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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담하는 쏘쏘엄마 Oct 28. 2021

한파 속 반팔 원피스를 입는다는 아이에게 (+현실치료)

현실치료_선택이론

항상 나보다 먼저 깨는 우리 딸은 아침에 일어나서 이렇게 말한다.


"엄마 행복이 깼어. 엄마도 잘 잤어요?... (꼭 껴안고) 우리 이제 일어날까? 오늘은 뭐 입지?"


그러면 나는 겨우 눈을 떠보고 시간을 확인한 후, 한참 잠긴 목소리로 "응, 행복아 오늘 뭐 입을지 골라볼래?"라고 대답한다.

아이는 신나게 뛰어나가 옷장 앞에 서서 옷장 문을 연다.

"이거는 음.. 아니야, 이건 어제 입었고~~" 하며 신중하게 옷을 고른다.

만 48개월이 다가오는 우리 아이는 이제 제법 계절감에 맞게 옷을 잘 고르는 편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공주 옷이나 원피스 밖에 입지 않지만...............


그래도 1년 전에 비해서 참 많이 컸다.

오늘 자기가 입을 원피스, 팬티, 바지, 양말, 신발, 하고 갈 삔까지 스스로 고르고 만족해하는 아이를 보며 문득 1년 전의 일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지금도 엘사 원피스를 좋아하는 우리 아이는 1년 전에는 월화수목금토일 모두 엘사옷이었다.

심지어 잘 때도 반팔 또는 얇은 긴팔 엘사 원피스를 입고 잤다.


한파주의보가 왔던 어느 겨울날, 아침 일찍 출근한 나에게 남편에게로부터 전화가 왔다. 짜증이 섞인 다급한 목소리였다.


"쏘쏘야 지금 나 빨리 출근해야 되는데, 행복이가 잘 때 입었던 반팔 엘사옷만 입겠다고 엄청 떼를 써. 안된다고 했더니 아예 바닥에 드러누워서 막 울어. 어떻게 해야 되지? 아무리 말해도 안돼."


출근은 해야겠고 딸아이의 고집을 꺾을 순 없고, 그냥 이렇게 입고 갔다간 감기 걸릴까 걱정되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모습의 남편이 그려졌다. 그에게는 긴박한 순간. 도무지 어쩔지 몰라 전화했을 것이다. 나에게 전화해 봤자 또렷한 방법은 없을 걸 알았겠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을 테고 힘든 상황에 대한 공감과 인정이 필요했겠지.


출근도 해야 되는데 참 어렵겠다고, 애 많이 쓴다고 이야기하며 나 역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는데 문득 현실치료의 선택이론이 생각났다. 피식 웃으며 이야기했다.


"어쩔 수 없다. 그냥 그렇게 나가야지 뭐."





현실치료 개인의 선택과 그에 따른 책임감을 강조하는 상담 이론이다.


선택이론이라고도 불리는 현실치료에서는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 자신의 행동을 선택하는지를 설명한다.


우리의 행동을 이끄는 인간의 5가지 기본 욕구는 [사랑과 소속, 힘, 자유, 즐거움, 생존]의 욕구인데, 욕구의 우선순위는 사람마다 다르나 이 5가지 욕구는 유전적으로 타고나기에 모든 사람에게 내재되어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서 사랑과 소속의 욕구보다 자유의 욕구가 더 큰 사람은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기보다는 독신으로서의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것을 선택할 수 있다. 또는 사랑과 소속의 욕구보다 힘의 욕구가 아주 강한 부모는 자녀와의 상호작용에서 오는 정서적 친밀감보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옳은 것을 자녀에게 강요하며 힘으로 꺾으려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치료에서는 욕구를 잘 충족시키는 스스로의 선택뿐 아니라 자신의 선택(행동)에 대한 책임을 강조한다.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더라도 이것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책임 있는 모습으로 이루어져야 건강한 것이다. 엄마의 힘의 욕구 때문에 아이를 무시한다거나 피해를 주면 안 된다.


만약, 내가 선택한 행동이 타인과 조화롭게 내 욕구를 잘 충족시킨다면 행복한 삶을 영위해 나갈 것이고 그렇지 않고 지금 내가 선택해하고 있는 행동이 타인에게도 피해를 끼치고 내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런데 선택은 어렵다.


