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육남이 Jun 03. 2024

누구에게나 시작은 무섭다

이제 다시 시계를 돌려 저희 부부의 인생 최대의 쇼핑 ‘자가 마련’ 하는 이벤트로 시간으로 되돌아 가보겠습니다. ‘대출은 나쁜 거야.’ ‘빚지면서 살면 안 돼.’라는 말을 30년 넘게 듣고 자라온 저와 제 아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집은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놈의 결단이 정말 안 서더라고요.  고기 한번도 못 먹어본 놈이 고기 맛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살살 녹는 살치살의 맛을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여하튼 일단 가용할 수 있는 자금을 최대한 모아봤습니다. 당시 영혼까지 끌어모았을 때 9천만 원이 조금이 안되는 돈이 저희 수중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세상 물정을 아무리 모르는 저희도 1억도 안되는 돈으로는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굉장히 좁겠다'라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게됩니다.


누군가 직주근접이 최고라고 해서 직장 주변에 있는 아파트부터 하나씩 손품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가용 자금에 맞추다 보니 선택지는 당연히 한정 됐고, 심지어 직장에서 조금씩 많이 많이 밀려나기 시작합니다. 저희 직장은 서울에 위치하고 있는데, 그놈의 돈 덕분에 서울에서 타 자치구로 이동을 하고 경기도로 이동하고 이제 저멀리 서남부까지 닫게됩니다. 돈이 없는데 별 수 있나요.

 

과정 생략하고 종국에는 저희는 자가 마련의 최종 후보군에 ‘경기도 안산시’를 올려놓게 됩니다. '아무도 안 산다는 안산'이라는 말도 있는 웃픈 지역입니다. 해당 후보지를 선택한 이유는 저희가 고려한 몇가지 사항에 어느 정도 부합했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교통의 편의성, 매매가, 발전 가능성 정도를 고려했었거든요.


일단 직장에서 다닐 수 있을 만한 거리였습니다. 지하철 4호선과 2호선을 이용한다면 집에서 회사까지 1시간 반 정도 그리고 차량을 이용할 경우 아침 기준 1시간 조금 넘는 정도면 통근이 가능한 거리였기에 괜찮은 조건이라고 봤습니다.


또 다른 중요 사항은 집값이었습니다. (사실 가장 중요했습니다.) 기존에 갖고 있었던 현금에 추가로 무리하게 대출을 받는다 하더라도 서울 아파트를 구하기는 쉽지는 않았습니다. 마음에 드는 아파트는 매매가가 장난 아니더라고요.


나름 서울에서 30년 지난 구축 주공 아파트에서 전세로 지내다보니 나름의 불편한 점도 있었습니다. 필터를 설치해도 누런 녹물이 나와 거주 내내 찝찝한 기분을 떨치기 힘들었던 점과 더불어 주차난이 정말 극심했거든요. 늦은 밤에 퇴근하면 주차자리가 없어서 계속 뺑뺑 도는 그런 상황이요. (덕분에 주차실력은 일취월장했습니다.)


누구나 원하는 서울이라는 곳에서 집을 구하려다보니 점점 크기는 작아지면서 외곽에 위치한 오래된 구축아파트 밖에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투자 가치라던가 이런 부분을 잘 몰라서 당시 저희 눈에는 그렇게 보였는데요, 사실 지금도 그렇게 보입니다. 그냥 마음에 안 들었던 게 맞습니다.


그 결과 나름대로의 일정 기준을 충족한 안산에 자가 마련하기로 최종 결정합니다. 이제와 하는 말이지만 '무리해서라도 서울에 집을 마련하는 게 장기적으로는 더 좋았을까'라는 대화를 아내와 가끔 나누곤 하는데 엄청난 후회는 사실 아직까지는 크게 없습니다.(정신 승리일까요?)


여하튼, 2019년은 부동산 시장이 어느 정도 살아난 분위기여서 하루가 다르게 집값이 올라가고 있는 추세였던 것 같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 된다.’라는 말이 있죠. 가만히 앉아서 부동산 가격의 오름세를 보니까 더이상 가만히는 못 있겠더라고요. 겨울을 보내고 봄이 찾아올 무렵 저희 부부는 이제 본격적으로 진짜 집구하기에 나서게 됩니다.


