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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담하는 쏘쏘엄마 Oct 01. 2021

내 아이가 초라하게 느껴질 때 (+경험적 가족상담)

경험적 가족상담_재정의


부모로서, 나는 우리 아이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내가 생각하기에 괜찮은 모습은 그 누구보다도 더 지지하고 칭찬할 수 있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며 유독, 부모인 내 눈에 거슬리고, 좌절되고, 심지어 내 아이가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는 상황은 언제든 일어다. 이때, 도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일까.


순간일지라도 내 아이가 초라해 보일 때..  이것은 나의 어린 시절 상처와 연관되어 있을 수도 있고, 아이의 변하지 않는 고집스러운 어떤 모습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러한 모습들은 부모인 내 눈에 속상하게 담길 뿐 아니라, 내 마음도 어딘가 초라해지게 만든다.






고백하자면, 나에게도 내 딸이 초라해 보이는 순간이 있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 5살 딸은 집 안에서는 활발한 수다쟁이지만, 밖에서는 굉장히 수줍어하긴장을 많이 한다.



어린이집 적응만 2년, 아빠도 오랜만에 보면 낯설어해서 시간이 필요한 아이다.

누구든 딸을 향해 아주 반갑게 인사를 해도 대꾸는커녕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늘 나에게 얘기했던 좋아하는 친구에게조차도.  누가 말을 걸면 어깨를 씰룩 올리고, 인상을 쓰고, 고개를 숙이며, 부끄럽단 걸 온몸으로 표현한다.



솔직히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볼 때면 내 마음이 어렵고 불편했다.



어린이집 하원 후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같이  때면

다른 아이들은 신나게 미끄럼틀도 타고, 달리며 신나게 노는데 엄마 옆에 꼭 붙어 간식만 먹는 내 아이를 보는 것이 편치 않았다.


어쩌다 친구들 무리에 들어가서 놀고 있는 우리 아이를 볼 때면

저도 놀고 싶지만 가만히 친구들만 관찰하고 있는 그 모습을

내 눈으로 담아내는 게 사실 엄마로서 괜찮지 않았다.

어딘가 소외되고 초라해 보였다.


그나마 마음에 여유가 있는 날엔 괜찮았지만, 그렇지 못한 날은 아이의 이런 모습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


 걱정되는 마음에  

"가서 놀아봐, 미끄럼틀도 좀 타봐, 어른이 인사하면 같이 인사해야지, 친구가 놀자 하면 싫든 좋든 대답을 해야지!"라고 다그치면 아이는 집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 그런 날은 기분도, 컨디션도 별로다.



이러한 날들이 반복되던 어느 날, 놀이터에만 가면 조급해지고 미리 걱정하고 있는 내가 보였다.

점점 더 엄마 옆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집에 가자 고만하는 내 아이가 보였다.  



아.. 내가 지금 내 아이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지?



심장이 땅으로 꺼지는 느낌이었다.


내 아이가 타고난 기질과 감각. 성향.

이 모든 게 이 아이만의 특별함이고 고유한 매력인데 내 눈에 불편하다는 이유로 바꾸고 싶어 했다.

내 눈에 우리 아이가 즐겁고 행복해 보였으면 좋겠는데 그러지 않아 보여서 불안했다.

말로 뱉지 않았을 뿐, 은근히 다른 활발한 아이와 비교하며 너도 좀 저렇게 놀아봐 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비교하평가하고 있었다.

너의 모습을 바꿔줘야 할 어떤 것들로 바라보았다.



아이가 나의 이런 시선을 본능적으로 빨아들이고 있었다는 것을, 내 눈치를 살피는 아이를 보니 알 수 있었다.


정말이지 눈물이 날 만큼 미안해졌다.


지금 내가 이 아이를 바라보는 관점으로, 이 아이는 앞으로 자기를 바라보며 살게 될 터인데.


사실 가장 초라한 것은 내 아이가 아니라 내 마음이었다.  

내가 이렇게 부족하고 부족한 엄마였다.



말로는 너의 어떠한 모습이라도 사랑한다고 고백해놓고, 사실은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모습으로 너를 바꾸고 싶었던 내 마음에 솔직하게 직면했다. 너의 어떤 모습을 불편하게 여기고, 눈빛과 목소리로 비난하고, 바꾸려고 했다.



바뀌어야 하는 것은 네가 아니라 나여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재정의 기법(reframing)"은 가족 상담 이론 중 사티어의 경험적 가족 상담 이론에서 사용되는 기법이다.


 가족 안에서 발생하는 경험을 강조하는 경험적 가족 상담에서는 내담자 문제의 원인을 경직되고 비합리적인 가족규칙, 가족 내의 의사소통의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 낮은 자기 존중감에서 찾았다. 그렇기에 내담자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가족 내에서의 직접적이고 명확한 의사소통, 융통성 있고 합리적인 가족규칙, 그리고 가족 구성원들의  건강한 자기 존중감(자존감)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중 경험적 가족치료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핵심은 자기 존중감이다.



