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박성수 씨는 넥타이를 두 번이나 고쳐 맸다. 거울 속 남자는 자신의 모습이 왠지 낯설었다. 양복은 급하게 아버지 양복을 빌려 입었던 터라 어깨가 약간 떠있어 보이기까지 했다.
아버지에게 빌린 제법 가죽이 길들여진 구두 한 켤레가 그나마 그의 체면을 살릴만하기도 했다. 그의 나이올해 서른 하나였다.
백수 5년 차에 접어든 그의 면접은 올해 들어 세 번째였다. 공기업 하나, 어느 중소기업 한 곳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다가온 공무원 시험 면접까지. 그간 지원한 회사는 전부 떨어졌다.
서류 광탈은 기본값이었으니 누가 그의 상황을 위안할 수 있을까. 그리고 오늘 최말단 9급 지방직 공무원 면접이 또 한 번 그를 기다린다.
‘이것도 떨어지면.'에서 성수는 생각을 끊어냈다. 다행이다. 거기까지 생각할 필욘 사실 없다. 좋은 생각만 해도 붙을까 말까인데 재수 없는 생각은 애초에 하면 안 될 일이었다.
최종 면접장은 시청의 어느 별관 3층이었다. 대기실엔 양복 입은 사람이 십여 명 있었다. 다들 무릎 위에 손을 얹고 앉아 있다. 그들은 언제나 늘 그렇듯 말이 없었다.
눈길조차 마주치지 않는 차가운 공간. 시선은 없고. 적막이 들려오는 숨소리만 간간히 오고 간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고, 하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나다.'라는 그들의 숨소리가 내게 전해졌다.
성수는 7번이란 번호표를 받았다. 옆에 앉아 있는 지원자 한 명은 입술을 달싹거리며 뭔가를 계속 외우고 있었다. 아마 예상 질문 답변일 것이다. 성수도 어젯밤 밤을 세어 가며 열 개를 준비했다. 문제는 지금 그의 머릿속엔 단 세 개의 어렴풋한 정답밖에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일 뿐.
시간이 흐르고, 그들이 나를 부른다.
"7번, 박성수 씨. 들어오세요."
"네"
자신감 있는 척하며 당차게 일어난다. 솔직히 다리가 약간 휘청거렸다. 사실 남들 눈엔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지만.
그날의 면접관은 세 명이었다. 최고 면접관으로 보이는 50대로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 하나에 양 사이드로 두 명의 여성 면접관. 벌써부터 까다로울 것 같다. 가운데 앉은 50대 남자가 연신 서류를 훑어본다.
"공백기가 기네요. 2008년 졸업 이후로요."
"네."
"그동안 뭘 하셨어요?"
성수는 제 나름 준비한 답이 있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사회를 배우고자 했습니다. 어쩌고저쩌고 등등. 그런데 입에서 나온 말은 달랐다.
"취업을... 준비했습니다."
보통의 답변이 아니었던 걸까? 면접관이 나를 잠시 뚫어져라 봤다.
"흠. 5년 동안요?"
"네."
짧은 침묵이 흘렀다. 속으로 '제길'이란 말을 내뱉었지만, 성수는 시선을 끝까지 내리깔지 않았다. 내리깔면 왠지 이 게임에서 질 것만 같았다. 맞다. 근거 없는 오기였다.
면접관은 다행히 꼬리를 물지 않았다. 그 정도쯤은 이미 알고 있다는 눈치였다. 연이어 이어지는 영어면접 그리고 면접 학원에서 배웠던 문항들이 주류를 이루며 성수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공무원 면접은 전혀 만족스럽지 않은 채 그대로 끝이 났다.
별관을 나서자 햇살이 쏟아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성수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계단에 걸터앉았다. 담배는 끊은 진 사실 2년이나 지났다. 피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거지 같은 느낌이 드는 이런 날뿐이다.
핸드폰을 열었다. 매일 오는 광고 문자를 제하고 온전한 내게 주어진 문자 한 통. 바로 어머니였다. 문자 메시지는 다음과 같았다.
'오늘 어땠어. 밥은 먹었고?'
성수는 잠시 화면을 보다 이내 다시 전원 버튼을 눌렀다. 솔직히 말해서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랐다. 잘 봤다고 하기엔 전혀 확신이 없었고, 모르겠다고 하기엔 걱정만 끼치는 것 같았다.
하늘은 내 마음과 다르게 그렇게나 맑았다. 그러길 3주란 시간이 흘렀을까. 단순한 문자 하나였다. 짧디 짧았다. 성수는 이를 두 번이나 읽었다. 아니 세 번이나 읽었다. 그리고 천장을 바라봤다. 합격 통보였다. 이를 받기까지 무려 5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사실 어느 드라마에서 나오는 주인공처럼 서럽게 울진 않았다. 그냥 천장을 오래 응시할 뿐이었다. 이런 별거 아닌 것 같은 문자 한 통을 받기까지 내겐 무려 5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로부터 10년 뒤. 박성수는 출근길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서서 당시의 상황이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때 그렇게 원하던 게 이런 거였나.' 그 찰나 지하철이 긴 터널을 빠져나왔다.
창문 너머로 회색 건물들이 즐비하게 스쳐 지나간다. 그의 재킷 안주머니엔 며칠 전 출력한 종이 한 장이 있었다.