층 이하 층이었어도 어떻게든 걸어가 봤을 텐데... 화가 났다. 이놈의 점검은 왜 허구한 날 하는 거야!! 왜 하필 이 타이밍인 거야!! 왜 매번 시간은 안 알려주고 날짜만 알려주는 거야!! 심각한 표정의 내 옆에 양파과자를 꼭 잡고 엄마를 보고 있는 딸아이가 묻는다.


"엄마 왜? 왜? 왜?"


잠시 후, 내 감정과 분위기를 읽었는지 저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빨리 집에 가서 과자 먹고 싶다고 떼를 쓰기 시작한다.  


몸은 무겁고 피곤하고 찝찝하고,

목은 마르고,

에는 떼를 쓰고,

비는 오고.. 걸어올라 가든 여기서 기다리든 해야 한다. 짜증이 치미는 상황 속에서 머리가 지끈 아팠다.


나도 화내고 싶어... 짜증 내고 싶다고...

그때 갑자기 "생각을 바꾸면 감정도 따라 바뀐다"라는 인지행동치료가 떠올랐다.




인지행동치료에서는 스트레스 사건 그 자체가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한다고 보지 않는다. 스트레스 사건에 대한 생각이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것이다.


인지행동치료의 대표적인 이론 중, 합리적 정서행동치료(REBT: Rational Emotive Behavior Therapy)에 의하면 사람들이 느끼는 정서적 혼란과 부적응적인 감정 사건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사건에 대한 지각된 왜곡에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한다. 즉, 현실에 대한 잘못된 지각과 해석이 부정적인 감정과 정신적 어려움을 유발하는 것이다.


이렇게 REBT에서는 사람의 고통은 외부 사건 그 자체에서가 아닌, 사건에 대한 생각(해석) 때문에 일어난다고 보기 때문에 "인지"에의 개입을 강조한다.


REBT에서 제시하는 ABC 이론은 A(선행사건)과  C(결과적 행동, 감정) 사이에는 B(신념, 사고)가 있다고 본다. 심리적 문제는 B가 합리적이지 않고 비합리적일 때 발생한다. 합리적 신념은 현실을 왜곡하지 않고 융통성 있게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래서 REBT 치료에서는 A와 C에 개입하기보다는 원인이 되는 B(신념, 사고)를 논박하며 내담자가 합리적 신념을 가질 수 있게 돕는다. 이를 통해, 내담자 문제 행동감정의 배후에 있는 비합리적인 신념을 극소화시키고, 삶에 대한 생산적이고 유연한 생각으로 바꾸어 정서적 건강과 성숙을 추구한다.



인지행동치료 부모교육의 핵심은 부모가 그들의 비합리적인 신념을 잘 알아차리고, 현실에 적응적이고 합리적으로 수정하여, 심리적 안정감을 갖고, 자녀를 양육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순간 나의 비합리적인 신념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A: 몸은 무겁고, 비가 오고, 덥고, 습하고 찝찝한데 엘리베이터 점검 중이다.

B: 운도 더럽게 없네

C: 짜증 난다, 화난다, 기분 나쁘다.


운도 더럽게 없다고 생각하니까 이 모든 상황이 기분 나쁘고 짜증이 났던 거였다. 운이 없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생각을 바꿔보자


A: 몸은 무겁고, 비가 오고, 덥고, 습하고 찝찝한데 엘리베이터 점검 중이다.

B: 살다 보면 이런 일들 수두룩 빽빽하게 생기는데 뭐,

    급한 일도 없는데 좀 기다리면 어때,

    지금 보니 여기 안이 또 되게 시원하잖아?

    게다가 우리에겐 맛있는 간식도 있어!

C: 감사하다, 쪼금 기대된다, 편안하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의 불편함 속에 화내고 불평하기보다는 유연하고 재미있게 잘 대처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 과정에서 양육자로서 내가 빨리 심리적인 안정감을 되찾아 아이를 잘 돕고 싶었다.


아이는 엄마의 생각, 말, 행동을 있는 그대로 흡수하여 자기의 모습으로 나타내 보일 테니까.


30분이라는 길다면 긴 이 시간을 불평하며 보내기보다는 딸과 함께 재밌는 추억을 만들어봐야지.