자기 존중감(자존감)이란 무엇일까?



자존감은 자신에 대한 개인의 가치 판단으로 자신의 사고, 가치관, 행동 등 모든 것에 굉장한 영향을 미친다. 자존감은 자기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 인정, 그리고 성공적인 경험에 의해서 형성된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주로 초기 부모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발달된다.  부모가 아이를 가치 있고 중요하게 여긴다고 느낄 때 아이의 자존감은 높아지지만, 부모가 아이를 열등하다고 평가할 때 아이의 자존감은 낮아진다.


즉, 어릴수록 부모가 아이를 바라보는 관점과 시선이 아이의 평생에 강력한 영향을 미칠 자존감을 형성하는 초석인 것이다.



경험적 가족 상담에서는 자아존중감을 높이기 위한 하나의 기법으로 "재정의" 기법을 활용한다.


재정의라는 것은 reframing으로 프레임을 다시 씌운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경험적 가족치료에서는 문제를 재정의 함으로써 문제의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문제를 재구성한다. 가족치료 실제에서 쓰이는 재정의 기법은 내담자 문제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며 상황에 대해 다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를 통해, 가족들로 하여금 문제에 대한 의미와 가치 판단을 변화시킨다.


언어에는 강력한 힘이 있다. 가족들의 언어를 통해 문제의 긍정적인 측면을 재정의함으로써, 새로운 프레임이 씌워진다. 그것은 문제를 보는 관점에의 전환을 불러일으키고 궁극적으로 서로의 자존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아, 내가 생각하기에 초라했던 내 아이의 모습들을 재정의 하자.


노트와 펜을 집어 들었다.



부끄러워한다 대신에 신중하다.

숨는다 대신에 조심성이 많다.

어울리지 못한다 대신에 놀이를 관찰하고 있다.

장난감을 잘 뺏긴다 대신에 배려가 많다.

인사를 못한다 대신에 시간이 걸리지만 인사를 하려고 노력한다.



.... 계속 계속 써 내려가 봤다.  




그러자, 우리 아이는 신중하고, 조심성이 많고, 관찰하기를 좋아하고, 배려가 많은, 시간을 걸려도 노력하는 아이가 되었다. 내가 문제시했던 아이의 모습이 이만하면 괜찮은 장점이 되었다.



내 관점의 변화가 일자 점점 내 마음이 조급하지 않고 여유로워졌다.

불안해지지 않고 넉넉해졌다.

시선으로 아이를 바라보니, 아이도 점차 편해짐을 느꼈다.



그렇게 몇 주, 몇 달이 지난 지금 아이는 여전히 조심성이 많지만

이제 엄마 없이 혼자서 미끄럼틀을 타러 올라갈 수 있다.

여전히 큰 목소리를 내진 않지만, 작은 목소리로 용기를 내서 인사를 해볼 수 있다.

여전히 주도적으로 놀이를 이끌어내진 않지만, 친구들에게 맞춰 배려하며 놀 수 있다.

여전히 바라볼 때가 많긴 하지만, 싱글벙글 웃는 모습이 더 많이 보인다.


이 모든 과정에서 아이가 자신 있어하는 모습이 더 보인다.

그럴 때면 "엄마 나 잘했죠?" 하며 칭찬받고 싶어 한다.



내가 너의 모습을 재정의함으로써, 너를 바라보는 내 시선과 관점이 변했다.

이만하면 너무나도 충분히 잘 해내고 있는 너에게 고맙다.

부족한 엄마 마음에 여전히 걱정이 찾아올 때도 있지만, 그래도 너는 잘해나갈 것임을 믿는다.


그리고 엄마 아빠의 사랑과 고마움, 믿음을 충만하게 받은 네가 얼마나 멋지게 성장해 나갈지 기대된다.







사실, 재정의는 그 누구보다 나에게 필요하다.



나는 실수가 많은 사람이다. 대신 그만큼 타인의 실수에도 너그러운 사람이다.

나는 상처를 잘 받는 개복치 같은 사람이다. 대신 그만큼 타인의 기분을 잘 살피고 배려하는 사람이다.

나는 좀 우유부단하다. 대신 그만큼 신중하며 상대를 배려하는 사람이다.

내가 비록.. 내 욕심에 아이에 대해 불안해하고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뀌길 원했지만, 대신 그만큼 누구보다도 내 아이가 행복하길 바라는 평범한 엄마이다.



나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를 통해 나도 나 자신을 조금 더 넉넉하게 바라봐 주고 싶다.



비록 내가 원하는 내 모습에서 조금 부족하고 비어 보일지라도, 그 모습조차 나의 괜찮은 모습으로 찾아내어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나 자신을 격려하고 존중해 주고 싶다.



그리고 이 힘으로 존재만으로도 반짝이는 내 아이들의 보석 같은 면들을 알아봐 주는, 지금 너의 어떤 모습도 충분히 괜찮다고 여겨주는, 그래서 우리 아이들의 인생의 과정에 단단한 자존감의 초석을 잘 놓아주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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