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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담하는 쏘쏘엄마 Sep 19. 2022

아이가 엄마에게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린 날에

정서적 조율, 조율하는 엄마


상담에서 이야기하는 충분히 좋은 양육자는 아이에게 잘 조율하는 엄마라고 한다.


조율한다는 것은 아이의 마음에 코드를 맞춘다는 것으로, 아이의 정서와 욕구를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너무 부족하지도 너무 과하지도 않게 (공감적) 개입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조율이 부족하여 아이의 정서를 민감하게 캐치하지 못하고,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엄마의 아이는 자기 내면과 대인관계적 환경 내에서 응집력 있게 자기를 믿고 발전시켜 나가기가 어렵다. 반면, 조율이 너무 과도하여 아이의 정서를 너무 과하게 공감하고 개입하는 엄마는, 아이의 정서발달을 저해한다. 아이가 느끼고 해결해야 하는 것을 엄마가 해버리니까.



그렇다. 공감적인 개입은 부족해서도 안 되지만 과한 것도 아이에게 좋지만은 않다. 

부족하지도 않고 과하지도 않기라..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항상 그 균형이 어렵다.



개인적으로 조율을 잘하는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아이가 엄마에게 보내는 크고 작은 신호들을 잘 캐치할 수 있어야 되는 것 같다.


한 번, 두 번, 세 번.. 당연히 엄마도 사람인지라 놓칠 순 있어도,

반복적으로 아이가 보내는 신호가 있다면 엄마는 어떻게든 그것을 잡고 조율해 보는 자리로 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안다. 너무 잘 안다.

그런데 막상 현실에서 아이들과 살아 나갈 때면..... 참 어렵다.






극까다로운 기질인 우리 사랑스러운 둘째 아드님은 11개월이 되던 달부터 어린이집에 갔다.

(왜 극까다로운 기질이라고 이름을 붙이냐면, 어떤 변화든 저항이 심하고, 규칙이 잘 잡히지 않으며, 불편감을 아주 격렬하고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모습들이 일상 곳곳에서 발견되기에 ...........ㅎㅎ 이게 문제행동이라기보다는 기질적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만큼 눈치도 행동도 빠릿빠릿했고, 아기임에도 자기 앞가림을 너무 잘하는 것처럼 보였기도 했고..

적응에 시간은 걸리겠지만.. 결국 어린이집에 가면 잘 적응할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나의 합리화였을 수도 있었겠다.


여하튼 행복이는 23개월을 집에서 나와 붙어있었는데, 복댕이는 엄마가 바쁘다는 이유로 비교적 빨리 단체 생활에 들어간 거니까.

당연히 기질적 특성이 워낙 뚜렷한 아이라, 하나하나가 다 고비였다.

어린이집에 들어가는 것, 선생님에게 안겨있는 것에서 내려가는 것, 앉아서 친구와 활동하는 것, 기저귀 가는 것, 턱받이 하는 것, 밥 먹는 것 등등.. 이 모든 것 하나하나에 적응하기까지도 꽤나 긴 시간이 걸렸다.


덕분에 어린이집을 보냈더라도, 6월까진 낮잠은커녕 점심도 먹기 전에 집에 오기 일쑤였다.

점심을 충분히 먹지 않은 날은 더 격렬하게 울어댔기에, 수업 중간에도 아이를 데리러 갔다.

나는 그렇게 아이를 안고 수업을 듣고, 강의 준비를 하고,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시간은 흘러 드디어 7월. 단유도 했다, 밥도 잘 먹는다, 활동도 잘한다.

이제 낮잠도 잘 잘 수 있을 거라 여기고, 선생님과 함께 팀이 되어 복댕이 낮잠 자기에 돌입했다.


돌이켜보면 그때부터였다. 아이가 밤마다 수도 없이 깨고 고성을 지르고, 한 번 깨면 머리를 박고 새벽 내내 울기 시작했다.

그 순간에는 왜 그런지 몰랐다. 단유도 잘 끝났고, 이미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아이가 왜 이렇게 계속 깰까.

각성의 문제일까, 무엇이 문제일까.  

어린이집에서도 30~40분을 울다 지쳐서 잠든다고 했지만, 그래도 결국 상황에 잘 맞춰 적응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밤마다 깨는 모습은 줄지 않았고, 어린이집에서도 여전히 낮잠 자기를 힘들어했으며, 아이가 점점 산만한 모습이 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8월 중순, 휴가를 보내러 친정에 간 날,

엄마와 붙어있는 아이가 안정되는 모습 속에서, 엄마와 자는 아이가 고성을 지르지 않는 것을 보면서

말로 못 하는 아이가 내게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었음을,

내가 바쁘다는 이유로 제대로 보지 않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미안했다.

아이의 마음에 조율하지 못하고, 계속 알아서 적응을 좀 해줘라는 마음으로 믿는다는 핑계로 이 어린아이를 너무 힘든 지경까지 내 몰았던 것이 아닐까, 자책도 되었다.