2018~2019년 당시 안산에는 많은 물량의 아파트 공급이 있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단지만 해도 4,500세대 정도였으니까요. 당시 데이터를 살펴보니 안산시 전체 약 10,000여가구 정도 공급이 됐다고 합니다. 엄청나죠?


수요와 공급 법칙에 따르면 공급이 많아지면 자연스레 가격은 내려가게 됩니다. 안산의 아파트 시장 또한 이런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물량에 대한 공급은 넘쳐나는데 수요는 충분하게 뒷받침되지 못하는 상황이 됐던 거죠.


2018년만 했어도 안산에는 마이너스 피인 아파트도 매우 많았습니다.(정말 아쉽네요.) 그만큼 공급에는 일시적으로는 시간이라는 방법 외에 당해낼 제간이 딱히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희가 진입한 시기는 과연 어땠을까요? 공급에 대한 물량은 어느 정도 많이 소화되고 슬슬 프리미엄이 본격적으로 붙어가는 시장이었습니다. 매도인이 점점 우세가 되어가는 시장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2019년 3월 초 아내와 함께 부동산을 방문해 마음에 드는 아파트 몇 군데 시세를 물어봤습니다. 당시에 마음에 들었던 아파트 단지 프리미엄이 3,300만 원 정도 형성이 돼 있었습니다. 저는 이때 프리미엄이라는 개념도 처음 알았습니다. 부동산에 정말 무지한 사람이었거든요.


당시 매도와 매수가 점점 불이 붙기 시작했던 환경이어서 부동산 사장님들께서 굉장히 열정적으로 설득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희 부부. 솔직히 부동산의 '부'자도 제대로 모르는데 몇 억 짜리 계약을 그 자리에서 구매하겠다 안 하겠다. 단번에 결정짓기가 정말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부동산 사장님들 왜 그런 말씀 많이 하시잖아요. “오늘 아니면 물건 놓쳐요. 지금이 진짜 싼 거라니까?!” 네. 저희는 그렇게 아파트를 매수할 기회를 보내버렸습니다. 차후에 해당 물건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서 몇 차례 사장님과 통화를 했는데, 당연히 물건은 이미 거래되고 사라져 버립니다. 어쩌겠어요. 그것도 저희 능력인거죠.


그렇게 한달이 채 안된 시점에 다시 부동산을 찾게 됩니다. 저희가 바랐던 단지는 매물이 없는 형국이고 차선택지였던 옆단지 프리미엄도 이미 2배가 넘게 뛰었습니다. 3주 전만 해도 분명히 메인 단지의 프리미엄이 3,300만 원이었는데 이제는 그 옆 단지에서 6,800만 원의 프리미엄을 부릅니다. 기가 차더라고요.


결정을 내릴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가용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지 아내와 백번도 넘게 고민해봤고 시뮬레이션도 충분히 해봤습니다. 당시 보유하고 있는 현금에 정부 대출을 이용한다면 충분히 감당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인생 최대의 쇼핑이라고 하는 첫 자가 마련을 2019년 4월에 결정하게 됩니다.  당연히 가격 궁금하시죠? 매물은 재건축된 신축 아파트로 전용면적 59 제곱미터. 매매가는 3억 4,500만 원(프리미엄 6,450만 원 포함) 이 정도 선에서 계약을 맺게 됩니다. (어렴풋이 기억하다가 계약서 한번 들춰봤는데 감회가 새롭네요.)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는 저희 같은 부부 공무원에게는 나름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시작은 어렵습니다. '잘 할 수 있을까? 망하면 어쩌지?' 라는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새로운 일을 할때는 항상 두렵거든요. 그럼에도 시도해봤습니다. 충분한 예열이 되었다면 무라도 베어야죠. 경험이 될 수도 있고 빛나는 추억이 될 수도 있을테니까요.


신혼집 전세 계약 맺어본 경험과 잇달아 자가 마련을 위한 계약까지 치르니 저희 부부 이제 슬슬 또 조금씩 부동산 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원래는 자가 마련하는 게 평생 꿈이었거든요. 그럼 이후 저희는 어떻게 됐을까요?

이전 14화 이렇게 하면 돈이 진짜 모인다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