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에 대한 생각 4.
나는 사실 자취를 하고 있어서 댕이와 같이 살고 있지는 않다. 댕이가 우리 가족이 되기 한참 전부터 따로 나와 살았으니 나는 댕이와 365일 함께 지내본 적은 없는 셈이다. 이런 나를 반려인이 아니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쫌 자존심이 상하는데... 반박할 근거를 들자면 내 자취방에는 언제나 댕이의 물건들이 구비되어 있다. 매주 댕이를 데려와서 자기 때문이다. 부모님 댁에는 내 방이 없으니 가서 자고 오긴 불편하고, 댕이와 온전히 보내는 하루를 포기하고 싶진 않아서 굳어진 우리 집 규칙이다. 휴일이 불규칙한 터라 매주 부모님께 연락하여 댕이 픽업 일정을 잡고, 데려와서 하루를 보낸 뒤에는 다시 부모님 댁에다 반납한다.
이런 규칙이 굳어지는 사이 나는 집을 세 번 옮겼다. 인생의 분기점을 몇 번 지나며 사는 지역도 달라졌다. 한편 부모님도 이사를 한 번 했고 곧 한 번을 더 앞두고 있다. 그러니 댕이는 꽤 많은 이사를 겪었다.
우리 집 이사야 사실 일주일에 한 번씩 오는 곳이기에 댕이에게 큰 일은 아니었을 테지만 부모님의 이사는 그야말로 댕이 견생일대의 사건이었다. 그전에 살던 집은 댕이가 처음 우리 가족이 되었던 뽀시래기 털뭉치 시절부터 어엿한 성견이 될 때까지 자란 곳이었는데 어느 날 하루아침에 낯선 곳으로 뚝 떨어지니 댕이에겐 적응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설명해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개에겐 이사란 개념이 없으니 새로 옮긴 곳이 제 집이라는 것을 곧장 알 수는 없는 것이다. 가족들이 낯선 곳에 저를 두고 갔다고 생각하는지 분리불안도 없었던 댕이가 부모님이 출근을 하고 나면 저녁까지 내리 짖었다. 소식을 전해 들은 나도 너무 걱정이 되어 훈련사를 알아보고 있었는데, 한 주가 지났을 때 돌연 짖기를 멈췄다고 했다. 이제 여기가 집이고 가족들이 퇴근하면 이곳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효자 강아지다.
한편 내 자취방 이사 때 댕이의 반응도 웃기다. 내가 자취방에 댕이를 데리고 올 때는 혼자 두는 일이 없기 때문에 분리불안이 생길 일은 없지만 제가 알던 곳으로 가는 줄 알고 따라나섰다가 처음 보는 집으로 들어선 댕이는 척 봐도 꽤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일단 건물에 들어설 때부터 목을 잔뜩 빼고는 냄새를 맡느라 코를 멈추지 않는다. 집안에 들어와서도 한창 긴장한 걸음걸이로 목을 쭉 빼고는 곳곳을 점검한다. 무엇보다도 잘 때 옆으로 누워서 자는 댕이가 이사를 하고 몇 번 우리 집에 오기까지는 절대 배를 드러나지 않고 엎드려서 자는데,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웃기다. 제 까짓게 경계해 봤자 뭘 한다고.
그러다 몇 번의 방문을 끝에 어느 날 댕이가 느릿느릿 몸을 굴려 옆으로 드러눕고 나면 나도 그제야 마음을 놓는다. 댕이에게 안전을 비로소 인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