"행복아, 지금 엘리베이터 공사 중이라서 우리가 여기서 기다려야 돼. 아까 그 아저씨들이 우리가 타는 엘리베이터를 튼튼하게 고쳐주고 계시거든.  기다리는 건 힘들지만 행복이랑 엄마랑 재밌게 기다려 보려고 하는데, 어때?"


"그래? 집에 빨리 가고 싶은데.. 5분 기다려야 돼?"


"아니 5분보다 더더 많이 길어. 그런데 우리 한 번도 여기서 앉아서 기다려본 적이 없는데.. 뭔가 재밌는 일이 생길 거 같지 않아?!"


"진짜? 나도 나도!! 그럴 거 같아. 나도 여기서 엄마랑 기다릴래!!!"  (애들은 정말 엄마의 감정을 자기 것인 양 스펀지처럼 흡수해버린다.)


엘베 옆 신문이 보였다. 신문지를 깔고 둘이 앉았다.

양파과자를 뜯어 마스크 안으로 누가누가 잘 넣어먹나 게임을 했다. 서로 먹여주기도 했다.

주스 빨대를 마스크 안으로 넣어서 소리 없이 빨아보기도 하고 큰 소리로 빨아봤다. 조용히 노래도 불러보고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들 이야기도 해봤다.


재밌는지 깔깔대며 웃는다.


하나 둘 들어오셨던 이웃분들도 이런 우리를 보시더니 나가지 않으시고 함께 웃고, 노래도 부르고, 이야기도 나눠주셨다.


뭐가 그렇게 할 게 많았는지, 점검은 40분이 걸렸다.


그런데 이 40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웃들과 인사를 나누고 올라가는 엘베 안에서, 행복이가 너무 재밌었고 또 엘리베이터를 건강하게 치료해 준 아저씨들이 고맙다고 했다.


그날부터 행복이는 우리가 앉았던 1층 엘베 옆 그 자리를 볼 때면 웃으면서 그날을 이야기한다.

"우리 그때 여기서 과자도 먹고 주스도 먹고 게임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기다렸잖아~ 엄청 재밌었는데"







아이가 커가며 일상에서 마주할 모든 사건들에 대해 아이가 가질 신념과 태도는 어릴 때 엄마와 함께 했던 수많은 경험으로부터 비롯될 것이다. 아이의 인생에서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이 황금 같은 시기에, 나와 함께 하면서 아이가 유연하고 긍정적인 사고를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참.. 엄마라는 자리는 어렵다.

내 성격대로, 마음대로 막 해댈 수가 없다. 아이가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날 보고 있다.

아이의 세상인 내가 너무 많이 흔들거릴 수도, 휘청거릴 수도, 마음껏 짜증 내고 화내고 불안해할 수도 없다.

엄마가 된 후 부정적인 사건과 감정 앞에서도 좀 더 버텨보고, 견뎌보고, 생각도 바꿔보고, 적응해 본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서 엄마로서의 나뿐 아니라 나라는 사람 그 자체로도 조금씩 성숙해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아이가 짜증 나고 불쾌할 수 있었던 기억을 재밌고 즐거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어 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아침에 양치 문제로 한껏 울고 나왔는데도 점검 중인 엘리베이터를 보며 즐거워하는 순수한 널 보니 내 마음도 풀어진다. 너의 예쁘고 긍정적인 마음이 참 감사하다.



아침에 조용해서 가보니,. 서로의 손을 꼭 잡고 교류중인 아이들


엄마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보물인 행복 복댕아,  


너희가 걸어갈 인생길에서 생각지 못한 장애물을 만날 때,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걸 아는 지혜가 있었으면 좋겠어. 물론 가장 중요한 첫 번째는 내 마음에 대한 충분한 공감이지만, 감정에만 너무 집중하고 오래 머물면 더 힘들어질 수 있거든. 좀 실패하고 좌절스러도 그 감정에만 너무 압도되지 않고 적응적이고 유연하게 생각하며 인생을 살아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


이게 간단한 거 같으면서도 참 어려워..

엄마도 잘 안되면서 아무리 너희한테 "생각을 바꿔볼까? 생각하기 나름이거든"라고 이야기해 봤자 소용없을 거 같아. 이 지혜는 엄마를 통해 너희도 자연스럽게 배우고 갖게 되는 거니까.


그래, 엄마도 너희들을 사랑하고 축복하는 마음으로 오늘에 좀 더 성장해 볼게

너희의 존재만으로도 엄마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해 줘서 고마워, 우리 아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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