하다못해 점심을 먹으러 가는 것도 고민이 된다. 나 역시 결정 장애다. 짜장이나 우동? 딱 두 가지 옵션을 제시하고 고르라는데도 고르기가 어렵다. 후회 없이 잘 선택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치료에서는 부모에게 자녀가 어릴 때부터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그 결과를 책임지게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선택이라는 것이 뭐 아주 대단한 건 아니다.

쉽게는 일상에서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고르는 것.

반찬은 무엇을 먹고 싶은지,

옷은 어떤 옷을 입고 싶은지,

오늘 목욕은 누구랑 할지 등등

이렇게 일상을 살아나가며 성장한 아이는 나이에 맞는 선택을 하게 된다.


어릴 때야 인지가 아직 다 발달하지 않았으니 열린 질문을 한다거나 너무 많은 선택지를 두는 것은 좋지 않다. 괜찮은 2~3개의 선택지 안에서 스스로 고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더 좋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제시는 엄마가 하지만 최종 선택은 엄마가 유도하거나 대신해주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어릴 때부터 모든 걸 엄마가 다 해줘서 중고등학생이 되었는데도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너무나도 많이 봤다. 하다못해 공부하는 방법부터 진로까지 엄마가 정해주는 대로 해야 마음이 편하단다. 만약에 그렇게 해서.. 나중에 마음에 안 들면? 그 원망의 대상은 엄마가 된다. 열심히 쌓아놓은 관계가 깨지기도 한다. 대학생 중에서 엄마를 원망하는 아이들도 꽤 만났다. 원망 속에서 헤어 나오질 못한다.



중요한 것은 설사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본인이 해야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고 스스로 책임지고 극복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든 이만하면 괜찮은 선택.. 한 번에 잘하지 못한다.

진로, 취업, 결혼.. 앞으로 성장하며 만나게 될 인생의 결정적 선택들을 잘하기 위해서, 잘 책임지기 위해서 어릴 때부터 연습해 보는 것이다.

안전하고 단단한 부모의 울타리 안, 일상에서 마주하는 작고 사소한 선택들을 통해서..



이것이 그 유명한 자율성을 길러준다는 자기 주도의 시작이며,

또한 현실치료에서 이야기하는 부모 교육의 핵심이다.





밖에는 어제 내린 눈이 꽁꽁 얼어있을 정도였는데 그냥 나가야 된다는 내 말에 남편은 순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더 깊이 생각할 시간이 없는 듯 알았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1시간 뒤, 전화가 왔다.


"쏘쏘야, 행복이 웃겨 죽겠어."


"안 그래도 궁금했는데 어떻게 됐어?"


"아니 하도 떼를 쓰길래, 그럼 그냥 그렇게 입고 나가자 했더니 알겠다고 일어나서 신발을 신더라. 혹시 몰라서 기모 원피스랑 패딩이랑 다 들고나갔지. 근데 공동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갑자기 막 팔짱을 끼더니 '아 추워 아 추워 빨리 옷 입혀줘 빨리빨리!!' 막 이러는 거야. 그래서 앞에 벤치에서 엄청 빨리 급하게 옷을 갈아입었다? 갈아입으면서도 계속 빨리빨리! 그러는 거야. 그래서 완전 다 껴입고 어린이집 잘 갔어. 푸하하"


"ㅋㅋㅋㅋ 그럴 줄 알았어. 이제 추울 때 반팔 입겠다는 소린 안 하겠네"



정답이었다.

그 뒤로는 어떤 일이 있어도 행복이는 추운 날 반팔을 입겠다는 소리는 안 한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지만 이번엔 아빠가 아이를 더 통제하려고 하지 않았고, 아이의 잘못된 선택이라도 존중해 봐주었다. 그리고 아이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결과를 추워서 덜덜 떨면서 책임을 졌다.


물론 이건 잘 해결이 된 경우다.

바로 옷을 입었기에 감기에 걸리지 않았으니까. 감기라도 걸렸으면.. 아후 끔찍하다.

사실 좀 걱정도 되었다.

"괜히 애기 감기 걸리면 어떡해, 애도 힘들고 엄마도 힘든데.."

