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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근네모 Jun 23. 2024

대출금 갚으려고 조개를 줍다 보면

오랜만에 새로운 게임을 하려니

 디아블로 2라고, 어릴 때 열심히 했던 RPG 게임이 있다. 몬스터를 잡고 퀘스트를 깨며 내 캐릭터를 키우는 게임이다. 얼마 전 추억 삼아 PC방에서 한 번 해봤는데 여전히 재미있었다. 그러다 새로 나왔다는(실제로는 오래됐고 내 입장에서 새로 나온) 디아블로 4도 한 번 플레이해 봤다. 이것도 역시나 재미있어서 요즘은 매일 퇴근 후 남편과 PC방으로 달려갔다가 자정에야 기어 나오는 게 일상이 되었다.


 오랜만에 새로운 게임을 하려니 공부할 것이 많았다. 게임을 전혀 안 하는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인데 게임을 하려면 생각보다 알아야 할 게 많다. 기본적인 조작법은 물론이고 전반적인 세계관과 스토리, 시스템, 공략법, 나아가 최신 동향까지 어느 정도 알아둬야 한다. 어떤 게임이든 마찬가지다. 예전에 오버워치라는 게임을 한창 열심히 할 때는 매번 패치 때마다 달라진 부분을 일일이 체크하곤 했었다. 팀을 이뤄서 하는 게임이라 그 정도는 해야 팀에 누를 끼치지 않고 원활히 참여할 수가 있다.


 지금 하는 디아블로 4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너무 오랜만에 하는 RPG 게임이다 보니 배워야 할 것이 많았다. 아이템은 보통 어떻게 세팅하는지, 스킬트리는 뭐가 좋은지, 이 재료는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서 시간 날 때마다 유튜브를 들여다보면서 공부를 했다. 그러다 나중에는 게임 한 번 하는데 이렇게 품을 들일 일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이 들었다. 게임은 즐겁자고 하는 건데 이렇게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는 게 맞나.


 생각해 보면 언제나 그런 식인 것 같다. 동물의 숲이라는 힐링 게임을 할 때도 평화롭게 동물 친구들과 소통하고 집을 꾸미면 되는 건데 그걸 기깔나게 해 보겠다고 욕심을 내다보니 얼른 대출금 갚고 집 평수를 확장하기에 급급해서 해변에서 조개 씨가 마르도록 종일 조개를 줍고 다녔다. 어차피 즐겁자고 하는 게임인데 뭘 그렇게 열을 올렸을까. 오버워치도 마찬가지다. 프로게이머로 데뷔할 것도 아닌데 그렇게 점수에 목숨을 걸 이유가 뭐가 있었을까. 그런다고 더 잘하는 것도 아닌데.


 생각해 보면, 인생도 그런 것 같다. 인생도 결국 즐겁자고 사는 것 아닌가. 행복하려고 사는 게 인생인데 너무 잘하려고 욕심을 내니까 스트레스가 생기는 것 같다. 잘 먹고 잘 자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게 결국 인생의 메인 콘텐츠(?)인데, 경쟁적으로 임하다 보니 본말이 전도되어 본래 목적을 잃고 스트레스만 쌓이는 것이다.


 동물의 숲은 대출금 갚는 것이 아니라 동물 친구들과 노는 것이 메인 콘텐츠다. 오버워치도 결국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재밌게 노는 것이 목적이다. 승부욕을 불태우는 것도 플레이에 재미를 더하는 방법일 수는 있겠지만 너무 지나치면 화만 쌓인다. 디아블로도 그렇다. 스토리를 진행하고 내 캐릭터를 점점 성장시키는 데서 재미를 찾아야지 완벽하게 스펙을 쌓은 최강 캐릭터를 만들려고 하다 보면 막힐 때 열불만 난다. 게임이든 인생이든 너무 몰입하다 보면 원래 목적을 잊기 쉽다. 한 번씩 고개를 들고 이걸 시작한 원래 목적이 뭐였는가 생각해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게임을 하다가 갑자기 너무 현자가 된 것 같은데, 아무튼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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