물론 이렇게 잘 적응하는 아이도 있겠지만, 어쩌면 복댕이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까다로운 기질이라 해서 다 같은 것도 아니고.. 그럼에도 잘 적응하는 아이가 있는 반면, 못하는 아이도 있는 거니까.



전제를 달리했다.

"엄마, 아빠가 일을 해야 되니까" "엄마가 공부를 해야 되니까" "아이가 맞춰주길 바란다"라는 전제에서

"아이가 잠은 집에서 잔다"라는 전제로 시작했다.

당연히 엄마든 아빠든 둘 다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포기와 희생은 할 수밖에 없겠지.


지금 현실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것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복댕이가 앞으로 어린이집을 아예 다니지 않을 것이 아니므로, 12시 하원을 하기로 했다.

하루 2시간만 가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12시에 하원해서 엄마와 함께 잘 수 있게 했다.

나는 듣고 싶던 수업도, 하고 싶던 일들도, 계획했던 것들도 어느 정도 잠깐은 내려둬야 할 터였지만, 그래도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남편도 많은 생각이 들었는지, 기꺼이 올해 자기가 휴직을 해보겠다고 하고 휴직계를 냈다.

처리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 시간 동안은 최대한 내가, 그래도 내가 뺄 수 없는 수업이나 고정 강의가 있는 날이면 친정엄마가 그 시간을 함께해 주기로 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삼일..

우리 둘째 아기는 밤에 깨지 않는다.

낮에도 집에서 폭 잔다.

누가 봐도 훨씬 안정되고 즐거운 모습으로 하루를 보낸다.


어떻게 이렇게 바로 변할 수 있을까.

정말 놀랍다.

결국 양육자의 변화는 아이의 변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오늘도 삶에서 실감해 낸다.


문제라고 보이는 행동도, 결국 아이가 보내는 신호일 테니까 말이다.

결국 변화의 시작은 엄마가 되는 것이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참 많은 엄마다.

공부도, 일도, 강의도, 글도.. 잘하고 싶고 해낼 때 즐겁다.


그런데 엄마의 많은 역할 중엔 "포기하는 것도 연습해 보기"도 있는 것 같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선택에서 이처럼 아이를 위해, 가족을 위해 포기하는 선택을 하게 될까.


"엄마라도 자기 삶이, 행복이 더 먼저야!" 하는 말들은 사실 나에게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아이가 보내는 신호들을 무시하거나 포기할 수가 없으니까. 아이가 어릴수록 더 하겠지만 말이다.


엄마는 참 어려운 자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한 건 모든 엄마는 크고 작은 희생들을 하고 있으며, 그 자리에서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일 거다.

누가 감히 이 모든 과정에, 이 노력에 시시비비를 따지고 쉽게 평가할 수 있을까. 


엄마가 되어보니 알겠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이 격려받고 싶고, 위로받고 싶다는 걸.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응원받고 싶다는 걸.

모호하고 불확실한 시간 속에, 괜찮은 정답에 의지하고 싶은 유혹이 생기는 것 역시 자연스럽다는 걸.


이번에도 내가, 우리가 내린 답이 정답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히려 조금 더 기다렸으면 아이가 안정을 찾고 적응해 냈을까?

아무도 모른다.

물론 6살 행복이었다면, 좀 더 기다림으로 반응했겠지만..

잘 조율하기 위해서는 발달도, 연령도, 상황도.. 고려할 게 참 많다.


그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아이의 마음에 코드를 맞춰 조율해 보려고 노력하고 애써보는 것. 이것이 나의 최선이고, 이 최선의 시도에 어떤 모양이든 아이는 응답해 준다.


공감이 필요할 땐 공감으로,

훈육이 필요할 땐 훈육으로,

기다림이 필요할 땐 기다림으로,

이번처럼 개입이 필요할 땐 개입으로..


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잘 알아차리고, 민감하게 조율하는 엄마이고 싶다.

이것이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해내고, 뭐든 잘하고 똑똑한 엄마가 되는 일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이라는 걸 믿기에.




갈등 없이 성장할 수 있는 길은 없나 보다.

그래도 내가 존경하는 위니코트님이 이런 말을 남겼지 않는가.

마지막으로 다시금 마음에 새기며, 나를 그리고 모든 엄마를 응원한다.






엄마를 세심하게 만들어주고
자신의 판단에 의심을 갖게 해주는 건
죄책감인 것 같습니다.

만약 우리가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면,
죄책감을 느끼는 엄마를 고르는 것이 더 낫습니다.
어쨌든 책임감을 느끼고,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엄마를요.

문제가 생기면 모든 핑계를 즉시 외부로 돌리고,
지난밤 폭풍우 때문이라는 둥 외부 현상을 탓하면서
어떤 것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엄마보다는 말입니다.

양극단이긴 하지만 둘 중에서
책임감을 강하게 느끼는 엄마가
우리에게는 더 좋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충분히 좋은 엄마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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