하지만 요즘과 같이 애매한 날씨였다면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타협을 봤겠지만, 이땐 정말 못 견딜 만큼 추웠기에 어떻게든 옷을 입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이렇게 많은 경우 아이에게 선택을 맡길 때, 부모는 걱정과 염려가 올라온다.  

잘못된 선택을 할까 봐, 그 선택으로 아이가 상처 받을까 봐, 그래서 네가 또 내가 너무 힘들어질까 봐.

그런데 아이가 자기 스스로 한 선택에서는 결과에 상관없이 늘 뭔가를 배운다.


당연히 아이가 아직은 할 수 없는 선택은 엄마가 대신해주는 것이 맞다.

어떤 어린이집을 갈 것인가, 어떤 학원에 갈 것인가는 엄마가 충분히 아이의 성향에 맞게 이것저것 고려해서 선택해 줘야 한다. 아직은 스스로 결정할 능력이 없으니까.


하지만 일상 속에서 수없이 만나는 사소순간들에서는 아이에게 선택권을 줘봐도 괜찮은 거 같다. 그리고.. 설사 그 선택으로 인해서 아이가 조금 더 힘들고 돌아가더라도 그것을 같이 감수해 보는 것 역시 부모의 중요한 역할인 거 같다.

그 추운 겨울날, 벤치 앞에서 같이 추위를 견뎌가며 옷을 입혔던 아빠처럼.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지켜보는 것이 해주는 것보다 더 어렵다.






오늘 아침 옷을 고르는 아이를 보고 1년 전 일이 떠올랐고,  

오늘 하루 으레 익숙하고 당연한 거지만 다시 한번 물어보며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을 강조해 봤다.


어린이집 끝나고 어디 편의점을 갈 것인지,

무슨 간식을 먹을 것인지,

간식을 어디서 먹고 싶은지, 놀이터? 집?

저녁은 무엇을 먹고 싶은지, 볶음밥? 우동?

양치와 샤워는 누구랑 하고 싶은지, 아빠? 엄마? ... 등등 셀 수 없이 많았다.  


선택을 하면 "그래 좋은 생각이다. 이제 행복이가 스스로 선택해 볼 수 있구나."라며 격려해 주었다.

그랬더니 배시시 웃는다.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몇일 전 집 근처 산에 갈 때 들렸던 좀 멀리 있는 편의점을 가고 싶다고 해서 복댕이를 안고 먼 거리를 함께 가주었다. 복댕이 안고 오르막길을 오르며 어깨, 허리, 다리가 아팠다.

아무 말 하지 않았는데 저도 다리가 아프다고 내일은 어린이집 앞에 있는 편의점에 가겠다고 한다.


아이에게 선택과 책임을 가르치며, 나 역시 힘들어도 그 책임을 함께 져 준다.  엄마니까.

엄마이기 때문에 아이가 겪는 시행착오를 좀 함께 해봐도 괜찮은 거 같다.

너무.. 무리가 아닌 내가 가능한 선에서.

(사실.. 오늘 산 근처에 있는 편의점을 가는 건 바로 후회했다. 내가 오버했다며..)



이렇게 아이도 엄마도 매일 수많은 선택 속에서 함께 자라난다.

아직은 내 든든한 울타리 안에 있는 내 아이.

내 아이가 이 울타리 안에서는 마음껏 선택하고 책임져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응원하고 싶다.

내 울타리 밖에 나가는 순간 현실이 더 녹록지 않을 것을 알기에

모든 순간 대신해 주고 싶은 내 마음을 살짝 내려놓아본다.


내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가 설계한 행복 말고 네가 스스로 찾아가는 너만의 행복.  

선택이 어렵지 않은 아이로 자라났으면 좋겠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그럭저럭 괜찮은 선택을 해보고, 그 속에서 책임을 질 수 있는 아이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딸아, 엄마가 너를 정말 많이 사랑한다는 거 알지? 그리고 또 믿는다는 것도.  

네가 앞으로 해나갈 어떤 선택이든지 너를 응원하고 기꺼이 너의 편에 서줄 테니 자신감 있게, 행복하게, 너에게 맞는  모습으로 성장해 나가길. 오늘도 엄마는 기도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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